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차 중동전쟁 터지나" 궁지 몰린 이란의 보복…'키' 쥔 이스라엘
[편집자주] 2023년 10월7일 발발해 1년이 된 가자 전쟁이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충돌로 시작한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헤즈볼라와 후티 반군을 넘어 이란으로까지 번졌다. 그 누구도 장담하기 어려운 중동전쟁 상황과 확전 배경, 국제사회 영향 등을 두루 짚어본다.
1일(현지시간) 주요 외신과 현지 언론 등을 종합하면 이란은 이날 오후 7시30분쯤 이스라엘을 향해 약 200발의 미사일을 발사했다. 이는 지난 4월 중순 이란과 이스라엘 양국이 서로의 영토를 겨냥해 미사일 공격을 주고 받은 지 약 5개월 만이다.
이란은 친이란 대리세력인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수장 이스마일 하니예가 지난 7월 암살 당하자 이스라엘에 대한 보복을 다짐하기도 했으나 2개월간 특별한 움직임이 없었다. 하지만 최근 이스라엘이 이란의 핵심 대리세력인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의 수장 하산 나스랄라를 제거한 데 이어 이날 18년 만에 레바논을 지상 침공하자 결국 행동에 나섰다.
이란은 극심한 재정 적자 등 경제 현안 해결이 시급해 그동안 이스라엘과의 직접적인 무력 충돌을 피해왔지만, 중동지역 반이스라엘 연대인 '저항의 축' 맹주로서 전력 손실이 큰 헤즈볼라의 도움 요청을 외면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무력 행사를 계속 미룰 경우 친이란 세력을 향한 이스라엘의 노골적인 도발이 계속될 것이라는 이란 최고지도자 등 정치권의 판단도 이번 공습의 배경으로 꼽힌다.
이란은 탄도미사일을 발사하는 등 5개월 전 이스라엘을 공습했을 때보다 공격 규모와 범위를 2배 가까이 키웠지만 전면전은 원치 않는 것으로 보인다. 이스라엘의 민간시설이 아닌 군시설을 타깃으로 삼은 것도 국제사회 비판을 피하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압바스 아락치 이란 외교장관은 "이스라엘 정권이 추가 보복을 자초하지 않는다면 이란의 보복 공격은 종료된다"고 밝혔다.
이란과 이스라엘 간 충돌은 하마스·헤즈볼라·후티반군 등 친이란 대리세력이 아닌 '국가 대 국가'가 맞선다는 점에서 중동전쟁의 국면이 완전히 달라진다고 볼 수 있다. 중동 확전의 키는 이제 이스라엘이 쥐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이란이 큰 실수를 저질렀고, 그 대가를 치를 것"이라며 재보복을 시사했다. 이스라엘의 대응이 지난 4월과 같이 형식적인 수준에 그칠지, 더 공세적으로 나설지에 따라 상황은 달라진다.
중동 분쟁지역에서 인명·재산 피해가 속출하고, 글로벌 증시·외환·유가 등 시장의 변동성이 커져 투자자들은 불안감을 호소하고 있지만 현재로선 중동전쟁이 언제 마무리될지 그 누구도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자신의 정치생명을 걸고 전쟁을 강행한 네타냐후 총리가 출구전략을 찾지 못하고 계속 무리수를 둘 경우 1973년 4차 중동전쟁 이후 반세기 만에 5차 중동전쟁이 벌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국제사회는 원만한 해결을 원하지만 오는 11월 대선을 앞두고 미국이 중재 능력을 잃어 이스라엘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스라엘이 헤즈볼라와의 전면전으로 전략을 수정할 때 조 바이든 대통령에게 미리 알리지 않는 등 '미국 패싱' 논란이 일 정도다. 미국에 본부를 둔 싱크탱크 '던'의 라에드 자라 연구원은 "중동은 현재 전면적인 국지전 상황에 처해 있다"며 "미국이 이스라엘에 더 이상 무기를 보내지 않겠다는 정책적 결단을 내리지 않는 한 중동전쟁은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동 불씨를 지피는 이스라엘을 향해 이란이 1일(현지시간) 보복 공습을 감행했다. 하마스, 헤즈볼라 등 지역 세력을 아우르는 '저항의 축'의 중심 국가 이란이 군사행동에 나서면서 중동 갈등이 최고조를 향한다. 이스라엘은 브레이크 없이 내달리고 있고, 11월 대선을 한 달 앞둔 미국은 뾰족한 수가 없다. 말릴 주체들이 보이지 않으며, 5차 중동전쟁이 발발하는 것 아니냐는 위기론이 불거진다.
