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육량이 ‘훌륭한’ 암 환우가 되었다_슬기로운 항암 생활_구경희

항암의 부작용은 다양했다. 다행히 대장암 항암은 머리카락이 빠지지 않았다. 대신 말초신경 질환을 비롯한 은근하게 불안하게 만드는 크고 작은 통증이 많았다. 손발 끝 저림 증상은 아직 완전히 낫지 않았는데 의사 선생님 말씀으로는 평생 갈 수도 있다고 한다. 나으면 다행이고 안 나아도 그 정도는 감수할 수 있다. 살 수만 있다면 이쯤이야!

항암 횟수가 더해 갈수록 관절 부위가 기분 나쁘게 아팠다. 특히 앉았다가 일어서려면 발가락, 무릎, 고관절까지 통증과 함께 일종의 마비 증상이 와서 한 번에 일어날 수가 없었다. 우리 동네로 지인들이 와서 식사를 함께 한 날이었다. 물을 가지러 가야 했는데 테이블에 앉은 지 십여 분이 지나서 발목에 마비 증세가 느껴졌다. 테이블에서 물이 있는 곳까지 가는데 한 걸음 움직일 때마다 뼈마디가 아파서 식은땀이 났다. 일행들에게 양해를 구할 수도 있었지만 무슨 자존심인지 말하기가 싫었다. 겉으로라도 멀쩡하게 보이고 싶었다. 단호박 수프, 알리오 올리오 스파게티, 샐러드를 먹었는데 무슨 맛으로 먹었는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google. 요가

항암을 끝내고 나서도 관절통은 사라지지 않았다. 항암으로 강제 폐경되어서 호르몬 교란 때문인가 생각했지만, 누구도 뾰족하게 해결책을 알려 주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곱은 손가락을 하나씩 펼 때 제아무리 천하 낙천주의자라고 해도 날마다 기세가 쪼그라들었다. 관절통이 심했던 부위는 손가락, 발가락, 무릎, 허리 윗부분이었는데 그 중에서도 손가락과 무릎이 아프니 생활에 곤란한 점이 많았었다. 오랜 기간 동안 요가를 해 왔기에 한 발 서기 자세 정도는 식은 죽 먹기였는데 한 발은커녕 두 발로 서는 것도 덜덜거리다니 앞으로 사는 게 만만치 않겠구나! 시무룩했었다. 그래도 크게 절망하지 않았다. 이 정도의 통증과 생명을 맞바꾼다면 감사할 지경이었으니까.

날이 갈수록 관절이 뻣뻣해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월, 수, 금 요가를 다녔다. 힘을 쓰는 동작들은 예전처럼 할 수 있었지만, 균형을 잡아야 하는 동작들은 쉬운 자세에도 비틀거렸다. 예전에는 나무 자세를 아주 잘했었다. 깊은 뿌리를 내린 나무처럼 당당하게 영원히라도 서 있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항암 후에는 일 초도 견디지 못하고 앞으로 쓰러졌다. 한 발로 서는 모든 자세는 패스! 마음을 괴롭히면서까지 할 필요는 없으니까 할 수 있는 동작을 열심히 하기로 했다. 아프고 부족하고 나약한 내 몸을 어여삐 여기기로 했다. 꽤 힘을 써야 하는 플랭크 자세, 다운 독 자세 등을 하는 데는 무리가 없었으니 그 정도만 해도 고마워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기분 탓인지 뻣뻣한 관절도 조금씩 풀리는 느낌도 들었다.

직접 그림

요가와 함께 수영을 시작했다. 뻣뻣해진 관절 상태에서는 물속 운동이 도움이 될 것 같았다. 호텔 수영(머리 들고 평영)도 배워서 여행지 호텔에서 선글라스 끼고 수영 하고 싶었다. 뭐랄까. 나의 치료 과정에는 비장미는 없었다. 이참에 하고 싶은 거 다 할 거야. 같은 기대감이 충만했다. 발차기를 배우고 팔을 저어 25m를 나아가는 순간만큼은 나는 암 환우가 아니었다. 어떻게 해서라도 조금이라도 더 빨리 목적지에 닿을 생각밖에 없었다. 배영을 배우고 평영을 배우는 동안에는 관절통은 생각도 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 평영 발차기를 연습하는 데만 집중했다. 나는 아주, 확실하고, 생생하게 삶을 누렸다. 조금이라도 수영 실력이 느는 것 같은 느낌이 들면 그날은 아주 기분이 날아갈 듯했다. 운동 덕분인지 우연인지 슬그머니 관절통이 사라졌다. 어느 날부터 예전만큼은 아니어도 한 발 서기를 꽤 잘한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을 즐기기에 등산만큼 좋은 운동이 없다. 관절통도 있었고 등산은 혼자 다니기는 위험이 따르기에 자주 가지는 못했다. 한라산을 꼭 가보고 싶었다. 간 김에 백록담도 보면 좋겠지만 못 봐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며 제주로 향했다. 혼자 한라산을 갈 용기는 없어서 제주도에 계신 분에게 용기 내어 부탁했다. 한라산에 데려가 주세요. 성판악으로 올라 관음사로 내려오는 코스를 선택했다. 오르고 내려오기까지 대략 일곱 시간이 걸렸다. 정상 가까이 오자 운무가 눈 앞을 가려 백록담 보기는 틀렸다고 생각했지만, 이 세상이 아닌 것 같은 신비로운 분위기 덕분에 무척 황홀했다. 놀라운 건 정상에 올랐을 때였다. 어디선가 바람이 분 듯, 운무가 오른쪽으로 걷히면서 그토록 보기 힘들다는 백록담이 선명하게 눈앞에 나타났다. 처음 올라와서 백록담을 보다니, 역시, 나는 운이 좋다.

