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던 워페어2를 브라우저로 플레이하고,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가 아이폰에서 돌아가고, 젤다의 전설은 별도의 에뮬레이터 없이 맥에서 구동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입이 떡 벌어질 포팅이었지만, 불과 수 주 사이 이러한 오버 플랫폼 포팅이 주는 감흥은 꽤나 떨어진 상태다. 당장 하룻밤 자고 일어나면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게임을 예상치 못한 다른 플랫폼으로 구동했다는 소식이 수없이 쏟아진다. 이건 에뮬레이터 쪽도 다르지 않다.
2025년 말 기기 부팅 절차 최하위에 있는 핵심 부트롬 유출로 우려가 커졌던 PS5. 이후 별다른 성과가 없어 시들하던 탈옥 커뮤니티는 근 수개월 사이 갑자기 속도를 높이는 개발자들의 정보 공개에 들썩이기 시작했다. 여기에 PS2/3 실물 디스크가 PS5에서 돌아가고, 탈옥 PS5에서 손쉽게 천 개 이상의 라이브러리를 자유롭게 받을 수 있는 홈브류 앱까지 활개를 치고 있다.

그리고 어쩌면, 게임이라는 미디어 역사상 가장 큰 변화의 기로를 우리는 목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봉인이 풀린 PS5한 번 뚫리자 쏟아진 홈브류
2025년 말 터진 PS5의 부트롬 키 유출은 PS5 보안의 종막을 선언하는 듯했다. 부트롬은 콘솔 최하위 단계의 코드다. 칩에 직접 담겨 전원을 켜면 가장 먼저 실행되며, 부트로더와 펌웨어 검증까지 담당한다. 부트롬 키는 부트롬을 검증하는 데 쓰이는 암호화 키다. 즉, 부트롬 키만 있다면, 다른 사람이 관련 코드의 암호를 풀어 분석할 수 있는 핵심 열쇠인 셈이다.
6월경 첫 공개 익스플로잇의 경우 실행 시간만 50분이 걸렸다. 하지만 탈옥 툴 Relapse의 등장으로 이야기가 달라졌다. 9월 말 공개된 Relapse는 익스플로잇까지 수 초, 길어야 1분 내 실행되는 수준이었다. 그리고 한번 뚫리기 시작한 PS5에는 수많은 비공식 프로그램, 홈브류가 난립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과정에는 AI가 있었다.
탈옥의 여러 과정과 홈브류는 PC와는 다른 콘솔 펌웨어에 대한 이해가 필요했다. 하지만 그 주기가 점차 가속화되고 있다. Relapse가 직접 AI 활용을 밝히지는 않았지만, 폭발적으로 작업 속도가 높아진 데에 AI가 쓰이지 않았다는 게 더 믿기지 않는 이야기가 될 것이다. PS2 디스크를 PS5에서 구동하게 만든 PS5SX2는 공식적으로 AI의 도움을 받았다고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이 지루한 노동을 AI가 맡으며 이야기가 달라졌다. 게임의 동작 분석, 정보 추출, 취약점 연구까지 많은 부분에서 엄청난 속도 향상이 이루어졌다. 게다가 결과물이 인간이 수정, 분석, 재작성하기 쉬운 상태의 소스 코드로 결과물이 나오며, 추가적인 개발 작업에도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더 싸고, 더 빠르고, 더 쉬워졌다AI가 낮춘 리버스 엔지니어링의 문턱
특히 클로드의 9월 출시된 Opus5.5의 등장은 홈브류와 에뮬레이터 개발 속도를 끌어올렸다. Relapse의 공개 버전이 9월 29일 출시된 이후 PS5에서 PS2를 구동하는 PS5SX2의 초기 버전이 공개됐고, 게임 실행 관리 도구들도 쏟아져 나왔다. 특히 10월 9일에는 1,600개 이상의 PS4 게임을 제공하고 플레이할 수 있게 만드는 비공식 라이브러리 스토어까지 등장했다. 10월 중순에는 PS3 에뮬레이터 실험 빌드가 실제로 구동되고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과거의 개발 환경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속도로 홈브류 개발과 진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셈이다.

