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황제’로 불리던 중국 MZ세대가 ‘동아시아 아이’로 쪼그라든 까닭

박은하 기자 2024. 9. 16.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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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개봉 영화 <소년 시절의 너(少年的?)> 의 한 장면.

동아시아 아이들은 정말 소황제였을까.

중국에서 1980년대 이후 출생한 사람들은 ‘소황제(小皇帝) 세대’라고 불린다. 소황제는 ‘응석받이로 자란 제멋대로 구는 아이’란 의미이다.

중국 정부는 1979년 소수민족을 제외한 가정은 한 자녀만 갖도록 허용하는 강력한 산아제한 정책을 실시했다. 중국에서 이후 태어난 사람들에게는 ‘소황제’란 꼬리표가 따라다녔다.

이들이 성장하면서 이혼율이 높아지거나 교사에게 난폭하게 구는 학부모 등 새로운 사회 이슈가 불거질 때마다 “역시 소황제 세대가 문제”라는 비난이 쏟아지고는 했다.

현재 중국에서 ‘동아시아의 아이(東亞小孩)’란 말이 널리 쓰이고 있다. 성인이 된 1990년대~2000년대생이 자기 자신을 자조적으로 일컫는 표현이지만 1980년대 이후 성장한 사람 전반을 뜻하기도 한다. 중국은 2015년 한 자녀 정책을 폐기했다.

한 자녀 정책이 유지되던 약 35년 동안 ‘작은 황제들’이 ‘작은 아이들’로 쪼그라든 셈이다.

베이징의 대학에 다니는 샤오쥔(가명)은 자신을 ‘동아시아 아이’라고 생각한다.

샤오쥔은 “청년 세대의 불안은 중국 뿐만 아니라 미국, 유럽 등 전 세계에서 마찬가지로 벌어지는 현상이지만 동아시아만의 특징이 있다고 생각한다”며 “동아시아다움의 가장 큰 특징은 ‘가족관계를 중시한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이나 중국, 일본에서 연장자의 말은 절대적이고 가족의 고결함이란 가치가 강조된다”며 “이는 부모가 자녀의 삶에 간섭하고 또한 자녀를 돕고자 하는 욕구를 당연한 것으로 만든다”고 말했다.

샤오쥔이 생각하는 중국 나아가 동아시아 청소년의 특징은 ‘소황제’ 하면 떠올리는 이미지와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자신의 욕구를 통제하고 기대에 짓눌린 위축된 내면이 특징이라고 전했다.

샤오쥔은 높은 교육비와 이전 세대보다는 풍요롭지만 교육비를 감안하면 대부분 넉넉지 않은 가정형편, 가족의 희생과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현실 등을 거론하며 “사회의 급속한 발전과 부모와 가족의 엄격한 시선 아래 (이전 세대에 비해) 풍요로우면서도 (가족에게 속내를 말하지 않아) 조용하고, 행복하지만 고통스러운 이들이 바로 ‘동아시아의 아이들’”이라고 말했다.

‘동아시아’란 표현이 널리 쓰이는 것도 2010년대 후반 이후 특징적인 현상이다. 저우샤오레이 베이징외대 교수는 “중국에서 동아시아(동아)는 일본이 만주를 침략하면서 내세운 ‘대동아공영’을 떠올리게 하는 말이기 때문에 이전에는 잘 쓰이지 않았다”고 전했다.

일제 침략을 연상케 하던 ‘동아시아’란 말이 주는 정서적 효과를 바뀐 이유는 대중문화 특히 영화의 영향이 컸다. 샤오쥔 역시 2019년 개봉한 홍콩 감독 정궈샹(曾國祥)의 영화 <소년 시절의 너(少年的你)> 리뷰에서 ‘동아시아’란 표현이 각인됐다고 전했다.

그는 “집단 따돌림 문제와 청소년기의 반항, 자기 구원 등을 주제로 한 영화인데 누군가 리뷰에서 중국 청소년의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중국 청소년’이라는 표현 대신 ‘동아시아 청소년’이란 표현을 사용했는데 댓글에서 자연스럽게 모두 ‘동아시아 청소년’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고 말했다. 주로 대만과 홍콩, 한국, 일본이 통틀어 동아시아로 묶인다.

샤오쥔은 학교폭력과 복수를 다룬 한국 드라마 <더 글로리(중국명 黑暗荣耀)>, 일본 청춘 드라마 <짝사랑(중국명 暗恋) > 등 2020년대 한국, 일본 드라마 감상평에서 ‘동아시아’란 표현을 종종 봤다고 전했다. 동아시아는 주로 드라마들에 등장하는 청소년들의 소심함, 모호한 감정, 어두운 감정과 사회 문제 등을 지적할 때 등장한다.

그는 “공통의 경험을 했다고 생각한다”며 “‘중국’보다 ‘동아시아’란 표현을 사용할 때 보다 감정적 울림과 공명을 느낄 수 있었다”고 전했다.

영화 플랫폼에서 ‘동아시아’는 부정적인 요소를 풍자할 때에도 널리 쓰인다. 주로 가족주의, 권위적 직장문화, 혈연 중시 풍토, 미래의 행복을 위해 현재의 행복을 유예하는 습관 등을 비판할 때 등장한다.

올해 4월 중국에서 개봉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리뷰에서는 ‘우주의 돌’ 혈연으로 이어진 후계자를 찾는 대목에서 “우주에도 또 하나의 동아시아가 있었네”라는 촌평이 많은 공감을 얻었다.

픽사가 제작한 미국 애니매이션 <인사이드 아웃2>에서 ‘불안’을 두고 “불안은 동아시아 사람이어야 한다”는 반응이 쏟아졌다.

재일 중국인 페미니스트 그룹은 지난 7일 도쿄의 주일한국대사관에서 한국 딥페이크 성범죄 규탄 집회를 열면서 “동아시아 여성은 단결하라”는 구호를 내세우기도 했다.

저우 교수는 “‘소황제’는 기성세대가 1980년대생을 비판하기 위해 붙인 개념이라면 ‘동아시아 아이’는 2000년대생들이 자신이 자라온 가정, 학교, 사회를 비판하기 위해 만든 개념”이라며 “<82년생 김지영> 등의 한국 페미니즘 문학이 중국에 번역 출간되면서 ‘동아시아 가부장제’ 등의 표현이 활발하게 사용되고 있다”고 전했다.

베이징 | 박은하 특파원 eunha99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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