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최초의 여성 총리로 취임한 다카이치 사나에가 핵잠수함 보유 정책을 국방 정책에 공식 포함시키면서 동북아 안보 지형에 지각 변동이 예고되고 있습니다.
2003년 노무현 정부가 핵잠수함 개발을 추진했을 때 주변국의 반발을 우려해야 했던 한국으로서는 씁쓸한 상황이 아닐 수 없습니다.
과연 일본의 핵잠수함 보유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으며, 이것이 한국에는 어떤 의미일까요?
일본 여성 총리가 꺼낸 '핵잠수함 카드'
지난 10월 21일, 일본 역사상 최초의 여성 총리로 다카이치 사나에가 선출되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제2야당인 일본유신회와 연립정권 구성에 합의하면서 공개한 정책 중 눈에 띄는 대목이 있었습니다.
국방 부문에서 "차세대 추진력을 갖춘 수직발사장치 탑재 잠수함 보유 정책을 추진한다"는 내용이었죠.

여기서 '차세대 추진력'이라는 표현이 핵심입니다. 이는 사실상 핵추진 잠수함을 염두에 둔 것으로 해석됩니다.
수직발사장치는 장거리 탄도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는 장치를 의미하는 것이죠. 일본 정부가 핵추진 잠수함 도입을 국방 정책에 공식적으로 포함시킨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다카이치 총리는 이미 2021년 자민당 총재 선거 당시에도 핵추진 잠수함 보유 여부를 묻는 질문에 "국제 환경에서 최악의 위험을 생각하면 장거리에 대응할 수 있는 것이 있으면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긍정적 입장을 밝힌 바 있습니다.
그가 총리가 된 지금, 이 구상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커진 것입니다.
미국의 호의적 시선, 호주의 선례
일본의 핵잠수함 보유 야심에는 미국이라는 든든한 후원자가 있습니다.
2023년 1월 마이클 길데이 미국 해군참모총장은 "일본이 핵추진 잠수함을 건조하려는 결정은 수년간 정치적, 재정적으로 국가 차원의 지원이 요구되는 큰 걸음"이라면서도, 호주의 사례를 언급하며 일본도 오커스와 유사한 형태로 핵잠수함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시사했습니다.

오커스(AUKUS)는 미국, 영국, 호주 간 2021년 체결된 안보동맹입니다.
이 체결로 미국과 영국은 호주의 핵잠수함 개발을 적극 지원하기로 했고, 호주는 2040년까지 8척의 핵잠수함을 건조할 계획입니다.
미국이 자국의 핵잠수함 기술을 제공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인데, 중국 견제라는 전략적 목적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죠.
길데이 총장은 일본 정부의 방위비 지출 증대에 대해서도 "일본 방위 강화를 위한 중요한 발전"이라며 일본의 군비 증강을 옹호했습니다.
미국의 입장에서 일본의 해군력 강화는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을 견제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계산이 깔려 있는 것입니다.
일본은 이미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사실 일본은 핵추진 기술을 완전히 생소하게 여기는 나라가 아닙니다.
일본은 1972년 화물선 무츠호에 원자로를 탑재해 시험 운항을 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비록 1974년 첫 시험항해 도중 차폐 결함으로 방사능 누출 사고가 발생하며 반대 여론에 직면했지만, 이후 1993년까지 무츠호를 통해 핵추진 기관 기술과 운영 노하우를 축적했습니다.
현재 일본은 세계 최고 수준의 디젤 잠수함 기술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특히 소류급 11번함에 세계 최초로 리튬이온 배터리를 탑재한 대형 잠수함을 실용화했고, 후속 모델인 타이게이급은 처음부터 리튬이온 배터리 전용 잠수함으로 설계되어 더욱 짧은 시간에 충전이 가능하고 소음도 줄이며 추진효율도 향상시켰습니다.
일본은 현재 22척의 잠수함을 보유하고 있으며, 매년 한 척씩 체계적으로 건조하는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탄탄한 잠수함 건조 기반 위에 핵추진 기술만 더해진다면, 일본의 핵잠수함 보유는 생각보다 빠르게 현실화될 수 있습니다.
20년 전 한국은 왜 포기해야 했나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은 20년 전 비슷한 시도를 했다가 좌절을 경험했습니다.
2003년 6월 2일, 노무현 대통령은 조영길 국방장관으로부터 핵잠수함 건조 계획을 보고받고 승인했습니다.
일명 '362 사업'으로 불린 이 계획은 프랑스 핵잠수함 바라쿠다급을 모델로 한 4000톤급 핵추진 잠수함 3척을 2020년 전에 실전배치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당시 이 계획은 일본과 독도를 둘러싼 갈등이 심화되는 가운데 추진되었습니다.
해군은 조함단 아래 '362 사업단'을 설치하고 순조롭게 진행했지만, 2004년 1월 언론에 보도되면서 상황이 급변했습니다.
국방부는 핵잠수함 개발을 부인하고 조직을 해체해야 했죠. 당시 한국의 핵잠수함 개발이 무산된 이유는 복합적이었습니다.
미국 등 주변국의 반발이 컸고, 특히 한국이 핵잠수함을 보유할 경우 일본과 중국의 반발 등 국제적 파장이 우려되었습니다.
또한 한미원자력협정상 원자력의 군사적 활용이 제한되어 있었고, 우라늄 농축 시험 문제로 국제사회의 의심을 받던 시기였던 것도 악재였습니다.
이중 잣대인가, 전략적 선택인가
한국의 핵잠수함 개발이 좌절된 지 20년이 지난 지금, 일본은 미국의 묵인 아래 핵잠수함 보유를 공개적으로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는 명백한 이중 잣대로 보일 수 있습니다. 같은 동맹국인데 왜 호주와 일본에는 허용하고 한국에는 반대했을까요.
미국의 입장을 이해하려면 전략적 우선순위를 봐야 합니다. 미국은 인도태평양 전략에서 중국 견제를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습니다.

