[오더북 딜레마]① 빗썸의 '위험한 실험'이 남긴 질문들

가상자산거래소들의 오더북 연동을 둘러싼 쟁점을 살펴봅니다.

/생성형AI(챗GPT)의 도움을 받아 제작한 그래픽입니다

빗썸이 2025년 하반기 추진한 해외 거래소 오더북(호가창) 공유 방식이 당국 검증대에 올랐다. 2026년 1월 금융위원회 금융정보분석원(FIU)이 빙엑스(BingX)를 미신고 가상자산사업자로 특정하면서 논란이 다시 커졌다. 빗썸의 서비스는 종료됐지만 해외 거래소와 오더북을 공유할 때 그 허용 범위를 어디까지로 설정할 것인가라는 과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오더북은 매수와 매도 주문을 가격대별로 나열한 실시간 거래 장부다. 주문이 적으면 작은 거래에도 체결 가격이 한꺼번에 위아래로 튀면서 시세가 쉽게 흔들린다. 때문에 거래소는 새 마켓을 열 때 초반부터 주문을 많이 모아 유동성을 키우려 한다.

유동성 실험이 남긴 규제 쟁점

2025년 9월22일 빗썸은 USDT(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 테더) 마켓을 베타로 오픈했다. 빗썸은 빙엑스 자회사인 호주 가상자산거래소 '스텔라'와 유동성을 공유하며 오더북을 연동했다. 원화 입출금 계좌 연결 없이 고객확인(KYC)만으로 USDT 마켓 거래를 이용할 수 있도록 안내했다. 연동 구조는 해외 이용자 주문이 국내 오더북에 반영되는 형태였다.

'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특금법)'에서는 국내 거래소가 '자신의 고객과 다른 가상자산사업자 고객 간' 가상자산 매매·교환을 중개하는 행위를 원칙적으로 제한한다. 오더북 공유가 단순 호가 정보 교환이 아니라 양쪽 고객의 주문을 맞붙이는 구조라면 이 제한 규정의 적용 대상이 될 수 있다. 다만 상대 거래소가 국내 또는 해외에서 인가·허가·등록·신고 등을 마쳤고 거래 상대방 고객 정보 확인이 가능한 경우에는 예외가 허용될 수 있다.

FIU는 2025년 10월 빗썸 현장조사에 착수했다. 점검 내용은 자금세탁방지(AML) 체계와 고객확인(KYC) 절차의 적정성을 집중 점검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더북을 실시간으로 맞추는 과정에서 거래 정보의 처리 방식과 통제 권한이 누구에게 있는지도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다.

트래블룰도 문제였다. 트래블룰은 가상자산 입출금 때 송금인과 수취인의 신원 정보를 사업자 간에 전달하도록 한 규칙이다. 해외 파트너의 준법 수준이 낮으면 국내 사업자의 리스크로 전이될 수 있다. 오더북 공유가 단순 기술 협업을 넘어 준법 책임의 경계를 흔드는 구조로 읽히는 이유다.

고강도 조사가 이어지자 빗썸은 11월28일 USDT 마켓 베타를 종료했다. 스텔라와의 오더북 공유도 함께 중단됐다.

특히 FIU는 최근 빙엑스를 특금법 상 미신고 상태로 내국인 대상 영업을 한 불법 가상자산 사업자로 지정했다. 이에 따라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심의 등을 거쳐 빙엑스 홈페이지와 앱에 대한 국내 접속 차단 절차가 진행될 수 있다. 미신고 사업자로 분류될 경우 국내 정식 신고를 마친 가상자산 사업자들은 해당 거래소와의 입출금 등 모든 거래를 중단해야 한다.

빗썸 USDT 마켓 사태 타임라인 /생성형AI(구글 제미나이)의 도움을 받아 시각화하고 기자가 최종 검토·확인해 제작한 그래픽입니다. 그래픽에 포함된 데이터와 내용은 기자가 직접 취재한 결과물입니다.

2월 제재심이 가를 기준선

FIU는 현재 빗썸의 오더북 공유 건에 대한 제재를 검토 중이다. 당국은 2월로 예정된 특금법 제재심에서 이 사안을 심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제재심은 서비스 종료 여부와 무관하게 운영 당시 구조가 법령 취지에 부합했는지를 중심으로 판단할 전망이다.

쟁점은 두 갈래다. 첫째는 AML 준수의 실질성이다. 해외 주문이 국내 호가에 반영될 때 의심 거래 탐지와 차단이 국내 기준으로 작동했는지가 기준이 된다.

둘째는 연동 구조가 가상자산사업자(VASP) 변경신고 대상에 해당하는지다. 변경신고가 필요한 구조로 판단되면 신고 누락 여부가 곧바로 쟁점이 된다.

결론이 어디로 향하든 국내 거래소의 해외 협력 모델은 재조정 국면에 들어설 전망이다. 파트너의 법적 지위 확인과 내부통제 검증 책임이 강화되면 계약 구조부터 달라진다. 거래소 간 정보 공유 범위와 실시간 모니터링 권한 그리고 이상거래 탐지 결과의 상호 통지 체계가 요건으로 부각될 수 있다.

또 업계에서는 빗썸이 점유율 확대를 노리고 무리한 실험을 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만약 제재심에서 영업정지 등 중징계가 내려지면 사업 리스크가 급격히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따른다.

업계 한 관계자는 "빗썸 사례는 해외 유동성을 가져오는 방식 자체보다 국내에서 통제 가능한 구조인지가 기준이 될 수 있다"며 "때문에 다른 거래소들도 이번 결과를 예의주시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준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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