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사장단 인사 코드] 'R&D 공로 인정' SK하이닉스, 4년만에 ‘5인 사장’ 체제

곽노정 SK하이닉스 대표이사(사장)가 지난해 5월 경기 이천 본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발표하고 있다. /사진 제공=SK하이닉스

SK그룹이 불확실한 경영환경을 타개하기 정기 임원인사를 조기에 단행한 가운데 SK하이닉스가 첫 사장급 최고기술책임자(CTO)를 배출했다.

다만 당초 재계의 관심을 모았던 곽노정 SK하이닉스 대표이사(사장)의 부회장 승진은 불발됐다. 이에 일부에서는 곽 사장이 글로벌 인공지능(AI) 열풍에 선제대응해 고대역폭메모리(HBM) 개발과 시장 선점을 이끈 공로가 작지 않은 만큼 향후 조직재편과 부사장급 이하 임원인사 등에서 힘을 실어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첫 사장급 CTO 배출…HBM 개발 공로 인정

SK그룹은 30일 수펙스추구협의회를 열고 계열사 이사회에서 확정된 2026년 사장단인사를 공유했다고 밝혔다. 이번 인사에 SK그룹은 현장 실무경험과 연구개발(R&D) 역량을 갖춘 리더를 전면에 배치했다고 설명했다.

이번에 SK하이닉스에서는 차선용 미래기술연구원장이 사장으로 승진했다. SK하이닉스에서 사장급 CTO가 배출된 것은 처음이다. 첨단 메모리 기술을 개발해 회사 성장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한 결과로 풀이된다.

미래기술연구원은 CTO가 이끄는 R&D조직으로 차세대 메모리 개발 로드맵을 세우고 이를 주도한다.

차 사장은 1967년생으로 카이스트에서 전기전자공학을 전공하며 학사, 석사, 박사 학위 등을 획득했다. 2015년 SK하이닉스 D램 코어 태스크포스(TF) 담당을 거쳐 D램 TD 담당, D램개발담당을 맡았으며, 2022년 미래기술연구원으로 옮긴 뒤 올해부터 미래기술연구원장과 CMOS 이미지센서(CIS) 개발을 겸직했다.

차선용 SK하이닉스 CTO 겸 미래기술연구원장(사장) /사진 제공=SK하이닉스

차 사장은 10나노 D램 테크 플랫폼을 도입하고 세계 최초로 16Gb 더블데이터레이트(DDR5) D램을 출시해 국내 반도체 산업이 빅데이터와 서버 시장에서 우위를 점하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실제로 이 공로를 인정받아 2023년에는 과학기술훈장 혁신장을 받기도 했다.

테크 플랫폼은 한 세대 제품에만 국한되지 않고 여러 세대에 적용할 수 있는 '기술적인 틀'이다. 1세대(1x) D램에 처음 적용된 이 플랫폼은 2세대(1y), 3세대(1z), 4세대(1a)를 넘어 이후 세대까지 이어지면서 현재 SK하이닉스 D램 기술력의 기반이 됐다.

이에 이번 승진은 SK하이닉스가 HBM 시장의 주도권을 차지하는 과정에서 R&D의 역할이 컸다는 점을 높이 평가한 결과로 풀이된다. 실제로 SK하이닉스는 올 3분기에 HBM 경쟁력을 앞세워 매출 24조4489억원, 영업이익 11조3834억원을 기록하며 창사 이후 최초로 영업이익 '10조클럽'에 입성했다.

앞서 차 사장은 2019년 HBM2E(3세대), 2021년에는 세계 최초로 HBM3(4세대)를 개발했다. 이듬해 SK하이닉스는 HBM 시장 점유율 50%(트렌드포스 기준)를 차지하며 업계 1위에 올랐다.

또 올해 8월 321단 쿼드레벨셀(QLC) 낸드 양산을 시작한 것도 대표적인 성과다. 당시 SK하이닉스는 "세계 최초로 300단 이상의 낸드를 QLC 방식으로 구현했다"며 "현존하는 낸드 제품 중 최고 집적도를 가진 제품으로 글로벌 고객사의 인증을 받아 2026년 상반기부터 AI 데이터센터 시장을 본격 공략하겠다"고 밝혔다.

부회장 승진 속도 조절…4년 만에 '5인 사장' 체계 구축

당초 이번 인사에서 부회장 영전이 유력할 것으로 보였던 곽 사장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승진이 불발됐다. SK그룹의 보수적인 인사 기조가 반영된 결과로 풀이된다.

다만 곽 사장이 그간 SK하이닉스를 이끌며 HBM 시장을 주도하고 실적을 크게 높인 공로가 큰 만큼 향후 조직재편과 부사장급 이하 임원인사 등에서 곽 사장에게 힘을 실어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한편 이번 인사에서 SK하이닉스는 4년 만에 곽 사장을 비롯해 송현종 코퍼레이트센터 사장, 안현 개발총괄(CDO) 사장, 김주선 AI인프라 사장, 차 사장 등 '5사장 체제'로 복귀했다.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송현종 SK하이닉스 코퍼레이트센터 사장, 안현 CDO 사장, 김주선 AI인프라 사장, 차선용 CTO 겸 미래기술연구원장(사장) /사진 제공=SK하이닉스

SK하이닉스는 2021년 연말 인사에서 당시 곽노정 제조·기술 담당 부사장과 노종원 경영지원 담당 부사장을 각각 사장으로 올리면서 이석희, 곽노정, 노종원, 진교원, 김동섭 등 5사장단 체제를 구축했다.

향후 SK하이닉스는 각 사장들 간 역할 조정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일부에서는 차 사장이 이끄는 미래기술연구원이 차세대 미래 개발을, 안현 사장이 이끄는 개발총괄이 상용화를 앞둔 기술 개발을 각각 맡을 것으로 추정한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이번 인사에서 곽 사장이 부회장으로 승진하지 못했지만 향후 기회가 충분할 것"이라며 "SK하이닉스는 올해뿐 아니라 내년에도 최대 실적이 예상되는 만큼 현 체제에서 큰 변화보다는 곽 사장을 중심으로 사업에 더욱 속도를 낼 것"이라고 설명했다.

권용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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