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용달 전 삼성 타격 코치는 사람에 따라 호불호는 있을 수 있지만, 타격 코치로 장인이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KBO리그가 출범한 1982년부터 1988년까지 MBC(현 LG)에서 선수로 뛰었다. 1982년에는 주전 1루수로 활약하며 골든글러브를 받았지만 선수 생활 대부분을 벤치 멤버로 활약했다. 7시즌을 뛰며 통산 성적은 타율 0.259, 12홈런, 71타점, 7도루 등을 남겼다.
그가 지도자 생활에 첫발을 내디딘 것은 1990년 LG 타격코치를 맡으면서다. “1988년에 선수 생활에 기로에 섰어요. 다른 팀으로 이적할 기회도 있었는데, 밑에서 치고 올라오는 후배들을 보면서 한계도 느껴 지도자 생활을 하기로 마음먹었죠. 그렇게 은퇴했는데, 뜻대로 잘 안 됐어요. 보험 영업을 하다가, 1990년 백인천 감독님의 부름을 받고 LG 타격 코치로 야구계에 다시 돌아오게 됐어요.”
타격 코치로 다시 KBO리그에 돌아왔지만 처음에는 시행착오도 많이 겪었다고 한다. 선수 시절부터 착실히 지도자 수업을 쌓은 게 아니라 선수들을 어떻게 지도해야 하는지, 그리고 그 지도가 올바른지에 대한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일본 프로야구도 경험한 백인천 감독님에게 많이 배웠죠. 또 제 나름대로 공부를 많이 했어요. 누군가를 가르치려면 제 스스로 확신이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으니까요. 선수 시절 배우고 경험한 방식만 알지 다른 방식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거든요. 그래서 미국이나 일본 야구책을 엄청 봤어요. 돈을 주고 번역시켜서요. 그러면서 타격에 대해 폭넓게 이해할 수 있었어요. 또 과학적 사고도 할 수 있었고요.”
주경야독의 심정으로 거듭한 이론 공부. 거기에 선수들을 직접 가르치며 그 이론을 실전에 대입해 보며 자신만의 이론을 쌓아나갔다. 그것이 김용달 코치가 오랫동안 타격 코치를 해올 수 있는 비결이었다. 그런 김 코치에게 타격 지도에 있어 원점과 같은 게 있다. 그것에 대해 ‘머니피치’는 들어봤다.
저는 운 좋게도 메이저리그뿐만이 아니라 마이너리그도 여러 차례 접할 수가 있었어요. 현장 지도자로 있을 때는 교육리그를 통해서, 또 유니폼을 벗었을 때는 사비를 들여 스프링캠프부터 정규시즌도 지켜보곤 했죠.
메이저리그의 아래 단계인 마이너리그는 크게 3A, 2A, 1A, 루키리그 등 4단계로 나뉩니다. 그 4단계에 속한 선수들의 기량 등은 확실히 메이저리거와는 차이가 나죠. 슬쩍 연습하는 것만 봐도 그 차이는 명확하게 느낄 수 있어요.
지도자 숫자도 우리나라 퓨처스리그보다도 훨씬 적어요. 대개 감독 한 명에 코치는 3명 정도죠. 지도자 숫자가 적은 만큼 선수 한 명 한 명을 정성껏 가르치기는 어려워요. 기본적인 것은 가르쳐주지만 나머지는 경기를 통해 스스로 느끼고 생각하게끔 하는 시스템인 거죠.
선수 스스로 성장하지 않으면 위의 단계로 승격할 수 없고, 운 좋게 타고난 재능만으로 다음 단계로 승격해도 메이저리그에 도달하기 전에 약점이나 결점이 나와 도태됩니다. 신인 드래프트에서 상위 순번으로 뽑힌 선수는 구단이 특별하게 다루지만, 그것도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곧바로 방출되는 구조죠.

아마 우리나라 선수가 마이너리그 연습을 보면 리틀야구처럼 느낄지도 몰라요. 코치가 가르치는 것도 대부분 알고 있는 것뿐이며 팀의 연습량도 적으니까요. 어떤 의미에서는 천국이 따로 없을 겁니다. 그러나 그 천국은 눈에 보이는 면만 그래요. 실제로는 지옥이에요. 왜냐하면, 부족한 것을 스스로 찾아 해야 하기 때문이죠.
한국처럼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연습도 하지 않고 개인 연습 등을 “하라”고 지시하는 코치도 없어요. 또 많은 것을 일일이 가르쳐주지도 않아요. 다만 모든 것을 스스로 해야 하죠. 코치의 지도를 통한 기량 향상을 크게 기대할 수 없으므로, 선수 스스로 노력해서 기량을 연마해야 해요.
어째서 마이너리그는 한국처럼 선수를 일일이 가르치지 않는 것일까요? 지도자 숫자가 적으니까 어쩔 수 없지만, 메이저리그의 자금력이라면 그 지도자의 숫자는 얼마든지 늘릴 수 있잖아요. 그런데도 소수의 코치를 두며 선수를 거의 방목 상태에 두는 것일까요? 선수 자원이 남아돌아서 그런 것도 아니에요. 우수한 선수는 어느 리그든 부족하거든요. 그러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해답을 푸는 열쇠를 1992년 교육리그에 참가했을 때 어느 미국인 코치를 통해 알게 됐어요. 교육리그는 미국에 있는 선수뿐만이 아니라 도미니카, 베네수엘라, 파나마 등에서 온 중남미 선수도 참가하거든요. 그 가운데는 그냥 발만 빠르거나 어깨만 강한 선수도 있어요. 한 가지 타고난 재능은 있지만 전체적인 야구 기술은 걸음마 수준의 선수도 적지 않은 거죠.