이란의 보복은 궁지에 몰린 상황에서 나왔다는 평가가 다수다. 이날 폴리티코에 따르면 트럼프 행정부에서 중동 외교를 담당했던 데이비드 센커 전 미국 국무부 차관보는 "하마스의 이스마일 하니예, 헤즈볼라의 하산 나스랄라가 사살된 것은 이란에 치욕"이라며 "하마스에 이어 저항의 축 핵심으로 꼽히는 헤즈볼라까지 약화되면서 범이란 세력 전체가 몰락하는 것 아니냐는 인식이 퍼지자 이에 대응한 것으로 보인다"고 평했다. "이란은 지역 영향력을 다시 굳히기 위해 뭔가 해야 하는 입장"이라는 것이다.
미국 워싱턴DC 싱크탱크 퀸시연구소 소속 트리파 파르시 부소장은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발언을 지적했다. 공습 전날 네타냐후 총리는 이란 국민들을 대상으로 한 영상에서 "해방된다면 평화가 찾아올 것"이라며 정권 교체를 시사했다.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를 겨냥한 셈으로 파르시 부소장은 "이란은 (이스라엘로부터) 공격을 피할 수 없다고 판단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로이터에 따르면, 하니예 피살 이후 2개월간 복수를 실행하지 않은 이란의 이번 공습은 하메네이가 직접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공습 직후에는 "이스라엘이 도발하지 않는다면 추가 보복 조치는 없을 것"이라고 했다. 신중한 태도를 보인 것은 하메네이가 이스라엘, 나아가 미국과 정면 대결을 원하지 않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이번 공습에서 이스라엘 측 사망자는 보고되지 않았다.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에 따르면 하메네이는 이념보다 현실을 우선한다. 그는 1980년대 이란-이라크 전쟁 당시 대통령으로 재임하면서 미국과 전쟁하면 어떤 결과가 뒤따르는지 체감했다고 한다.
경제도 어렵다. 트레이딩이코노믹스에 따르면 소비자물가지수(CPI)를 기준으로 한 이란 연간 물가상승률은 30% 이상이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행정부가 이란 핵 합의(JCPOA·포괄적공동행동계획) 탈퇴와 함께 복원한 경제 제재가 경기 회복의 가장 큰 걸림돌이다. 최근 마수드 페제시키안 대통령은 미국을 향해 JCPOA 복원을 위한 대화 의지를 드러낸 바 있다.
이란이 이스라엘과 정면 대결을 택할 가능성을 아직 배제할 수는 없다. 외신 보도에 따르면 지난 4월 공습 때와 달리 이란은 이번 공습에 대해 미국에 사전 통보하지 않았다.(통보했다는 주장도 나옴. 다만 양국은 국교가 단절돼 있어 3국을 거쳐야 함) 탄도미사일 기준으로 보면 공습 규모도 두 배 가까이 늘었다. 지난 4월 공습에서 이란은 순항미사일 30발, 드론 150기와 함께 탄도미사일 120발을 발사했고 이번 공습에서 탄도미사일 200발가량 발사했다.
하지만 전쟁 향방을 정하는 키는 이스라엘이 쥔 것으로 평가된다. 뉴욕타임스(NYT)는 이스라엘이 극단까지 나아간다면 이란 핵 프로그램의 핵심인 나탄즈 핵 시설을 공격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 오클라호마 대학 소속 조슈아 랜디스 중동연구센터 소장은 VOA(미국의소리) 인터뷰에서 네타냐후 총리가 이란 공격 명분을 얻었다면서 "미국이 그를 제지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고 했다.
