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태인의 진심 "난 아직 류-양-김에 한참 못미쳐 ... 국대 1선발이 목표"

에디터 김지우
사진 조문기(세탁선 스튜디오)

[베이스볼코리아]

2024시즌, KBO리그는 원태인(24·삼성 라이온즈)의 해였다. 15승을 거두며 두산 곽빈과 함께 다승 공동 1위에 올랐고, 159.2이닝을 던지면서 4년 연속 150이닝 이상을 책임졌다. 여기에 평균자책 3.66으로 국내 투수 전체 1위에 오르는 등 눈부신 성장세를 보였다. 특히 8월 2일 SSG 랜더스전에서 거둔 완투승과 9회 초 3아웃을 잡은 뒤 포효하는 모습은 올 시즌 원태인의 하이라이트였다. 이 경기를 통해 얻은 자신감은 후반기 상승세의 원동력이 되었다.

원태인의 성장은 단순히 기록의 향상에 그치지 않았다. 경기 운영 능력, 위기 관리 능력 등 모든 면에서 한 단계 발전한 모습을 보여준 원태인이다. 특히 ABS(자동 볼-스트라이크 판정 시스템) 도입이라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유연성은 원태인의 성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처음에는 어려움을 겪었지만, 후반기로 갈수록 자신의 장점을 살리는 방향으로 투구 전략을 수정해 나갔다.

이제 원태인은 단순히 삼성 라이온즈의 에이스를 넘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투수로 자리매김했다. 국가대표팀에 꾸준히 발탁되며 국제무대에서도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비록 그 자신은 아직 부족하다며 겸손한 태도를 보이지만, 야구계와 팬들은 이미 그를 한국 야구의 차세대 에이스로 평가하고 있다.

최고의 시즌을 보낸 원태인은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베이스볼코리아가 인터뷰를 위해 대구 삼성 라이온즈 파크를 찾은 날에도 지상파 방송과 신문사 등 총 5개의 인터뷰 일정을 소화했다. 플레이오프 대비 훈련과 경기 준비, 쏟아지는 인터뷰 요청까지, 그의 하루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하지만 원태인은 이런 바쁜 일정을 불평하기는커녕 오히려 즐기는 듯했다. 더 많은 사람과 소통하고, 팬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전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해했다. 푸른 피의 에이스에서 태극마크 에이스로 성장한 원태인의 이야기를 베이스볼코리아가 들어봤다.

*해당 인터뷰는 2024시즌 한국시리즈를 앞두고 진행됐습니다.

“팀 승리가 첫 번째, 다승왕은 그 다음이죠”

올해 데뷔 이후 최고의 시즌을 보냈습니다. 매년 삼성의 국내 에이스로 받은 기대와 관심에 마침내 완벽하게 부응한 한 시즌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원태인 선수 개인적으로는 어떤 점이 가장 만족스러운가요?
딱 하나만 꼽자면, 우리 팀의 플레이오프 진출이 가장 만족스럽습니다. 다시 포스트시즌에 나가게 됐다는 사실이 정말 만족스러워요. (웃음) 또 하나를 들자면, 입단 후 처음으로 다승왕 타이틀을 차지했다는 점도 저 개인적으로는 만족스러운 부분입니다.

기록이나 성적을 떠나 스스로 성장했다고 느끼는 부분도 있을 것 같습니다.
매년 조금씩 조금씩 성장해가는 것 같긴 한데... 아무래도 경기를 풀어나가는 요령 아닐까요? 그런 요령이 매년 조금씩 좋아진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팀의 에이스 투수라면 누구나 삼진에 대한 로망이 있게 마련입니다. 원태인 선수는 어떤가요?
물론 투수라면 당연히 삼진을 잡는 게 최고라고 생각할 거예요. 저 또한 삼진을 잡으려고 하는 편이고요. 아무래도 라이온즈 파크를 홈으로 쓰다 보니, 삼진이 첫 번째라고 생각하고요. 그다음으로는 강한 타구를 억제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제가 아직까지는 그렇게 삼진을 많이 잡는 투수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기록을 보면 9이닝당 탈삼진이 데뷔 이후 6~7개 사이를 오가고 있습니다.
맞아요. 그러다 보니 이 타자 친화적인 구장을 홈으로 쓰면서, 과연 내가 어떻게 해야 살아남을 수 있을까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노력도 많이 했어요.