AI가 인간이 따라갈 수 없는 수준의 작업 능력을 보여주면서, 가격은 내려가고 속도는 빨라졌다. 그리고 동시에 쉬워졌다.
결국 탈옥과 에뮬레이터, 디컴파일과 포팅은 서로 다른 기술이지만 한 방향을 가리킨다. 게임을 특정 플랫폼에 묶어 두던 장벽이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게임의 해체, 그 첫 장이다.

포팅은 게임이 원래 출시된 플랫폼이 아닌 다른 플랫폼에서 돌아가게 만드는 작업이다. 당연히 서로 다른 플랫폼의 특징과 디컴파일 작업 등 신경 쓸 부분이 많은 작업이다. 그래서 팬 포팅은 한두 명이 주도적으로 작업하기보다는, 수십 개월에서 수년에 걸친 전문적인 협업이 필요했다. '트랜스포트 타이쿤', '롤러코스터 타이쿤'이나 고전 어드벤처 게임 엔진을 재구현한 '스컴VM(ScummVM)' 등 단순히 프로젝트를 공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십수 년간 후속 개발을 이어 가는 경우도 허다했다.
하지만 근래 포팅의 분위기는 다르다. 유사하게 흉내만 냈던 게임들만 남아 있던 코지마 히데오의 '사일런트 힐즈 P.T.'는 에뮬레이터가 아닌 네이티브 포팅으로 되살아났고, DLSS/FSR 업스케일링에 레이트레이싱, 프레임 생성, 포토 모드까지 더해졌다. 'GTA5'는 웹어셈블리와 웹GPU를 활용해 브라우저에서 실행됐다. 이외에도 '젤다의 전설: 꿈꾸는 섬', '심슨 레슬링' 등 시대와 플랫폼을 가리지 않는 포팅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나열한 것만 이 정도지, 과거였다면 수년이 걸렸을 프로젝트가, 정말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지고 있다. 그리고 이들은 AI의 도움을 받거나, 코드 대부분을 AI가 작성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여기에 10월 급부상한 오픈소스 도구 'Reverse Engineer Anything(REA)'의 등장은 누구나 디컴파일부터 앱과 펌웨어 분석 등 리버스 엔지니어링을 수행할 수 있는 문턱을 더 낮췄다. 기존의 AI 리버스 엔지니어링은 AI가 직접 코드를 분석하거나, 스크립트를 작성해야 했다. 당연히 속도도 느리고, 결과 역시 신뢰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REA는 Ghidra 등의 리버스 엔지니어링 전문 도구를 MCP로 연결해 조작하는 방식이다. 성능은 이미 검증됐지만 전문 지식이 필요한 프로그램을 이제는 AI가 직접 제어하게 해, 사용자가 도구 사용법을 몰라도 자연어로 간단하게 지시만 해도 분석이 가능하도록 만들었다.
이러한 리버스 엔지니어링의 확산은 게임뿐만 아니라 포토샵 등 어도비 라인업, 기타 구독제 서비스 앱의 오픈소스 공개를 가속화시키고 있다. 마음만 먹으면, 전문 지식 없이도 누구나 이미 존재하는 게임과 앱을 간단하게 복제해 낼 수 있게 된 셈이다.

무너진 심리적 저항선소유권 논쟁이 바꾼 마음
PS5 탈옥과 게임 포팅 모두 이미 존재하는 게임과 콘솔의 자산을 활용한다는 점에서 저작권법이나 DMCA, 라이선스 위반 등의 우려가 있다. 개발자들 역시 프로젝트를 공개하면서 개인 정보는 거의 드러내지 않았고, 이용자 사이에서도 이러한 프로젝트가 불법이라는 반응이 많았다.하지만 게임이라는 콘텐츠의 소장 논의가 본격적으로 불거지면서 이야기가 달라졌다. 스팀, PS 스토어, 닌텐도 e숍, Xbox 스토어 등 디지털 게임을 판매하는 대다수의 플랫폼은 게임을 완전히 판매해 소유권을 넘기기보다는 이용 권한만 판매하는 구조다. 콘텐츠를 소유하는 게 아니라 이용 권한을 구매하는 것이다. 계정이 정지되면 라이브러리 전체에 접근할 수 없게 될 수 있다. 서비스 종료에 따라 게임을 플레이하지 못하게 되기도 한다.