이스라엘 총리 최초로 부패 혐의로 기소된 네타냐후 총리는 전쟁으로 정치생명을 연장 중이다. 여기에 그의 정치생명의 일부를 쥔, 이타마르 벤그비르 국가안보장관의 극우정당 '유대인의 힘'은 배후에서 전쟁을 부추긴다. 네타냐후 역시 헤즈볼라 공격으로 성과를 낸 후 여론 지지도가 상승 중이다. 다만 2일 헤즈볼라와 첫 지상전 때 이스라엘의 피해가 작지 않았고 이스라엘의 군 투입 확대까지 이뤄진 점을 감안하면 이란과 동시에 큰 전투를 벌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외교가에서는 조 바이든 행정부의 중동 외교가 실패한 결과라는 평가가 나온다. 싱크탱크 카토연구소는 가자지구 개전 이후 헤즈볼라로 인해 이스라엘에 피해가 상당했는데도 바이든 행정부가 외교 해법만 고집해 이스라엘 전의를 키웠다고 지적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바이든 행정부의 외교만능주의가 현 상황을 초래했다고 비판했다. 대선을 한 달가량 앞두고 전통적인 이스라엘 지지층과 이스라엘을 비판하는 유권자 모두를 잡아야 하는 민주당은 운신의 폭이 크지 않기도 하다.
다른 나라들도 마찬가지다. NYT는 중국, 러시아 같은 이 지역에 영향 줄 수 있는 나라들이 중동 문제 개입에 관심이 크지 않다고 지적하고, 사우디아라비아나 이집트 등 중동 국가들 역시 자국의 입장을 고려해 적극 나서지 않는다고 짚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 사이 전쟁이 발발한 지 7일로 꼭 1년을 맞는다. 그간 이어진 전쟁은 약 4만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갔고 막대한 경제적 피해를 남겼다. 인질로 잡혀 돌아오지 못한 이들은 아직 생사 확인조차 어렵다.
2일(현지시간) 알 자지라 등에 따르면 가자지구 보건부는 지난해 10월7일 발생한 가자지구 전쟁 이후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4만1615명의 팔레스타인인이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이 가운데 어린이 사망자는 1만6500명. 부상자도 9만6359명 이상이다. 최근 이스라엘의 주요 공습 대상인 무장 정파 헤즈볼라가 있는 레바논에서는 1000명 이상의 사망자가 나왔다.
이스라엘 측 사망자는 1139명, 부상자는 최소 8730명으로 보고됐다. 하마스에 억류된 인질들의 생사는 불투명하다. 하마스는 10월7일 공격으로 이스라엘에서 어린이와 여성, 노인을 포함해 251명을 납치했다. 이들 중 현재 101명의 인질이 가자지구에 억류된 것으로 전해지나 다수가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가자지구, 사람이 살 수 없는 땅으로…
전쟁 이후 가자지구 전역은 황폐화됐다. 지난달 8일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 등에 따르면 현재까지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가자지구의 주택 8만채 이상이 파손됐다. 상업시설의 경우 80%, 학교 건물은 85%가 파괴됐으며 가자지구의 36개 병원은 17개 곳을 남기고 모두 사라졌다. 도로망은 65%, 농경지는 65%, 통신 인프라는 모두 망가졌다.
유엔은 가자지구 재건에 최대 52조원이 들 것으로 추정한다. 압달라 알다르다리 유엔 사무차장 겸 유엔개발계획(UNDP) 아랍국가 지역 국장은 지난 5월 "유엔 개발프로그램의 초기 추정 재건 비용은 400억달러(약 52조원)에 달할 수 있다"며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사회가 경험해보지 못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캘리포니아에 본사를 둔 싱크탱크 랜드(RAND)의 다니엘 에겔 선임 경제학자는 지난 8월 블룸버그에 "가자지구를 재건하는 데는 사망, 부상, 트라우마로 황폐해진 노동시장의 장기적 영향과 같은 숨겨진 비용을 고려할 때 800억달러(약 105조원)보다 훨씬 큰 비용이 들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UNDP는 그간 가자지구에서 벌어진 분쟁 사례에 비춰볼 때 이번 전쟁 이후에도 파괴된 주택을 모두 복구하기까지 80년 이상 소요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가자지구 전쟁은 현재까지도 계속되고 있어 재건 비용과 기간은 더 늘어날 전망이다.
