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드민턴 여자 복식 백하나-이소희 덴마크 오픈 결승 진출!

하루 전 1시간 40분짜리 지독한 8강 혈투를 치르고도, 백하나–이소희는 다음 날 4강 코트에 나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다시 뛰었다. 상대는 일본의 노련한 한 축, 후쿠시마–마츠모토. 둘 다 수비가 단단하고 랠리를 기어이 길게 끌고 가는 스타일이라, 체력이 비면 바로 티가 나는 타입이다. 그런데 시작부터 분위기가 달랐다. 1세트 첫 랠리만 60번이 넘게 주고받았는데, 끝에 웃은 건 한국 쪽이었다. 그 한 포인트로 흐름이 어느 쪽으로 쏠렸는지, 관중도 선수도 다 알았다. 이후 스코어는 21-15. 크게 흔들리지 않고, 때릴 때 때리고, 막을 때 막으면서 차근차근 쌓아 올린 결과다.

전날의 피로가 없었을 리 없다. 8강에서 이와나가–나카니시 조를 상대로 3게임을 꽉 채웠고, 중간중간에 숨이 턱까지 차는 장면이 화면에 다 잡혔다. 그런데 4강 준비 과정에서 뭘 잘했는지, 24시간이 채 안 되는 사이에 몸이 다시 올라왔다. 코트 위 동선이 짧고, 첫 스텝이 빠르니 후속 동작이 가벼웠다. 무엇보다 서비스 이후 두 번째, 세 번째 셔틀에서 주도권을 가져오는 패턴이 깔끔했다. 이소희가 리시브로 길게 눌러놓으면, 백하나가 하프 스매시로 틈을 내고, 다시 앞쪽으로 달려들어 드롭이나 푸시로 마무리. 길게 싸우는 척하면서 사실은 빨리 끝낼 수 있는 루트를 계속 찾았다. 이게 체력 빼지 않는 비결이다.

2세트는 더 또렷했다. 초반 4-4에서 내리 4점을 묶어 8-4로 벌렸고, 인터벌을 11-6으로 들어가며 기선제압을 다시 했다. 한 번 좁혀질 때도 있었다. 13-12까지 따라붙는 구간에선 일본 조 특유의 끈기가 나왔다. 이럴 때 보통은 서두르기 마련인데, 둘은 이상할 정도로 차분했다. 네트를 살짝 넘어오는 볼을 섣불리 건드리지 않고 한 번 더 밀어 넣었고, 상대가 각을 세우려 할 때는 스트레이트 블록으로 길을 틀어막았다. 그렇게 상대 범실을 유도한 뒤, 백하나가 코트를 찢는 각도로 스매시를 꽂아 17-13을 만들었다. 후반 막판 18-17까지 쫓기는 순간에도, 이소희의 중앙 드롭 한 방이 공기를 바꿨다. 힘으로가 아니라 타이밍으로 이기는 샷. 그 한 포인트가 사실상 승부였다. 마무리는 21-19. 스코어는 촘촘했어도 내용은 주도권을 놓치지 않은 경기였다.

이 승리가 반가운 이유는 단순히 결승행이라서만은 아니다. 지난 5월 싱가포르오픈 8강에서 이 조에게 당한 패배를 같은 해 가을에 그대로 갚아줬다는 사실, 이게 크다. 국제 투어는 시즌이 길고, 늘 같은 얼굴을 여러 번 만난다. 이번처럼 짧은 간격 안에 ‘패→승’으로 바꿔놓으면, 다음번에 코트에 서기 전부터 심리 하나 먹고 들어간다. 오늘 경기의 디테일을 보면, 그간 약점으로 지적받던 ‘길어지는 랠리에서의 마무리’가 확실히 좋아졌다. 예전엔 열다섯 번쯤 치고받다 실수 하나로 흐름을 잃곤 했는데, 이젠 20번을 넘겨도 마지막 두세 타에서 오히려 각을 더 세운다. 앞뒤로만 흔드는 게 아니라 좌우로 벌려놓고, 상대를 사이드라인 밖으로 끌어낸 뒤 빈 가운데를 겨냥한다. 이게 백–이 조가 올해 가장 많이 다듬은 부분이다.

