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천만원으로 11평 시골집 짓기 6

은퇴 후 교외 지역에 농막이나 작은 주택을 마련하고 전원생활을 원하시는 분들이 늘어나고 있다. 특히, 올해 초부터 10평 규모에 숙박까지 가능한 ‘농촌체류형 쉼터’가 허용되면서 시골에 소형 주택을 짓는 건축주가 많아질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지난해 건축업과는 무관한 공무원 출신 방송국 PD가 고향 시골에 직접 집을 짓고 그 경험을 <이 PD의 좌충우돌 4천만원으로 11평 시골집 짓기>라는 책으로 펴내 화제가 됐다. 저자 이상철 씨는 2024년 7월호부터 3회에 걸쳐 본지에 프롤로그 성격의 내용을 연재했는데 짧은 기간임에도 독자들의 눈길을 끌었다. 이에 독자들의 아쉬움을 충족시키고자 잠시 중단됐던 ‘4천만원으로 11평 시골집 짓기’의 좌충우돌 스토리 연재를 재개한다.
진행 이형우 기자 | 글 사진 이상철(국악방송 프리랜서 PD)
진행 이형우 기자 | 글 사진 이상철(국악방송 프리랜서 PD)
“니는 조상님 산소를 돌봐야하니까. 거 집 짓기를 잘했다.”
내가 고향 시골에 집을 지은 것을 알게 된 친척들의 첫 반응이었다. 물론 내 생각도 그랬다. 작은집 종손으로서 멀리 고향에 있는 조상님들의 산소를 어떻게 돌봐야 하나 하는 걱정이 있었다. 그래서 시골집을 갖게 되었을 때 우선 그 점이 안심되었다. ‘눈앞의 이익을 보지 말고 고개를 들어 역사를 보라’는 말처럼 한 단계 높은 차원에서 과거와 미래를 생각하는 인생 후반기를 보내고 싶었다. 하지만 조상 제사를 지내기 위한 제실祭室로만 사용하려고 5개월 동안 그 고생하면서 집을 지은 것은 아니었다.
‘그냥 좀 놀다가 쉬다가 해야지’라는 마음도 컸다. 육십 평생 대부분을 아파트에 살면서 아스팔트 위를 달려 왔으니, 은퇴 이후에는 나무로 지은 집에서 맑은 공기로 숨 쉬고 흙을 밟으며 유유자적悠悠自適 살고 싶었다. 비로소 도시를 떠나 자연 속에 파묻히고자 했다. 새소리 물소리를 들으며 바쁘게 지내온 몸과 마음에 휴식을 주고, 지난날 사람들에게 잘못했던 점도 되짚어 반성하면서 사람들과 부대끼며 받은 마음의 상처도 위로받고 싶었다.
내가 고향 시골에 집을 지은 것을 알게 된 친척들의 첫 반응이었다. 물론 내 생각도 그랬다. 작은집 종손으로서 멀리 고향에 있는 조상님들의 산소를 어떻게 돌봐야 하나 하는 걱정이 있었다. 그래서 시골집을 갖게 되었을 때 우선 그 점이 안심되었다. ‘눈앞의 이익을 보지 말고 고개를 들어 역사를 보라’는 말처럼 한 단계 높은 차원에서 과거와 미래를 생각하는 인생 후반기를 보내고 싶었다. 하지만 조상 제사를 지내기 위한 제실祭室로만 사용하려고 5개월 동안 그 고생하면서 집을 지은 것은 아니었다.
‘그냥 좀 놀다가 쉬다가 해야지’라는 마음도 컸다. 육십 평생 대부분을 아파트에 살면서 아스팔트 위를 달려 왔으니, 은퇴 이후에는 나무로 지은 집에서 맑은 공기로 숨 쉬고 흙을 밟으며 유유자적悠悠自適 살고 싶었다. 비로소 도시를 떠나 자연 속에 파묻히고자 했다. 새소리 물소리를 들으며 바쁘게 지내온 몸과 마음에 휴식을 주고, 지난날 사람들에게 잘못했던 점도 되짚어 반성하면서 사람들과 부대끼며 받은 마음의 상처도 위로받고 싶었다.

텃밭이 주는 즐거움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TV 프로그램을 50대 남자들이 좋아한다고 하는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나도 집을 짓고 나서 한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고 뒹굴뒹굴했다. 하지만 마냥 노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한적한 시골집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만큼이나 무료한 일도 없다.
그래서 집을 짓고 난 뒤 이듬해 새봄이 돌아오자 나는 이웃집에 부탁해 트랙터로 마당 한 켠을 갈고 텃밭을 가꾸었다. 집에 빈터가 적지 않아 꽤 넓은 밭이 만들어졌다. 거기에 심고 싶은 거의 모든 작물을 심었다.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TV 프로그램을 50대 남자들이 좋아한다고 하는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나도 집을 짓고 나서 한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고 뒹굴뒹굴했다. 하지만 마냥 노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한적한 시골집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만큼이나 무료한 일도 없다.