호주와 일본의 해군력 강화는 이 전략에 직접적으로 기여하는 것이죠.
반면 한국의 경우 주한미군이 주둔하고 있고, 한국의 핵잠수함 보유가 북한뿐 아니라 중국과 일본을 동시에 자극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습니다.
또한 2000년대 초반과 현재는 국제 정세가 크게 달라졌습니다.
당시는 중국의 군사적 위협이 지금처럼 명확하지 않았고,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중국의 협력이 필요하던 시기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미중 전략 경쟁이 본격화되면서 미국의 계산법이 바뀐 것입니다.
한국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일본의 핵잠수함 보유가 현실화되면 한국의 입장은 더욱 복잡해집니다.
북한은 이미 핵잠수함 개발을 공언했고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기술도 보유하고 있습니다.
중국은 이미 12척의 핵잠수함을 운용 중이고, 일본마저 핵잠수함을 갖게 된다면 한국만 재래식 디젤 잠수함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이 됩니다.
한국은 현재 장보고-III급 잠수함을 중심으로 잠수함 전력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2025년 10월에는 장영실급(KSS-III Batch-II) 1번함이 진수되었는데, 이 잠수함은 3600톤급으로 리튬이온 배터리를 탑재하고 SLBM용 수직발사관 10셀을 장착하는 등 성능이 크게 향상되었습니다.

또한 경주에 문무대왕과학연구소를 건설하며 소형모듈원자로(SMR) 기술을 개발하고 있는데, 이는 잠수함용 원자로 개발의 기초가 될 수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한국이 핵잠수함을 보유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미국과의 외교적 조율이 핵심이라고 지적합니다.
2015년 개정된 한미원자력협정에 따라 한미 고위급위원회에서 북한의 SLBM과 핵잠수함 개발을 고려한 필요성을 밝히고 정당성을 인정받아야 한다는 것이죠.
또한 국제사회에서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강조하고, 저농축 우라늄을 사용하는 핵잠수함 개발 방향을 제시하는 등 투명성을 높여야 합니다.
일본이 미국의 지원을 받아 핵잠수함을 추진한다면, 역설적으로 한국에게도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일본의 핵잠수함 보유를 명분 삼아 한국도 지역 안보 균형을 위해 필요하다는 논리를 펼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미동맹 차원에서 한국의 핵잠수함이 인도태평양 전략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는 전략도 가능하죠.
동북아 해양 안보 환경은 급변하고 있습니다.
중국의 해군력 팽창, 북한의 SLBM 위협, 그리고 이제 일본의 핵잠수함 추진까지. 20년 전 좌절을 경험했던 한국이 이번에는 어떤 선택을 할지, 그리고 그 선택이 동북아 안보 지형을 어떻게 바꿀지 주목됩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더 이상 '때를 기다리며' 머뭇거릴 시간이 많지 않다는 사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