여기에 소니의 콘텐츠 삭제 공지도 이용자의 불만을 키웠다. 소니는 제작사와의 라이선스 계약 만료를 이유로 영화와 TV 에피소드 551편을 영구적으로 삭제하겠다고 알렸다. 이용자가 제 돈 주고 산 콘텐츠까지 삭제되는 것이다. 2023년 '더 크루'는 서비스를 종료하며 싱글 플레이까지 불가능하게 만들었고, 이는 디지털 소유권 논의를 다시 불러왔다.
특히 소니의 디스크 생산 중단 발표는 게임을 소유한다는 감각 자체에 대한 반발로까지 이어졌다. 소니는 지난 7월 2028년 1월부터 플레이스테이션 신작 게임의 실물 디스크 생산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실물 패키지 판매 감소와 디지털 판매에 따른 수익성 증대 등 여러 이유가 거론됐지만, 팬들의 반발은 그 이상으로 컸다. 그리고 이는 곧 디지털 게임 구매, 나아가 게임 소장 자체에 대한 의구심을 키웠다.

물론 소니의 발표로 모든 이용자가 탈옥 앱을 이용하고, 포팅을 통해 오픈소스로 몰려가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시장 상황의 근본에는 앞서 언급한 AI 사용을 통한 비용 하락이 있다. 하지만 이를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달라진 것이다. 전이라면 열이면 열 불법적인 글이라 비난했겠지만, 지금은 분명 그 저항감이 낮아졌다.
그리고 플랫폼의 통제가 더욱 거세질수록, AI를 도구 삼아 이를 우회하거나 재현하려는 움직임은 점점 커지고, 이를 받아들이는 사람도 많아질 것이다. 게임의 해체는 기술만이 아니라, 해체해도 된다고 느끼는 사람들의 증가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데모 하나가 복제품이 되는 시대게임사는 어떻게 대응하나
근래 해외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유행하는 글이 있다. 절대 게임이 완성되기 전에 공개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랬다간 개발자가 돈을 벌기도 전에 아이디어를 복제한 누군가가 '로블록스'에 게임을 만들어 먼저 돈을 벌 것이라는 게 그 이유였다. 단순한 밈이 아니다. 작년 화제가 됐던 'PEAK'의 개발진은 로블록스에서 거의 그대로 복제한 게임들이 나돌자 '소액 결제가 가득한 로블록스판 슬롭을 플레이하느니 차라리 불법 복제를 해라'라고 말했다.이는 단순히 수익화에 대한 우려만을 드러낸 게 아니다. 창작자가 쏟은 노력과 아이디어가 너무도 쉽게 다른 이들에게 복제된다는 데 대한 한탄에 가깝다. 그리고 리버스 엔지니어링이 확대된 이후, 이는 로블록스에만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게 됐다.

이 때문에 현재 다수의 인디 개발자가 데모 공개를 피해 클로즈드 테스트 등으로 전환하거나, 아예 출시 시점까지 게임 공개를 미루고 있다.
대형 게임사들은 시각이 다르다. 수백, 수천 명 직원의 흥망이 AAA 타이틀 한두 개에 달려 있는 만큼, 더 이른 단계에서 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액티비전은 '콜 오브 듀티: 모던 워페어2'의 디컴파일 프로젝트 영상을 비활성화했고, 베데스다 역시 재미로 만든 AI 기반 폴아웃 포팅 프로젝트에 발 빠르게 법적 조치를 취했다.