그래서 집을 짓고 난 뒤 이듬해 새봄이 돌아오자 나는 이웃집에 부탁해 트랙터로 마당 한 켠을 갈고 텃밭을 가꾸었다. 집에 빈터가 적지 않아 꽤 넓은 밭이 만들어졌다. 거기에 심고 싶은 거의 모든 작물을 심었다.


먼저, 넝쿨 올라갈 지주대를 세운 뒤 오이를 심었다. 이어 옥수수, 가지, 상추, 케일, 고추, 파, 호박, 수세미, 땅콩, 고구마, 토란 등의 어린 모종과 순을 정성스레 심었다. 널따란 두둑에 수박과 참외도 심었다. 농약은 한 번도 치지 않았다. 심지어 농약 치는 장비도 없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수확은 풍성했고 열매는 달았다. 주말에만 내려갈 수 있었기에 잡초가 온 밭에 가득했지만, 잡초 사이로 익은 과실을 찾아 먹는 재미도 쏠쏠했다. 땅이 참외랑 잘 맞았는지 정말로 달고 컸다.
텃밭이 주는 즐거움은 상상 외로 컸다. 수박과 참외 그리고 각종 야채는 끊이지 않았고, 텃밭을 가꾸는 그 자체도 즐거웠다. 잡초를 뽑고 있으면 잡념도 사라졌다. 노동으로 인해 건강에도 도움이 되었고, 과실이 익어 가는 모습을 보면 생산의 기쁨을 느낄 수 있었다. 올해로 세 번째 텃밭 농사를 시작하고 있다. 이즈음에 모종 가게에 가면 각종 작물의 모종들이 보기 좋게 진열돼 있다. 그 어린 모종들을 보면 가능한 한 많이 심고 싶어진다. 작년에 잘되었던 작물들과 그동안 심어보지 못했던 모종들도 다 심어보고 싶다. 텃밭을 어떻게 꾸며 나갈지 계획하고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텃밭이 주는 즐거움은 상상 외로 컸다. 수박과 참외 그리고 각종 야채는 끊이지 않았고, 텃밭을 가꾸는 그 자체도 즐거웠다. 잡초를 뽑고 있으면 잡념도 사라졌다. 노동으로 인해 건강에도 도움이 되었고, 과실이 익어 가는 모습을 보면 생산의 기쁨을 느낄 수 있었다. 올해로 세 번째 텃밭 농사를 시작하고 있다. 이즈음에 모종 가게에 가면 각종 작물의 모종들이 보기 좋게 진열돼 있다. 그 어린 모종들을 보면 가능한 한 많이 심고 싶어진다. 작년에 잘되었던 작물들과 그동안 심어보지 못했던 모종들도 다 심어보고 싶다. 텃밭을 어떻게 꾸며 나갈지 계획하고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시골로 와 상젊은이가 된 환갑둥이
그러던 어느 날 9촌 숙부 되시는 이웃 친척분이 불쑥 물으셨다.
“시골 와서 뭐 할라꼬?”
뭔가 정곡을 찔린 듯한 기분이 들었다.
“도시에서 일이 끊어지면 차차 일거리를 찾아 봐야지요.”
나는 ‘그냥 행복하게 텃밭이나 가꾸고 있어요’라고 대답할 수는 없었다.
“젊은 사람들은 시골에서도 할 일은 많다.”
먼 친척 조카가 시골에 와서 하는 짓이 영 마뜩잖은지 당최 성에 차지 않는 듯한 표정이셨다.
시골집을 짓고 고향에 돌아오면서 느낀 가장 큰 변화는 내가 다시 무척 어려졌다는 것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회사에서는 정년을 앞둔 고참 중 고참이었고, 은퇴를 앞두고 뒷방으로 밀려나 늙은이 취급을 받았었는데, 시골에 오니 노인정에는 감히 발도 못 붙이는 젊은이 중의 상젊은이가 돼 있었다.
다시 젊은이 취급을 받는다는 건 신선한 충격이다. 실제로 우리 마을 노인정에서는 70대가 심부름을 하고 있다. 그러니 이제 겨우 환갑이 된 새파란 젊은이가 빈둥거리며 텃밭 농사나 하고 있으니 얼마나 한심해 보였겠는가.
그러던 어느 날 9촌 숙부 되시는 이웃 친척분이 불쑥 물으셨다.
“시골 와서 뭐 할라꼬?”
뭔가 정곡을 찔린 듯한 기분이 들었다.
“도시에서 일이 끊어지면 차차 일거리를 찾아 봐야지요.”
나는 ‘그냥 행복하게 텃밭이나 가꾸고 있어요’라고 대답할 수는 없었다.
“젊은 사람들은 시골에서도 할 일은 많다.”
먼 친척 조카가 시골에 와서 하는 짓이 영 마뜩잖은지 당최 성에 차지 않는 듯한 표정이셨다.
