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노보드는 원래 젊은 스포츠 아니었나? 37세 맏형 김상겸이 보여준 반전의 물리학

© jtbc 올림픽 중계 화면 갈무리
출발선 앞에서 그는 먼저 자신을 진정시킨다 “내가 톱이다 불안해하지 말자.”
(동아일보)

스노보드라는 단어가 떠올리는 이미지는 보통 가볍다.
하늘로 솟구치는 점프
회전수로 승부가 갈리는 트릭
그리고 10대와 20대의 속도감

그런데 올림픽 알파인 스노보드 평행대회전은 그림이 다르다. 눈 위에서 서로를 옆에 두고, 게이트 사이를 찢는다. 공중이 아니라 설면에서 이기는 종목이다. 그 세계에서 37세의 김상겸은 “맏형”이 아니라 메달리스트가 됐다. 2026 밀라노 코르티나 남자 평행대회전 결승, 그는 오스트리아의 베냐민 카를에게 0.19초 차로 밀렸고,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왜 이런 반전이 가능한가?
왜 어떤 스노보더는 나이가 들수록,
체격이 커질수록 더 강해지는가?
김상겸의 커리어는 그 질문에 가장
구체적인 답을 준다.

© hweekmag Instagram

같은 스노보드, 다른 종목, 다른 몸

스노보드는 크게 두 개의 세계로 갈라진다. 프리스타일과 알파인
프리스타일은 공중 동작이 핵심이다.
하프파이프, 슬로프스타일, 빅에어기술 트렌드의 진화 속도가 빠르고 위험 부담도 크다. 새 트릭을 먼저 소화하는 쪽이 유리해지기 쉽다.

알파인은 다르다. 평행대회전은 게이트를 통과하는 레이스다. 턴의 질, 라인의 선택, 속도의 유지, 기술이라기보다 물리다. 그리고 그 물리는 종종 “젊고 가벼움”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NBC 올림픽 가이드(NBCOlympics.com)
는 평행대회전을 “더 기술적”인 종목이라고 정의한다. 게이트를 다루기 위해 높은 수준의 컨트롤이 필요하고 장비도 다르다고 설명한다. 여기서 컨트롤은 감각만이 아니다. 하체 파워와 엣지 압력, 그리고 경험의 축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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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인에서는 덩치가 왜 무기가 되나

알파인 레이스를 보면 답이 보인다.
선수는 코너에서 몸을 눕히고, 엣지를 설면에 박는다. 그 순간 스노보드는 “타는 도구”가 아니라 “버티는 칼날”에 가깝다.

체격이 큰 선수는 단순히 무겁다로 끝나지 않는다. 힘을 실을 수 있다. 엣지를 눌러 설면을 파고드는 압력을 만들 수 있다. 고속 코너에서 튀어나가려는 보드를 붙잡을 수 있다.

레드불의 알파인 가이드는 이 종목이 속도, 민첩성, 지능, 힘, 파워를 모두 요구한다고 정리한다. 여기서 파워는 한 번의 점프를 위한 파워가 아니다. 턴마다 반복되는 파워다. 30초 남짓한 레이스에서, 같은 질의 압력을 여러 번 재현하는 능력이다.

© prokerala.com 베이징 동계올림픽 이상호 선수

나이가 왜 불리하지 않을 때가 있나

알파인 평행은 “기술을 새로 발명하는 종목”이 아니라 “라인을 더 정교하게 깎는 종목”이다. 경험이 쌓이는 방식이 다르다.

눈 상태는 매일 달라지고, 같은 코스도 매번 다르게 느껴진다. 게이트의 리듬
스타트 타이밍, 상대가 옆에서 주는 압박 그 변수들은 경험으로만 정리된다.

올림픽 현장 자체가 이 흐름을 증명한다. 2026에서 금메달을 지킨 베냐민 카를은 40세였고, 그가 왜 이 종목의 상징인지 설명은 간단하다. 그는 이 종목에서 2010 은메달, 2014 동메달, 2022 금메달, 2026 금메달로 올림픽 메달을 네 개 쌓았다.

같은 날 로이터에서는 52세의 클라우디아 리글러가 5번째 올림픽을 치르는 장면을 전했다. 이건 예외가 아니라 알파인의 풍경이다. 나이를 먹었다는 사실이, 곧바로 속도의 감각을 빼앗지 않는다. 오히려 변수를 줄이는 법을 가르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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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겸의 시작은 약했고, 과정은 거칠었다.