그런 선수를 이곳의 타격 코치는 어떻게 가르칠지 궁금해서 지켜봤어요. 때마침 어느 코치가 오른손 타자에게 밀어 치기를 가르치고 있었어요. 코치는 “배팅케이지 오른쪽에 설치된 네트로 타구를 때리면 된다. 공이 네트에 맞으면 나를 불러라”라고 말하고 다른 선수를 보러 갔어요.
홀로 남겨진 그 선수는 오른쪽에 설치된 네트를 맞히기 위해 쉼 없이 배트를 휘둘렀어요. 그러나 배트에 공은 맞아도 스윙 자체가 당겨 치기라서 오른쪽 네트를 전혀 맞히지 못했죠. 슬슬 힘이 떨어질 때 그 타자가 나를 보면 뭐라고 말하는 거예요. 말은 알아듣기 어려웠지만 눈빛만 봐도 저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어요.
통역을 부르기도 뭐해서 스테이 백(stay back: 앞으로 몸이 쏠리지 않게 하다) 등과 같은 영어 단어를 나열하며 밀어 치는 타격 자세를 몇 차례 보여줬어요. 그러자 그 선수는 몇 차례 시행착오를 겪은 후, 오른쪽 네트를 잇달아 맞힐 수 있게 됐어요. 조금 전까지 울상을 짓던 얼굴은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만면에 환한 웃음을 지으며 그 코치를 불렀어요.
“오른쪽 네트를 맞혔어요!”
그 말을 들은 코치는 그 선수를 칭찬한 뒤, 나에게 말을 걸었어요.
“미스터 김이 가르쳐준 겁니까?”
제가 “그렇습니다”라고 답하자, 그가 통역 직원을 불러 길게 이야기해 줬어요. “가르쳐준 것은 고맙습니다만 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선수는 누군가 가르쳐줘서 알게 된 기술은 금방 잊어버립니다. 반면, 스스로 깨달은 것은 절대로 잊어버리지 않습니다. 선수가 그것을 깨달을 때까지 쭉 지켜보는 것도 우리 코치의 역할입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한 기분이 들었어요. 이것이 말로만 듣던 “Don’t over teach(너무 많은 것을 가르치지 말라)”의 진정한 의미라는 것을 깨달았으니까요. 우리나라에서는 이 말을 오해해서 미국 지도자는 선수 자원이 풍부하니까 대충 가르치거나 내버려 둔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아요.

그들은 티칭이 아니라 코칭을 합니다. 무엇인가를 가르쳐주는 것은 티칭이지 코칭은 아니에요. 코칭은 선수가 스스로 깨닫게 하는 것이죠. 지도자는 선수를 물가로 데리고 갈 수는 있지만, 그 물을 마실지 안 마실 지를 선택하는 것은 선수입니다.
선수가 장래 어떤 목표를 가졌는지,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 가는지, 어떤 과정을 통해 결론을 도출해 내는지를 지켜보는 것이 지도자의 역할입니다. 그 해답이나 해결책은 지도자와 같은 제삼자가 가르쳐주는 게 아니라 스스로 깨닫게끔 해야 하는 거죠. 그래야 그것은 선수의 것이 된다는 겁니다.
최근 프로야구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도 신인 선수나 신입사원이 들어왔을 때, “도대체 학교에서 무엇을 배웠느냐? 이런 기초적인 것도 모르느냐!”는 말을 자주 하거나 듣곤 하잖아요. 프로야구만 해도 예전에는 우수한 신인은 바로 즉시 전력이었지만, 요즘은 그런 선수가 거의 드물죠.
프로야구 신인왕만 봐도 2008년 이후로는 대부분 퓨처스리그에서 기량을 닦은 중고 신인이 차지하고 있으니까요. 프로야구가 발전하면서 그만큼 1군 선수와 신인급 선수와의 기량 차이가 벌어진 거죠. 구단 역시 신인의 활약을 기대하는 것은 빠르면 3년, 늦으면 5~7년 이후로 봅니다. 이것을 달리 표현하면, 선수를 육성하는 데는 과거와 달리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에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과거에는 곧바로 신인을 써야 하므로 요령 등을 머릿속에 꾹꾹 집어넣는 주입식 지도, 즉 티칭이 효과적이었죠. 그 당시, 선수 육성에는 시간이 필요하며 스스로 깨닫게 하기 위한 코칭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면 무능한 코치로 낙인찍히기 십상이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다르잖아요. 미국 마이너리그처럼 선수를 육성하는 데는 시간이 든다는 것을 대부분 이해하고 있으며 선수 육성을 위한 시설도 잘 갖추고 있어요.
다만 지도방식은 여전히 코칭이 아닌 티칭이죠, 안타깝게도요. 일일이 모든 것을 지시하고 가르치며, 연습의 질보다 양을 중요하게 여기죠. 처음에는 하나하나 알려주고 지시하는 티칭이 기량이 빠르게 향상하는 것 같지만, 기량 향상은 100m 달리기가 아닌 마라톤과 같아요. 선수가 일정 수준에 도달한 뒤로는 스스로 깨닫게 하는 코칭이 더 큰 기량 향상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해요.
지도자가 선수의 성장을 바란다면 일일이 그 답을 가르쳐줄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사례로 조언하는 게 중요해요. 지도자가 보여준 그 예를 받아들일지 그렇지 않을지는 선수 본인의 선택이며, 그 답을 찾아내는 것 역시 선수 본인의 몫이죠. 결국, 인내하면서 선수를 지켜볼 수 있는 여유와 자세가 지도자에게 필요한 거죠. 이것은 야구뿐만이 아니라 사회 역시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