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KBS 여권 이사들, 박민 사장 무산 우려에 '총사퇴' 논의했다

노지민 기자 2024. 10. 8.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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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여권 표 분산에 '전원 사퇴' 논의, 투표 연기 반대한 이사만 물러나
서기석 이사장, '박민 반대' 여권 이사에 거듭 설득 내지 회유 나선 정황도

[미디어오늘 노지민 기자]

▲2023년 10월13일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가 서기석 이사장 등 여권 이사들을 향해 KBS 보궐 사장 후보 임명제청 절차에 대해 항의하고 있다. 사진=언론노조 KBS본부

지난해 KBS 사장 선임 과정에서 일부 여권 이사가 박민 후보(현 사장)를 반대하자 여권 이사들이 '전원 사퇴' 방안까지 논의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후 공교롭게 서기석 이사장의 회의 운영에 반대했던 여권 이사만 교체된 채 박민 사장이 낙점됐다. 박민 사장은 현재 연임에 도전하고 있다.

미디어오늘 취재를 종합하면 KBS 이사회가 사장 후보 3인(박민·이영풍·최재훈) 중 과반 득표자를 내지 못했던 지난해 10월4일, 회의를 마친 복수의 여권 이사들이 모여 자진 사퇴 방안을 논의했다.

이날 KBS 이사회는 후보자 3명을 면접 심사한 뒤 투표를 거쳐 최종 1인을 윤석열 대통령에게 임명제청할 계획이었다. 1차 투표로는 과반 득표자가 나오지 않으면서 이사들은 앞서 의결한 '제26대 KBS 사장 임명 제청에 관한 규칙'에 따라 상위 2인(박민·최재훈) 결선 투표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 규칙은 최대 3번의 결선투표에도 과반 득표자가 없으면 재공모하도록 규정했다.

그런데 1차 투표가 끝난 오후 7시께 “10분 휴정(정회)”하자던 서기석 이사장은 여권 이사들과 회의실을 나선 뒤 한참을 돌아오지 않았다. 이후 서 이사장은 1시간가량이 지나서야 회의를 재개하더니 “사정이 있어 오늘은 더 이상 속행하기 힘들 것 같다”며 이사회를 중단하고 6일 속행하겠다고 했다. 사장 선임 관련 규칙에 정해둔 임명제청일(10월4일)이 지난 뒤로 결선투표를 미루자는 것이었다.

당시 야권 이사들이 '투표 방해'라 항의했지만 서 이사장은 이석래 이사가 “일신상 이유로” 정회를 요청했다면서, 권순범·이은수·황근·김종민 등 여권 이사들에게만 차례로 의견을 물었다. 이들 중 김종민 이사가 “의견 없다”며 동의하지 않았음에도 서 이사장은 “휴정하겠다” “6일 속행하겠다”며 의사봉을 두드린 뒤 퇴장했다. 전례를 찾기 힘든 일이었다.

미디어오늘은 이사회가 관련 규칙에 반해 파행된 뒤, 이석래 이사를 제외한 여권 이사들이 당시 사태는 공동의 책임이라는 취지에서 사표를 내기로 했다고 복수의 이사회 관계자들을 통해 파악했다. 그러나 다음날인 5일 김종민 이사만 사의를 밝혔고, 결과적으로 서 이사장 지시에 따라 김 이사 사퇴서가 방송통신위원회에 전달됐다. 이후 11일 월간조선 기자 출신 이동욱 보궐이사가 임명된 뒤 13일 여권 이사들 만으로 박민 최종 후보가 확정됐다. 박민 후보는 함께 상위 2인에 올랐던 최재훈 후보의 사퇴로 단독 후보가 된 상태였다.

▲2023년 10월 5일 김종민 당시 KBS 이사 사의 표명 관련 기사들

지난해 김종민 이사의 사퇴는 여러 언론이 기사화하고 그 배경을 추측할 만큼 의아한 사건이었다. 관련해 김 이사가 정회 및 결선투표 연기에 동의하지 않았다는 것도 일부 보도됐지만 여권 이사들간 사퇴 논의 정황은 알려진 바 없다. 여권 이사들이 사퇴까지 논하고, 그럼에도 김종민 이사만 물러난 이유 등 해소되지 않은 의문도 남아 있다. 김 이사는 7일 “특별히 드릴 말씀이 없다”고 했다.

KBS 이사회 안팎에선 서기석 이사장이 '박민 사장'을 염두에 두고 사장 선임 절차를 무리하게 진행했다는 지적이 제기돼왔다. 3배수 후보 1차 투표 이후 서 이사장이 회의장을 비운 1시간 동안에도 서 이사장은 박 후보에 부정적인 이석래 이사를 거듭 설득했고, 그 과정에서 '외부 사장이 오면 회사 안의 특정 노조 세력을 제대로 정리할 수 없다'는 이 이사에게 '그 일을 하기 위해 박민을 사장하게 하려는 것'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고 알려졌다.

이석래 이사는 지난 8월 임기 만료를 앞두고 KBS 사내 게시판을 통해 “현 사장(박민)의 임명을 제가 반대하던 시기 저에 대해 근거없는 마타도어를 퍼트리고 심지어 뒷조사에 협박까지 하면서 충성한 사람들이 있다”며 “정치적 중립을 지키지 못하는 KBS는 그 존재 이유를 보장받을 수 없다”고 밝힌 바 있다. 이 전 이사는 이번 보도와 관련 미디어오늘 취재에 응하지 않았다.

지난해 여러 논란 속 박민 사장 선임 절차를 주도한 서 이사장은 지난 8월 연임에 성공했다. 그리고 지금 연임에 도전하고 있는 박민 사장을 심사하게 됐다. 직전 여권 이사 6명 중에선 서 이사장과 함께 권순범 이사가 연임했다. 두 이사진은 박 사장이 임기 만료를 앞두고 추진한 '시사교양국 폐지' 등 조직개편안에 찬성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서 이사장과 권 이사는 지난해 박 사장 선임 과정에 관한 질의에 8일 현재까지 답하지 않았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는 오는 14일 '공영방송 장악'에 관한 국정감사 가운데 'KBS 사장 임명 제청 과정 관련' 증인으로 서기석 이사장과 이석래 이사(이상 여권), 정재권 이사를 채택했다.

▲박민 KBS 사장.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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