해답을 찾았나요?
피홈런은 어쩔 수 없다고 쳐도, 대신 인플레이 타구가 나왔을 때 강한 타구를 억제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실제로 올 시즌 원태인 선수의 기록을 보면 강한 타구를 억제하는 데 있어서 성공을 거뒀습니다. 인플레이 타구 피안타율이 .278로 리그에서 두 번째로 낮은 투수였고 피안타율(.245, 최저 6위), 피장타율(.385, 최저 10위)도 리그 상위권이었습니다. 비결이 있나요?
일단 컷 패스트볼을 올 시즌 많이 던진 게 좋은 결과로 이어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최근 타자들이 올려치는 스윙을 하면서, 높은 쪽 공을 잘 못 치는 경우가많거든요. 그런데 저는 낮은 쪽에 강점이 있는 투수잖아요. 처음엔 저도 하이존을 많이 이용하려고 해봤어요. 막상 해보니 오히려 저에게는 독이 된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생각을 바꿨죠.

생각을 바꿨다?
다시 제 강점을 살리기로 마음먹었습니다. 타자들이 낮은 공을 잘 치더라도, 내가 잘 던지면 치기 어려울 거라고 생각을 바꿨어요. 그리고 낮은 쪽 공에 제구가 완벽하게 이뤄지면서, 강한 타구를 예전보다 덜 맞게 된 것 같습니다.

"시즌 초반 ABS 어려워, 후반기엔 적응 완료 ... 완투승이 터닝포인트"

올 시즌 KBO리그엔 ABS(자동 볼-스트라이크 판정 시스템) 도입이란 혁명적인 변화가 있었습니다. 이 변화가 원태인 선수 개인에겐 어떤 영향을 끼쳤나요?
솔직히 저에게는 불리한 시즌인 것 같아요. ABS는 역투가 많이 나오는 파워 피처에게 적합한 존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근데 저는 역투가 많이 없는 투수거든요. 공 하나를 넣고 빼고 하면서 피칭해야 하는데, 존이 정확하게 정해져 있다 보니 그 부분이 어려웠습니다.

실제 시즌 초반 경기에선 애를 먹는 듯한 장면도 여러 차례 나왔습니다.

존이 기존보다 조금 높아진 것도 저에게 불리하게 작용했어요. 낮은 쪽 스트라이크 콜을 예전만큼 받지 못하게 되면서, 처음에는 약간 당황도 한 게 사실입니다. (쓴웃음을 지으며) 다행히 후반기로 가면서 조금씩 존에 적응해 나갔습니다.

올해 원태인 선수 자료를 보면서 예년보다 하이볼 비율이 높아진 게 눈에 띄었습니다. ABS에 맞춰 변화를 준 거라고 짐작했는데, 그게 아니었군요.
초반에는 그랬어요. 초중반까지 계속 그렇게 던지다가, 중반에 제가 한두 달 정도 부침이 있었는데 그때 밸런스적인 면에서 어려움이 있었죠. 하이존을 계속 공략하다 보니까 원래 제가 가지고 있는 장점이 좀 없어진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랬군요.
물론 전반기에는 제가 힘도 있고, 밸런스도 너무 좋아서 낮은 존과 높은 존을다 공략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시즌을 치르면 치를수록 타자들이 저에 대해 분석하고 들어오기 시작했고요. 높은 제구가 완벽하게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후반기부터 원래대로 변화를 준 거죠.

완투승, 150이닝, 다승왕 등 올해 선발투수로서 많은 것을 이룬 한 해였습니다. 이 가운데 가장 의미 있게 생각하는 기록은 무엇인가요?
완투승 경기와 15승? (웃음) 사실 저는 159이닝이 그렇게 많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양현종 선배님도 계시기 때문에 170이닝 이상은 던져야 많은 이닝을 소화했다고 생각해요. 저는 그냥 선발 투수의 기본 정도를 했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많은 이닝을 소화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지나친 겸손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완투승이 저에게 있어서 올 시즌 가장 큰 전환점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 경기 이후로 우리 팀의 사기와 분위기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하고 저 스스로에게도 정말 큰 터닝 포인트였죠. 8월 이후 후반기에, 늦었지만 그래도 더 치고 올라갈 수 있는 힘을 줬던 그런 경기인 것 같습니다.

완투승 당시 9회 초 세 번째 아웃카운트를 잡고 크게 환호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렇게 기뻤나요? (웃음)
일단 9회 올라가서 1사 2, 3루 위기가 됐을 때 이것을 막으면 왠지 우리 팀이 역전해서 이길 것 같다는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이것만큼은 꼭 막고 싶다 생각했는데 계속 던지게 됐고요. 마지막 한유섬 선배 타석 때 제가 그렸던 그 플랜대로 정말 완벽하게 바깥쪽에 4개의 공이 들어갔어요. 그 4개의 공이 전부 다 제가 원하는 코스에 똑같이 들어갔거든요. 그래서 그 쾌감이 너무 짜릿하더라고요.