시골집을 짓고 고향에 돌아오면서 느낀 가장 큰 변화는 내가 다시 무척 어려졌다는 것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회사에서는 정년을 앞둔 고참 중 고참이었고, 은퇴를 앞두고 뒷방으로 밀려나 늙은이 취급을 받았었는데, 시골에 오니 노인정에는 감히 발도 못 붙이는 젊은이 중의 상젊은이가 돼 있었다.
다시 젊은이 취급을 받는다는 건 신선한 충격이다. 실제로 우리 마을 노인정에서는 70대가 심부름을 하고 있다. 그러니 이제 겨우 환갑이 된 새파란 젊은이가 빈둥거리며 텃밭 농사나 하고 있으니 얼마나 한심해 보였겠는가.
‘할 일 없으면 농사나 짓지’… 시골은 산업의 최일선
시골은 마을 분들에게 치열한 삶의 현장이다. 조금이라도 더 생산성 높은 작물을 찾아 효과적으로 키워 내야 하는 산업의 최일선인 것이다. 모르는 사람에게만 한가하게 보였을 뿐 결코 한갓지게 시간을 보낼 곳만은 아니다.
하지만 막상 시골에서 본격적으로 농사를 짓자면 그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먼저, 장비의 벽에 가로막힌다. 요즘은 일손도 부족하고 대부분 작업이 기계화돼서 논농사와 밭농사를 전업으로 하자면 장비 없이는 하기 힘들다. 그런데 보통 트랙터 값이 중형차 가격에 맞먹는다. 그리고 농사지을 땅을 조성하고 비닐하우스 등 부대시설을 짓는 데도 많은 비용이 소요된다. 농사를 짓기 위해서는 초기에 많은 돈과 시간 투자가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할 일 없으면 시골에서 농사나 짓지’라는 말은 크게 틀린 말이다.
시골은 마을 분들에게 치열한 삶의 현장이다. 조금이라도 더 생산성 높은 작물을 찾아 효과적으로 키워 내야 하는 산업의 최일선인 것이다. 모르는 사람에게만 한가하게 보였을 뿐 결코 한갓지게 시간을 보낼 곳만은 아니다.
하지만 막상 시골에서 본격적으로 농사를 짓자면 그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먼저, 장비의 벽에 가로막힌다. 요즘은 일손도 부족하고 대부분 작업이 기계화돼서 논농사와 밭농사를 전업으로 하자면 장비 없이는 하기 힘들다. 그런데 보통 트랙터 값이 중형차 가격에 맞먹는다. 그리고 농사지을 땅을 조성하고 비닐하우스 등 부대시설을 짓는 데도 많은 비용이 소요된다. 농사를 짓기 위해서는 초기에 많은 돈과 시간 투자가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할 일 없으면 시골에서 농사나 짓지’라는 말은 크게 틀린 말이다.


첫 결실을 앞둔 어설픈 농사꾼의 경제 활동
귀촌한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작게 농사를 시작한다. 큰 투자 없이 자신의 힘으로 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다. 나도 고향에서 마냥 놀 생각은 없었기에 4년 전 조그마하게 과수원 부지를 조성하고 자두나무 묘목을 심었었다. 그래서 올해 첫 수확을 앞두고 있다. 어설픈 농사꾼이 주말에 오가며 키운 나무들이라 잘 가꿔진 과수원에 비할 바는 못 되지만 그래도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첫 결실을 기다리고 있다.
2022년 무더웠던 그해 여름, 나는 오직 집을 완공하는 것에만 몰두했었다. 그런데 시골집이 생기자 그곳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새로운 문제가 떠올랐다.
흔히 우리는 크고 넓고 멋진 집을 갖기 위해 애쓰고 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그 집에서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물음에 답하는 것이 아닐까. 특히, 인간 생활을 결정한다는 하부 구조인 경제 활동에 대해서 말이다. 시골에 멋진 집을 갖기 전에 반드시 생각해 봐야 할 과제인 것 같다.
귀촌한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작게 농사를 시작한다. 큰 투자 없이 자신의 힘으로 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다. 나도 고향에서 마냥 놀 생각은 없었기에 4년 전 조그마하게 과수원 부지를 조성하고 자두나무 묘목을 심었었다. 그래서 올해 첫 수확을 앞두고 있다. 어설픈 농사꾼이 주말에 오가며 키운 나무들이라 잘 가꿔진 과수원에 비할 바는 못 되지만 그래도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첫 결실을 기다리고 있다.
2022년 무더웠던 그해 여름, 나는 오직 집을 완공하는 것에만 몰두했었다. 그런데 시골집이 생기자 그곳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새로운 문제가 떠올랐다.
흔히 우리는 크고 넓고 멋진 집을 갖기 위해 애쓰고 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그 집에서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물음에 답하는 것이 아닐까. 특히, 인간 생활을 결정한다는 하부 구조인 경제 활동에 대해서 말이다. 시골에 멋진 집을 갖기 전에 반드시 생각해 봐야 할 과제인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