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며칠 전부터 장을 봐서 명절에 식구들이 먹을 전과 갈비를 손수 준비하며 며느리를 기다렸다.
거실 가득 고소한 기름 냄새가 진동하는데 도착해야 할 아들 부부의 차는 주차장에 들어서지 않았다.
잠시 후 걸려 온 며느리의 전화는 이번 명절에는 가족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는 당황스러운 통보였다.

정성껏 준비한 음식과 서운한 통보
공들여 만든 음식을 바라보며 허탈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수화기를 쥔 손을 부르르 떨었다.
수긍하기 힘든 상황에 화를 내려 했으나 이미 비행기 표까지 예매했다는 말에 말문이 턱 막히고 말았다.
명절을 정성껏 준비했던 시간들이 순식간에 부정당한 것 같아 가슴 한구석에 서운함이 밀려왔다.

며느리의 솔직한 진심과 예고된 계획
며느리는 지난 몇 년간 직장과 육아에 지쳐 이번 휴가에는 오롯이 쉬고 싶었다고 솔직한 진심을 털어놓았다.
명절 때마다 반복되는 가사 노동과 긴장감에서 벗어나 아이들과 추억을 쌓고 싶었다는 사정이었다.
미리 말씀드리지 못해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이는 며느리의 목소리에서 오랫동안 쌓인 피로가 느껴졌다.

서로의 기준을 인정하며 찾은 새로운 평화
자신이 당연하게 여겼던 명절의 형식이 젊은 세대에게는 큰 부담이었음을 비로소 깨달았다.
음식은 냉동실에 보관하고 남편과 둘이서 호젓한 시간을 보내기로 마음을 바꾸자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다.
서로의 삶의 방식과 휴식의 기준을 인정해 주기로 하면서 가족 간의 새로운 소통 방식이 시작됐다.

남겨진 음식을 정리하며 무조건적인 희생만을 요구하던 옛 명절의 틀을 비로소 내려놓았다.
여행지에서 아이들과 환하게 웃고 있는 며느리의 사진을 보며 서운함 대신 따뜻한 응원을 보내기로 했다.
비워진 정적 속에서 서로의 영역을 존중하는 법을 배운 순옥은 한층 성숙해진 가족의 평화를 실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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