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동생은 어머니의 환갑 잔치부터 시작해 지난 20년 동안 단 한 번도 생신 자리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해마다 생일상이 차려질 때마다 나는 불참하는 동생을 원망하며 홀로 어머니 곁을 지켰다.
올해 팔순 잔치마저 외면한 동생의 태도에 화가 난 나는 결국 녀석의 자취방을 직접 찾아갔다.

지방의 작은 옥탑방에 들어서자 낡은 가구 사이로 초라하게 살아가고 있는 동생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내가 서운함을 토로하며 소리를 지르자 동생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인 채 서랍 깊은 곳을 뒤적였다.
녀석이 떨리는 손으로 꺼내어 내민 것은 먼지가 뽀얗게 쌓인 낡은 빛바랜 가족사진 한 장이었다.

사진 뒷면에는 과거 어머니가 대수술을 받았던 날짜와 함께 거대한 병원비 대출 내역이 또박또박 적혀 있었다.
당시 대학을 자퇴했던 동생은 집안의 빚을 갚기 위해 거친 먼 타향에서 홀로 막노동을 시작했다.
자신의 처량한 몰골이 어머니를 슬프게 할까 봐 동생은 기쁜 날마다 일부러 멀리서 눈물만 흘렸던 것이다.

매달 어머니의 계좌로 들어왔던 무명씨의 생활 보조금이 모두 동생의 피땀 흘린 돈이었음을 깨달았다.
그 사실을 알게 된 나는 녀석의 야윈 어깨를 감싸 안으며 그동안 쌓였던 깊은 오해를 한순간에 씻어냈다.
동생은 형에게짐을 얹어주기 싫었다며 그저 죄송하다는 한마디를 내뱉고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다.

나는 동생의 손을 꼭 쥐어잡고 오랫동안 비어 있던 팔순 잔칫상의 마지막 자리를 향해 함께 발걸음을 옮겼다.
어머님은 마침내 찾아온 둘째 아들의 손을 잡고 세상에서 가장 환한 미소로 오랜 그리움을 털어내셨다.
식당 창가 너머로 따스하게 내리쬐는 햇살 아래서 우리는 20년 만에 비로소 온전한 가족사진을 다시 찍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