AI가 만든 콘텐츠와 인간이 만든 콘텐츠의 경계, 그리고 단순 복제와 원본의 흔적이 남지 않게 완전히 새로 만든 오픈소스 코드의 경계는 점점 모호해진다. 삭제 명령이나 개발 중단 요청을 받는다고 해서, 수십 시간 만에 완벽하게 이식이 끝나 온라인을 떠도는 파일과 이미 개인의 기기에 설치된 코드까지 막을 수는 없다.
실제로 Xbox는 이에 대한 대응으로 플레이어에게 이득이 되는 해법을 찾겠다는 방침을 내놨다. Xbox Labs는 리버스 엔지니어링과 코드 재구성을 막을 수 없는 현상으로 보고, 이를 먼저 연구해 수용하는 해법을 앞서 제시한 것이다.

게임의 해체는 어디까지 갈까만드는 시간과 허무는 시간의 격차
기사를 쓰고 있는 이 며칠 사이에도 수많은 게임 포팅이 등장했다.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 어제는 새로운 툴이 또 다른 게임을 포팅하는 데 쓰였고, PS5는 이제 PC에서 에뮬레이션을 넘어 호환 레이어로 네이티브처럼 구동된다. PS2는 정품 바이오스 코드를 사용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재현한 버전까지 나오고 있다.그리고 이는 게임만의 문제가 아니다. 리버스 엔지니어링 열풍이 불면서 포토샵, 라이트룸, 일러스트레이터, 프리미어 등 어도비 디자인 라인업을 복제하는 프로젝트가 다수 진행됐다. 이에 대한 저작권 이슈가 불거지자, 이제는 거의 같은 기능을 하면서도 원본 코드를 사용하지 않은 대안 프로그램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제 분석할 시간과 돈만 있으면 누구든 게임과 앱을 복제할 수 있는 시대가 됐다. 어쩌면 그 시간 문제마저 사라질지 모른다.

하지만 그는 이번에는 처음부터 에이전트 환경에서 '스노우보드 키즈' 포팅을 진행했고, 불과 83일 남짓 만에 100% 달성률을 기록했다. 물론 함수의 수는 각각 2,145개와 2,995개로 차이가 나지만, 함수당 소요 시간만 따져도 약 5배 빠르다. 당시 쓰인 Opus4.5의 터미널 벤치2.0 점수는 59.3%였다. 약 반년 뒤 나온 Opus5는 터미널 벤치2.1 버전에서 89.1%를 기록했다. 같은 Opus5가 더 어려운 새 버전인 터미널 벤치4.0에서는 52.3%였고, 약 2개월 뒤 출시된 Opus5.5는 66.4%를 기록했다.
터미널 벤치가 리버스 엔지니어링 성능을 그대로 보여주는 수치는 아니다. 하지만 원본을 베끼지 않고 동작을 재현하는 능력, 그리고 인간의 개입 없이 도구를 다루는 능력이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어쩌면 개발자가 만든 게임이 단 하루, 아니 수 시간 만에 복제되어 아무런 비용 없이 온라인을 떠도는 미래가 그리 멀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 미래에는 플랫폼의 제약도 없다. 이미 PS5에서 Xbox 게임 패스가 돌아가고, Xbox에서는 PS5가 돌아간다. 닌텐도 스위치 게임은 맥에서 구동된다.

그렇다고 AI에 모든 것을 맡기는 것이 옳은 방향인지는 질문해 봐야 한다. 함수 일치율과는 별개로, 재컴파일과 포팅 과정에서 기능과 호환성을 제대로 잡아내지 못한 AI 앱들이 상업화 단계에 이르러 불만을 사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나타나고 있다. 또 AI가 인간의 창의성을 완전히 대체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인간 창작자를 어디까지 보호할 수 있을지에 대한 논의도 이루어져야 한다.
모든 게임의 저작권을 지키지 못해 결국 오픈소스가 되어 버리는 세상. 그 미래는 어쩌면 생각보다 훨씬 빨리 올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방향으로 향하는 게임의 해체는 지금 기술과 마음, 산업이라는 세 층에서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