◇이스라엘도 경제 휘청…전문가들 "금융 위기" 경고도
이스라엘은 경제 문제가 커지고 있다. 지난달 9일 이스라엘 재무부는 올해 8월 정부 재정 적자가 연간 GDP의 8.3%에 해당하는 32억4000만달러(약 4조2696억원)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또 내년 말까지 전쟁 비용이 약 660억달러(약 87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전문가들은 금융위기를 경고했다. 이스라엘 재무부 고위 관료였던 요엘 네베흐는 지난달 8일 재정 분석 보고서를 통해 "3~5년 내 금융 위기가 발생할 것"이라며 "국가 안보 역량과 민간 생활에 회복하기 어려운 손상을 입힐 수 있다"고 말했다.
국제 신용평가사들도 일제히 이스라엘의 신용등급을 하향 조정했다. 1일 S&P 글로벌은 이스라엘의 국가 신용등급을 기존 A+에서 A로 한 단계 내렸고, 피치도 지난 8월 이스라엘의 국가 신용등급을 A+에서 A로 낮췄다. 무디스 역시 지난달 27일 이스라엘의 국가 신용등급을 A2에서 Baa1으로 두단계 내렸다. 무디스는 당시 "이스라엘을 둘러싼 지정학적 리스크가 매우 높은 수준까지 상당히 심해졌다"며 "장기적으로나 단기적으로나 이스라엘의 신용도에 중대한 부정적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밝혔다. S&P는 이스라엘의 신용등급 전망을 '부정적'으로 놓고 추가 등급 하향 가능성도 열어뒀다.
전쟁 장기화에 이스라엘을 떠나는 이들도 늘고 있다. 지난달 21일 텔레그래프는 "전쟁으로 지친 이스라엘이 하마스 공격 1년 만에 두뇌 유출에 직면했다"고 보도했다. 2004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인 아론 치에하노베르 테크니온공대 교수도 "이 나라를 떠나는 거대한 물결이 있다"며 "대부분의 시니어 의사들이 병원을 떠나고 있고 대학들은 중요한 분야에서 교수진을 채용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쟁 초기부터 지적받은 병력 부족 문제는 심화하고 있다. 이스라엘군은 하마스와의 전쟁 초기에 약 29만5000명의 예비군을 동원했지만, 전문가들은 불충분하다고 평가한다. 이에 이스라엘은 지난 6월 초정통파인 하레디 예시바(종교학교) 학생들에게 군 복무를 면제해온 76년간의 관행을 끝냈다. 지난 7월에는 남성 군 의무복무 기간을 32개월에서 36개월로 연장하기로 했다.
◇전쟁 확대에 피해도 고스란히…레바논 남부도 초토화
전쟁의 피해는 최근 충돌이 격화된 레바논 남부 도시들로 옮겨가고 있다. 레바논은 지난 18, 19일 헤즈볼라를 겨냥해 발생한 무선호출기(일명 삐삐) 등 집단 폭발 이후 통신망이 문제가 생겼을 뿐 아니라 약 2주째 이어지는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인명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유엔 인권사무소는 1일 지난 23일 이후 격화된 이스라엘과 헤즈볼라 사이 충돌로 1000명 넘는 사망자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발생한 난민은 최대 100만명에 이른다. 이미 대피소 수용인원을 훨씬 뛰어넘어 내전을 겪고 있는 시리아로 다시 대피하는 일도 벌어졌다. 지난달 26일 유엔인도주의 업무조정국(OCHA)은 앞으로도 레바논의 피난민 수는 대폭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유엔을 비롯한 일부 국가들은 레바논 난민들에게 식품과 식수, 매트리스, 위생용품 등 구호품을 제공하기 시작했으나 인력과 자원 부족은 계속되고 있다.
송지유 기자 clio@mt.co.kr 김종훈 기자 ninachum24@mt.co.kr 이지현 기자 jihyun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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