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사피엔스, 순수한 종 아니었나

현생인류 유전자의 약 20%는 수수께끼의 집단으로부터 물려받았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이런 주장의 근거는 최근 발견된 30만 년 전 교잡의 흔적이다.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 유전학 연구팀은 18일 공식 발표한 조사 보고서에서 현대인 유전자의 20%는 미스터리한 집단이 물려준 것이라고 전했다. 연구팀은 인간의 뇌가 발달할 수 있었던 원인도 의문의 유전자 덕이라고 봤다.

우리가 순수한 종이 아니라는 전제에서 출발한 이번 연구의 핵심은 고대인 화석에서 추출한 DAN의 해석을 배제했다. 대신 독자적으로로 고안한 모델링 기법으로 현대인 DNA에 물리적 흔적을 남기지 않은 조상의 존재를 추정했다. 그 결과 지금으로부터 약 150만 년 전, 미지의 그룹 A와 B가 우리 조상일 가능성이 떠올랐다.

현생 인류는 특정할 수 없는 고대인 두 집단에 유전자를 물려받았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사진=케임브리지대학교 공식 홈페이지>

조사 관계자는 “우리의 유전자 80%는 A 그룹으로부터 물려받았을 것”이라며 “해당 집단은 분기 후 수가 크게 줄었지만, 100만 년에 걸쳐 회복해 우리 조상이 됐을 뿐만 아니라 네안데르탈인이나 데니소바인 같은 옛 인류에게도 분기했다”고 추측했다.

이어 “B 그룹은 한 번 분기한 후 30만 년 전 다시 A 그룹과 섞인 것으로 보인다”며 “여기서 물려받은 것이 지금 인류 유전자의 나머지 20%”라고 덧붙였다.

연구팀은 B 그룹의 유전자가 호모 사피엔스의 진화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입장이다. 뇌의 기능이나 신경 처리에 관계되는 유전자가 여기서 특정됐기 때문이다. 즉 우리가 뛰어난 지능을 갖게 된 것은 B 그룹의 유전자 덕이라는 이야기다.

사람이 현생인류가 되기까지 진화 과정에는 수수께끼가 많다. <사진=pixabay>

조사 관계자는 “A나 B 그룹의 정체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며 “당시 아프리카에 존재한 호모 에렉투스나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가 후보로 거론되지만 어느 쪽이 A이고 어느 쪽이 B 그룹인지 모른다”고 한계를 인정했다.

이 관계자는 “확실한 것은 우리가 순수한 씨앗에서 비롯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라며 “기존 학설대로라면 현대인, 즉 호모 사피엔스는 20만~30만 년 전 등장한 이후 독립적으로 진화했지만 이번에 판명된 것처럼 실제로는 두 집단의 유전자가 섞였고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도 이어져 내려온다”고 강조했다.

일부 학자들은 케임브리지대학교 연구처럼 사피엔스가 실은 여러 종의 교분으로 형성됐다고 지적해 왔다. 학계는 이번 연구가 현생인류가 순수한 종이라는 생각이 이제 단순한 사고방식임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이윤서 기자 lys@sputnik.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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