google 백록담

요가, 수영을 하고 틈틈이 등산하러 다닌다. 요가나 수영은 초보 수준을 벗어나진 못했지만 괜찮다. 잔잔하게나마 몸을 움직인 덕분에 근육량을 재면 ‘훌륭함’ 수준에 있다. 걸음도 못 걸을 정도로 뻣뻣하고 통증이 심했던 관절통은 거의 사라졌고 걷는 것은 물론이고 달리기도 할 수 있다. 근육량을 유지하는 것은 환우가 아닌 사람들에게도 중요한 일이지만 환우들에게 특별히 중요하다. 몸이 휘청거리지 않아야 치료 효과도 좋다. 비밀을 말하자면, 육체의 단단함도 도움이 되었지만 내 몸을 움직여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정신적으로도 참 좋았다. 나는 늘 움직였다. 거의 매일 동산에라도 올랐다. 움직이면서 푸른 바다의 물고기처럼 펄펄 뛰는 나 자신을 느끼는 것이 너무나 행복했다. 사람들은 말한다. 나 같은 암 환자는 처음 본다고. 하긴, 나도 암 환자는 처음이라.

항암 중에 할 수 있는 운동
1. 산책 : 스트레스가 만병의 근원이라면 산책은 만병의 치유제라고 할 수 있겠다. 수술이나 항암 이후 면역을 높이고 근력을 높이는데 아주 적합하다. 주변에 낮은 산이나 언덕, 강변을 걸어도 좋고 동네 한 바퀴를 걸어도 좋다. 좋아하는 음악을 들어도 좋고 일상의 무탈을 감사하며 걸어도 좋다.
2. 집안에서 맨손 체조: 품질 좋은 요가 매트를 사자. 적어도 오만 원 이상의 요가 매트여야 한다. 값싼 매트는 유해 물질이 나올 수 있다. 요가 매트가 집 안에서의 운동장이 된다. 유튜브로 자신에게 알맞은 스트레칭 영상을 찾아 몸을 움직인다. 손가락 발가락을 자주 주무르는 것도 말초신경계 질환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
3. 명상: 거창하게 들리지만, 쿠션이나 방석을 깔고 숨을 들이쉬고 내쉬며 고요한 시간을 갖는다. 생각을 비우라고 하지만 별별 생각이 다 든다. 내버려두고 대략 10분이라도 조용한 시간을 갖는다. 요가 명상 음악과 함께하면 좀 더 가볍게 명상할 수 있다.

항암을 끝내고 할 수 있는 운동
1. 요가: 요가는 정말 좋은 운동이지만 무리하면 근육이나 힘줄을 다치기 쉽다. 할 수 있는 만큼만 한다. 호흡을 염두에 두고 날숨과 들숨을 들여다본다. 요가를 오래 했지만, 머리 서기나 핀차 같은 멋진 동작들은 아직 못한다. 그래도 아주 조금씩 그런 아사나 (동작)을 할 수 있는 몸이 되어가고 있다. 욕심을 버려야 한다.
2. 수영 : 수영은 유산소 운동과 근력 운동을 한 번에 할 수 있다. 25m를 한 번에 왔다 갔다 하는 것만으로도 심박수를 올리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대표적인 항암 부작용 중에 고지혈증이 있는데 유산소 운동은 고지혈증 완화에 도움이 된다. 고기를 많이 먹거나 기름진 음식을 먹지 않는데도 콜레스테롤이 올라가서 약을 제안 받았지만 6개월 유예기간 동안 수영과 음식 조절을 하면서 콜레스테롤 수치를 정상으로 되돌렸다.
3. 등산: 산에 오르는 것은 그야말로 몸과 정신에 모두 도움이 된다. 일거양득, 일타쌍피 운동이 바로 등산이다. 계절별로 보이는 것이 다르고 오르고 내리며 홀로 생각에 잠길 수도 있다. 오르느라 숨이 헉헉 가빠지면 다른 생각이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고 바로 그 순간에만 몰입하게 된다. 등산의 큰 즐거움이다. 다만 발목이 약하거나 등산 경험이 없다면 처음부터 무리를 하면 안 된다. 등산을 갈 때에는 작은 산이라도 반드시 등산화, 스틱, 간단한 간식과 물을 준비해야 한다. 절대 만만한 산은 없다. 겸손해야 한다.

글쓴이: 구경희
미술대학입시 전문 컨설턴트이다. 인생 이야기를 즐겨 읽다가 글쓰기의 바다에 빠져들었다. 자유로운 영혼의 아이를 키우며 자신까지 해방된 운 좋은 사람이기도 하다. 산에 오르기를 좋아하고 한때 바위타기를 꿈꾸었다. 요가, 글쓰기, 그림 그리기를 인생의 동반자로 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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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너명 소개: 슬기로운 항암 생활:
암에 걸렸다. 대장암 3기였다. 명랑을 유지하려고 애썼지만, 살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눈물 흘린 날이 하루 이틀이 아니다. 완치까지 1년 반이 남았다. 요가도 하고 수영도 하고 해외여행도 하고 출근도 한다. 아직, 절망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그 안에서 찾을 수 있는 희망을 얘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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