김상겸은 원래 “허약한 아이”였다. 초등학교 1~2학년 시절 천식으로 고생했고, 심할 땐 2주간 병원에 있어야 했다. 운동을 시작한 건 생존에 가까웠다. 부모가 건강을 위해 운동을 권했고, 그는 초 3부터 육상을 했다. 그렇게 몸을 되찾은 뒤, 중3 무렵엔 키 178cm의 “덩치 있는 학생 선수”가 됐다고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전했다.

전환점은 중2 때였다. 학교에 스노보드부가 생겼다. 육상에서 익힌 폭발력은 알파인 스노보드의 짧은 승부와 잘 맞았다. 이 종목은 길게 버티는 스포츠가 아니라, 짧게 폭발하는 스포츠다. 다만 폭발이 “점프”가 아니라 “턴”으로 나타날 뿐이다. 문제는 재능이 아니라 지속이었다. 한국에선 설상 종목이 특히 그렇다. 팀이 없으면 선수 생활은 곧 생활비의 문제로 바뀐다.

김상겸은 2011년 한체대를 졸업한 뒤 일용직으로 버텼다. “시즌이 끝나는 3월과 대표팀 선발전을 치르는 5월 사이의 4월 휴식기 중 약 20일은 막노동을 했다. 훈련 기간에도 주말 중 하루는 아르바이트를 뛰었다.” 사람들이 “왜 늦게 피었나”를 묻기 전에, 먼저 “왜 계속 버텼나”를 봐야 하는 이유다.

시스템이 생기자, 전성기도 생겼다

동아일보는 김상겸의 상승 곡선을 이렇게 정리한다 “2년 전 국내 첫 스노보드 실업팀이 창설되고 여기 입단하면서 생계 문제에서 자유로워지자 훈련에 집중할 시간이 더 많아졌기 때문”이라고 생계가 정리되면 루틴이 생긴다. 루틴이 생기면 성적이 따라온다.

김상겸은 술도 끊었다고 했다. 훈련 후 주말에 술을 마시고 오면 체중이 5kg 늘 때도 있었다는 대목은 그가 어떤 방식으로 변했는지 보여준다. 그리고 루틴은 더 촘촘해졌다.
새벽 기상
5~6시간 훈련
저녁 비디오 분석
수면 10시간 유지
올림픽은 결국 이런 생활의 합이다. 한 번의 레이스가 아니라, 한 시즌의 축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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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세 은메달은 한국 스노보드의 시간표를 바꿨다.

김상겸의 2026 은메달은 한국 선수단의 첫 메달이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그리고 이 종목에서 한국이 처음 올림픽 메달을 딴 건 2018 평창의 이상호였다. 8년 전 은메달로 길을 열었고, 2026에서 같은 종목이 다시 메달을 가져왔다.

흥미로운 건 “누가”만이 아니다 “어떤 나이의 선수”가 그걸 해냈느냐가 더 도발적이다. 스노보드가 젊은 스포츠라는 상식은 프리스타일에선 맞다. 하지만 알파인에선 늘 절반만 맞았다.

올림픽이 시작되자마자, 알파인 평행대회전의 올림픽 존치 캠페인이 커뮤니티에서 확산된 것도 우연이 아니다. FIS는 70명 넘는 월드컵 선수들이 종목의 올림픽 유지를 지지하는 흐름을 전했다. 이 종목의 가치는 눈 위에서 “기술의 최신”이 아니라 “레이싱의 본질”을 보여주는 데 있다.

김상겸이 포기하지 못했던 이유

김상겸은 스스로를 이렇게 규정했다 “
난 느릴지 몰라도 포기하지는 않는 선수”라고 그 문장은 감정이 아니라 구조에 대한 고백이다.
실업팀이 없던 시절엔
일용직으로
팀이 생긴 뒤엔 루틴으로
그리고 마지막엔 메달로

스노보드가 원래 젊은 스포츠였느냐는 질문은 이제 절반만 맞는다. 공중의 스노보드는 젊다. 하지만 설면을 깎는 스노보드는 늙지 않는다. 김상겸은 그걸 몸으로 증명했다. 37세의 레이스는, 빠른 청춘이 아니라 오래 버틴 물리에서 시작됐다.

노아민 noah@standingou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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