체력 얘기를 안 할 수 없다. 여자복식은 스매시 힘만으로 되는 종목이 아니다. 리시브 품질, 하프코트 수비, 네트 앞에서의 손목 꾹 누르기까지 모두 합쳐져야 1점을 가져온다. 그러려면 하체가 버텨줘야 하고, 인터벌 사이 회복도 빨라야 한다. 8강 혈투 다음 날 이 정도 움직임이 나왔다는 건, 베이스 체력이 올라왔다는 뜻이다. 시즌 중반 이후 두 선수가 체력 훈련 루틴을 바꿨다는 말이 있었는데, 실제로 코트에서 체감된다. 랠리 끝에 숨이 차도, 다음 랠리 첫 두 발이 무너지지 않는다. 그 덕에 수세에서 역공으로 넘어가는 장면이 부쩍 많아졌다. 오늘도 마츠모토의 강스매시 두세 방을 그대로 받아내고, 역으로 짧게 떨구거나 라인 끝으로 찔러 득점하는 포인트들이 경기 흐름을 갈랐다.

전술적으로도 칭찬할 게 많다. 후쿠시마–마츠모토는 기본기가 단단하고, 실수를 기다리며 천천히 목 조르듯 점수를 쌓는 조합이다. 여기에 맞서려면, 섣부른 하이리프트가 가장 큰 금물이다. 높고 긴 볼을 남발하면 그대로 두들겨 맞는다. 백–이 조는 이걸 잘 알고 있었다. 리프트를 해도 하프 길이로 짧게, 코스를 바꿀 땐 정면보다 어깨 바깥을 노렸다. 그러면 상대의 스매시가 코트 안쪽으로 파고들기보다 사이드로 흘러나가서 블록이나 수비가 쉬워진다. 작은 각도 싸움에서 이길 줄 아는 팀이 되었고, 그게 곧 성적이다.

이제 남은 건 결승. 상대는 김혜정–공희용이 오를지, 세계 최강급인 중국의 자이판–천칭천이 올라올지 지켜봐야 한다. 둘 다 스타일이 달라 대비도 다르다. 국내 팀과 붙으면 서로를 너무 잘 알아서 더 촘촘한 수 싸움이 된다. 반면 중국 조를 만나면 파워와 속도, 네트 장악에서 버텨내야 한다. 하지만 오늘 같은 템포와 침착함이라면 충분히 싸움이 된다. 관건은 초반 5~7포인트다. 리드를 잡아야 랠리 길이를 우리 쪽이 정할 수 있다. 특히 서브 다음 세 번째 볼에서 먼저 각을 내고, 앞선에서 라켓을 위에 두고 버티는 습관만 유지하면 큰 흔들림 없이 갈 수 있다.

올해 둘은 “큰 대회에서 꼭 하나”를 목표로 걸어왔고, 매 대회 상위 라운드를 꾸준히 밟으면서도 마무리에서 아쉬움을 남긴 날들이 있었다. 그래서 더 이번 덴마크의 결승이 값지다. 시즌 말까지 이어지는 일정 속에서 컨디션이 흔들릴 때도 있었지만, 팀으로서의 색깔은 분명해졌다. 길게 버티되, 기회가 오면 주저하지 않는다. 네트 앞에서 손을 먼저 내밀고, 상대가 한 박자 멈추는 순간을 즉시 파고든다. ‘우리 배드민턴’을 스스로 설명해 보라 하면 긴 말 필요 없이 오늘 4강 영상만 보여주면 된다.

마지막으로, 두 선수가 경기를 대하는 태도도 참 좋다. 포인트 하나를 잃고 표정이 굳지 않는다. 서로에게 “괜찮아” 한 마디를 꼭 하고 다음 랠리를 준비한다. 지는 랠리도 깔끔히 털고, 이기는 랠리는 크게 끌어올리지 않는다. 이런 태도는 길게 보면 승부사 기질이다. 복식은 옆 사람과의 공기 싸움이 절반이다. 백–이 조는 그 공기를 스스로 만든다. 그래서 팬들이 더 믿는다.

덴마크오픈은 역사가 깊고, 유럽 강팀들이 유난히 힘을 쓰는 무대다. 여기서 결승까지 왔다면 이미 폼과 흐름은 증명됐다. 이제 필요한 건 평소처럼 하는 것이다.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리듬과 루틴을 지키고, 첫 서브에서부터 “우리가 먼저 친다”는 마음을 잃지 않으면 된다. 어제의 1시간 40분, 오늘의 1시간, 이 두 가지 서로 다른 경기의 피로와 긴장을 모두 이겨낸 팀이라면, 마지막 한 경기에서도 충분히 해낼 수 있다. 올해 아직 우승이 없다? 그래서 더 좋다. 가장 알맞은 타이밍에, 제일 값진 곳에서 한 번 크게 웃는 그림. 지금 이 컨디션이라면, 덴마크에서 그 장면을 충분히 기대해도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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