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왕설래] ‘귀순자’ ‘새터민’ ‘탈북민’ ‘북향민’

1990년대 중반 북한 식량난이 악화하자 중국과 제3국을 거쳐 남한으로 오는 탈북민이 급증했다. 이들에 대한 체계적 지원이 필요해졌다. 1997년 ‘북한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이 제정된 이유다. 먹고살기 위한 탈북이 늘면서 이념적 색채를 띤 귀순이란 용어는 부적절해졌다. 이때부터 귀순자의 공식 명칭은 ‘북한이탈주민’이 됐다. 언론 등에서는 편의상 ‘탈북민(탈북자)’으로 불렀다.
한동안 사용되던 탈북자라는 용어는 거부감을 준다는 이유로 논란거리가 됐다. 그러자 노무현정부는 2005년 탈북자를 ‘새터민’으로 바꿨다. 새터민은 ‘새로운 터전에서 삶의 희망을 갖고 사는 사람’이라는 뜻의 순우리말이다. 그랬더니 이번엔 북한 정권에 반대하는 탈북민의 정치적 성향을 지우고 단순히 먹고살기 위해 남한에 온 사람으로 매도하는 용어라는 비판이 나왔다. 이명박정부는 새터민을 다시 탈북민으로 되돌렸다.
이재명정부가 탈북민을 ‘북향민’(北鄕民) 등 다른 명칭으로 변경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북한 이탈 주민이 제일 싫어하는 단어가 ‘탈(脫)’ 자”라며 “탈북, 어감도 안 좋다”고 명칭 변경 관련 용역을 준 사실을 공개했다. 공교롭게도 탈북민을 새터민으로 바꾼 노무현정부의 통일부 장관도 정 장관이었다. 북한이탈주민의 한국 정착은 미래 통일 과정의 축소판이다. 그들에게 도움이 된다면 명칭은 백번이라도 바꿔야 한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탈북민이 겪는 차별과 편견을 없애는 노력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조남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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