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감싼 돌의 무리, 대멸종의 연결고리
당시 적도였던 곳에 집중된 대형 충돌구, ‘고리’의 흔적으로 추정
햇빛 가려 기온 8도 하락…갑작스러운 추위에 해양 생물 85% 절멸
태양계 6번째 행성 ‘토성’의 고리를 사상 처음 관측한 사람은 갈릴레오 갈릴레이였다. 1609년 망원경으로 토성을 살피던 중 찾아냈다. 그런데 사실 그가 본 모습은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고리가 아니었다. 그는 토성이 ‘귀’를 가지고 있다고 했다. 망원경 성능이 좋지 않아 생긴 착각이었다.
토성 옆 물체가 귀가 아니라 고리라는 사실은 1655년 네덜란드 천문학자 크리스티안 하위헌스가 당시로서는 고성능에 속하는 망원경을 통해 확인했다.
그런데 먼 옛날에는 지구에도 토성처럼 고리가 있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이 고리는 그저 멋진 ‘우주의 액세서리’가 아니었다. 지구에 엄청난 환경 변화를 불러와 생물들에게 대재앙을 일으킨 ‘장본인’이었다. 이것이 무슨 말일까.
적도 상공에 돌덩이 ‘둥둥’
호주 모나시대 연구진은 지난주 국제학술지 ‘어스 앤드 플래네터리 사이언스 레터스’를 통해 4억6600만년 전 지구에 고리가 생겨 장기간 지속됐다는 분석 결과를 발표했다.
현재 지구에는 고리 흔적이 전혀 없다. 위성(달)만 달랑 하나 있다. 그런데도 연구진이 시점까지 콕 집어 지구에 고리가 존재했다고 자신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이상한’ 흔적 때문이다. 흔적의 정체는 소행성이 지표면에 돌진한 뒤 땅에 남긴 상처, 즉 충돌구였다.
연구진에 따르면 4억6600만년 전부터 약 3000만년간 지구 땅에는 지름이 수㎞에 이르는 대형 소행성 충돌구가 21개나 생겼다. 그런데 이 충돌구들의 위치가 특이했다. 지금은 대륙이 이동해 위치가 바뀌었지만 당시 적도였던 땅에 충돌구가 유독 다닥다닥 모여 있었다.
이건 통계학적으로 이상한 일이다. 소행성은 특정 지역에 집중적으로 떨어지지 않는다. 무작위로 떨어지는 것이 정상이다. 소행성을 끌어들이는 땅 같은 것은 없기 때문이다. 달을 보면 알 수 있다. 표면 전체가 충돌구로 덮여 있다. 그런데도 지구 적도 주변에 소행성이 집중적으로 떨어진 것은 사실이다. 이를 설명할 방법은 딱 하나였다.
연구진은 당시 적도 상공에 소행성으로 간주될 만큼 큰 돌덩이들이 동그란 고리를 이뤄 떠다녔을 것으로 봤다. 지금의 토성 고리와 비슷한 풍경이다.
돌덩이들은 처음에는 제 궤도를 잘 돌다가 어느 순간부터 공전 속도를 잃으면서 지구 중력에 이끌려 적도 지표면으로 다량 낙하했을 것으로 연구진은 추정했다. 수명을 다한 현대 인공위성 같은 운명을 맞은 것이다.
연구진은 논문에서 “당시 적도였던 땅에 묻힌 퇴적암에서 고리를 이뤘던 돌덩이들이 다수 관찰됐다”고 했다. 하늘에서 떨어진 고리 일부가 땅속으로 파고들었다는 얘기다.
‘모자 챙’처럼 지구에 그림자
그런데 지구 고리는 당시 의외의 역할을 했다. 연구진은 “고생대 오르도비스 말기의 기후변화를 야기했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기후변화의 핵심은 추위였다. 오르도비스 말기는 약 4억4450만년 전이었는데, 지구에 고리가 처음 생겼던 4억6600만년 전(약 17도)에 비해 평균 기온이 약 8도나 하락했다. 10도 이하로 떨어진 것인데, 현재 지구 평균 기온인 14도보다도 훨씬 추웠다.
지구 고리가 추위를 몰고 온 이유는 간단했다. 고리가 햇빛을 가리면서 지표면에 그림자가 생겼다. 일조량이 줄어든 것이다. 이 상황이 장기간 지속되면서 기온이 쑥 내려갔다.
사람들이 여름에 외출할 때 챙이 있는 모자를 머리에 쓰고 얼굴로 쏟아지는 햇빛을 가리는 것과 비슷한 일이 당시 지구에서 일어났다. 다만 챙 있는 모자는 적당한 시원함을 주지만, 지구의 고리는 그렇지 않았다. 냉각 효과가 너무 심했다.
당시 맹추위로 해양 생물의 무려 85%가 멸종했다. 육상에는 생태계가 발달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지구에 대재앙이 찾아온 셈이었다.
연구진은 “이번 발견은 천체에서 비롯된 사건이 지구 진화 역사에 광범위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며 “지구 역사의 다른 시점에도 비슷한 고리가 존재해 기후와 생명체 분포에 영향을 줬는지 탐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정호 기자 run@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속보] 폭스뉴스 “트럼프, ‘최대 승부처’ 펜실베이니아도 승리”···NYT “95% 승기”[2024 미국
- [2024 미국 대선] WP “투표 마친 트럼프, 15분 만에 15개 거짓말”
- 남현희, 누리꾼 30명 ‘무더기 고소’
- 유승민 “김건희 여사, 옛날식으로 유배·귀양 보내야 국민 납득할 것”
- “대통령 윤석열을 탄핵한다”…전남대 교수 107명 ‘시국 선언’
- 실제 축구 경기 중 번개 맞고 선수 사망…‘100만 분의 1’ 확률이 현실로
- [2024 미국 대선] 트럼프, 개인 리조트서 ‘파티 분위기’···해리스, 모교서 개표 주시
- [속보]검찰, ‘민주당 돈봉투 의혹’ 송영길에 징역 9년에 벌금 1억원 구형
- 사격 스타 김예지, 소속팀 임실군청과 결별…왜?
- 조경태 “김건희 특검법? 7일 대통령 담화 결과 따라 대응 변동 있을 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