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애경그룹, 장영신 회장
1972년 최초 여성 CEO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로 위기
비누회사를 7조 그룹으로 이끈 여성이 있다. 그는 바로 국내 최초 여성 최고경영자(CEO) 장영신(88) 애경그룹 회장이다. 자타가 공인하는 국내 1호 여성 CEO인 장영신 회장은 1936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공부에 재능을 보인 장영신 회장은 고등학교 졸업 후 국가로부터 전액 장학금 지원을 약속받기도 했다. 이후 국가에서 지원받은 장학금을 활용해 미국 필라델피아 체스넛힐대학(Chesnut Hill College)에서 화학을 공부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고 채몽인 애경유지공업 창업주가 사망하면서 다른 길을 걷게 된다. 17년 동안 비누 사업을 이끌어온 남편이 1970년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장영신 회장은 남편의 갑작스러운 타계로 34세라는 어린 나이에 경영에 발을 들였다. 그는 작은 생활용품기업을 유통, 항공, 부동산, 호텔 등 다양한 분야의 국내외 41개 계열사를 거느린 연 매출 7조 원 규모의 중견 그룹으로 성장시켜 왔다. 지난해 기준 애경그룹의 자산은 7조 1,250억 원이며 재계 서열 62위에 이름을 올렸다.

장영신 회장은 1972년 당시 여성 최초로 CEO를 맡으며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길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그가 취임한 1년 뒤인 1973년 제1차 석유 파동이 일었기 때문이다. 석유 파동이 일면서 전국 곳곳에는 유류 가격이 폭등할 뿐만 아니라 전기요금까지 상승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이에 당시에는 많은 공장들이 문을 닫았다. 애경유지공업도 예외는 아니었다.
원료 공급이 끊기면서 공장을 가동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장영신 회장은 이에 굴복하지 않고 자신이 전공한 화학을 사업에 접목했다. 미래가 화학에 있다고 생각한 장 회장은 미국의 화학업체 걸프 등을 방문해 “한국 석유화학이 발전해야 미국에도 이익이 될 것”이라고 어필했다. 설득 끝에 장 회장은 좋은 소식을 접했다. 걸프가 일본 미쓰비시가스케미컬을 새로운 원료 수급처로 연결해 준 것이다.
장 회장은 이를 발판 삼아 우유 비누와 트리오 등의 자사 제품을 수출하기 시작했다. 이후 1984년 장 회장은 영국기업 유니레버와 합작하고 애경그룹으로 사명을 변경했다. 당시 장 회장이 애경에 경영 전권을 줘야 한다는 등의 까다로운 조건을 내밀면서 업계에서는 이를 두고 합작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유니레버가 합작사 설립에 동의하면서 지금의 애경그룹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애경그룹은 1984년 창립 이후 꾸준한 성장세를 이어왔다. 장영신 회장은 사업 영역을 확장하며 제품군을 다양화했다. 그 결과 애경산업은 화장품, 치약, 샴푸 등 다양한 생활용품을 취급하는 종합 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이후 1987년 장 회장은 애경그룹 회장직에 오르면서 ‘주부 경영의 신화’라는 타이틀을 얻을 정도로 업계에서 주목받기도 했다.
업계의 주목을 받으며 승승장구하던 장 회장은 백화점 산업에도 발을 들이기 시작했다. 1993년 그는 애경 유지 공장이 자리 잡고 있던 영등포 부지에 애경백화점 구로점(현 AK플라자 구로 본점)을 설립했다. 그는 여성의 관점에서 백화점을 조망하며 시장에 접근했다. 백화점에는 쇼핑 외에도 스포츠센터, 문화공간 등이 조성되어 당시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았다.
IMF 외환위기 속에서도 장 회장의 뛰어난 경영 능력 덕분에 애경그룹은 흑자 기조를 지켜냈다. 특히 1999년에는 전년보다 11% 증가한 매출을 기록하며 그룹 전체가 눈에 띄는 성장을 이뤄냈다. 이후 2006년에는 국내 최초의 저비용항공사(LCC)인 제주항공을 설립하며 항공 산업에도 본격적으로 진출했다. 지난 40여 년 동안 애경그룹을 이끌며 기업가정신을 실천해 온 장 회장은 애경을 재계 50위권의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이러한 성과를 인정받아 2004년에는 한국 경영사학회로부터 제11회 창업 대상을 받으며 학계와 재계 모두에서 그의 뛰어난 경영 능력을 공식적으로 인증하기도 했다.

같은 해 장 회장은 장남 채형석 총괄부회장에게 그룹의 경영 전반을 맡기며 총괄 역할을 부여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애경그룹은 가족경영으로 회사 발전에 힘쓰고 있으며 장 회장의 아들, 딸 모두 경영에 발 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채형석 부회장이 그룹 전체 경영을 담당하고 있으며 차남 채동석 부회장은 유통 및 부동산 개발 분야를 책임지고 있다. 막내 채승석 사장은 골프장 운영을 중심으로 하는 애경 개발을 맡고 있으며 외동딸 채은정 부사장은 남편 안용찬 부회장과 함께 애경산업에서 생활 및 항공 부문을 공동으로 경영하고 있다.
한편, 지난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로 인해 애경그룹에도 타격이 생겼다. 지난해 12월 29일 태국 방콕에서 출발해 전남 무안공항에 착륙을 시도하던 제주항공 여객기가 활주로를 이탈해 로컬라이저 시설과 충돌한 뒤 폭발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해당 사고는 동체착륙 과정에서 발생했으며 탑승자 181명 중 179명이 사망해 대형 참사로 이어졌다. 사고가 발생하고 11시간 뒤 애경그룹 지주사인 AK홀딩스는 장 회장과 임직원의 이름으로 공식 사과문을 발표한 바 있다. 하지만 당시 제주항공의 주가는 급락했고 기업 이미지도 추락했다. 해당 사고로 인해 올해 1분기 매출도 적자 전환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5일 제주항공은 매출이 3,847억 원으로 집계되었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해 1분기 대비 31% 하락한 수치다. 반세기 넘게 애경그룹을 일군 장영신 회장의 발자취는 한국 여성 경영인의 길을 연 상징적인 이야기로 남아 있다. 그러나 항공사고와 그 여파는 애경그룹에 새로운 도전과 과제를 안기고 있다. 위기를 기회로 바꿔온 과거처럼 이번 위기도 극복하며 또 한 번의 전환점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 업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이 콘텐츠는 카카오의 운영 지침을 준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