뭔지 알 것 같습니다.
그래서 '진짜 이런 맛에 야구를 한다'는 생각도 있었고요. 더그아웃에 들어갈 때 비도 조금씩 내리고, 팬들의 환호를 이끌면서 분위기를 한번 바꿔보자는 생각에서 그런 행동이 나왔던 것 같습니다. (웃음)

"해외 진출? 지금은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올 시즌 좋은 활약을 펼치면서 해외 진출 이야기도 솔솔 나오고 있습니다. 일본과 미국 스카우트들이 원태인 선수 피칭을 유심히 본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욕심이 생기나요?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에요. 저도 목표가 있고 또 야구 선수로서 항상 위를 바라봐야 된다고 생각하기에, 지금은 다 모든 생각이 열려 있는 것 같아요.

가능성을 열어 두는 군요.
가능성이 다양해진 거죠. 가령 다년 계약을 맺고 팀에 남을 수도 있고, 아니면 조금 더 욕심이 생겨서 해외에 갈 수도 있고요. 아니면 FA(프리에이전트) 자격을 얻어서 도전해볼 수도 있고. 지금 어떤 하나만 바라보고 간다기보다는, 정말 1년 1년 최선을 다하면서 노력하다가 나중에 기회가 왔을 때 좋은 선택을 해야죠. 지금 시점에서 '무조건 해외에 가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지는 않습니다.

이제는 삼성의 에이스를 넘어 한국 국가대표 에이스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습니다. 이런 평가를 들으면 기분이 어떤가요?
솔직히 아직 많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그런가요?
우리 대한민국 에이스는 류현진, 김광현, 윤석민, 양현종 이런 선배님들이 해오신 자리잖아요. 아직 저는 한참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계속 대표팀으로 나가다 보니 당연히 에이스가 되고 싶은 욕심은 생기죠. '대표팀의 1선발' 이렇게 불리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고, 또 야구 선수로서 국가대표 자리는 정말 영광스러운 자리이니까요. 그런 얘기가 나올 때마다 너무 영광스럽고 뿌듯합니다.

원태인 선수가 프로에 데뷔했을 때만 해도 야구 인기가 지금처럼 뜨겁지는 않았습니다. 지금은 사상 최초로 1천만 관중을 돌파할 정도로 프로야구가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잖아요. 그 인기를 견인하는 선수 중 하나로서, 감회가 남다를 것 같습니다.
(미소 지으며) 일단 야구장 출근할 때부터 느끼고 있습니다. 솔직히 화요일, 수요일 매진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잖아요. 그런데 올해는 거의 매일 매진되는 경기를 하다 보니까, 정말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강해집니다.

무관중 경기를 한 게 엊그제 같은데 말이죠.
정말 암흑기도 겪어왔고 코로나19로 관중 없는 경기도 치러봤고 그렇게 막 다 경험을 하다 보니까 지금 이 순간이, 특히 올해가 더 소중하다는 걸 느낍니다. 팬들에게 더 좋은 모습을 보여드려야 지금 인기가 유지된다는 생각입니다. 더 좋은 플레이, 더 멋있는 플레이를 보여드려야죠. 저 말고 다른 선수들도 다 비슷한 생각일 겁니다.

원태인은 인터뷰 내내 겸손한 태도를 잃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성장에 대한 자부심과 더 나은 선수가 되고자 하는 의지를 나타냈다. 특히 완투승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는 눈빛이 달라졌다. 그는 그 경기를 통해 얻은 자신감이 후반기 반등의 원동력이 되었다고 말했다.

원태인은 이제 한국을 대표하는 에이스로 성장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부족하다고 말한다. 류현진, 김광현, 윤석민, 양현종 등 선배들의 이름을 거론하며 자신은 아직 그들의 반열에 오르지 못했다고 겸손해했다. 그러면서도 대표팀 1선발이 되고 싶다는 욕심도 숨기지 않았다.

올 시즌이 끝난 뒤, 원태인의 어깨는 더욱 무거워질 전망이다. 포스트시즌에서의 활약, 나아가 해외 진출 가능성까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하지만 그는 당장의 목표보다는 매 순간 최선을 다하는 데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1년 1년 최선을 다하다 보면 좋은 기회가 올 것이다. 그리고 그 기회를 잡을 준비가 되어 있는 선수가 바로 원태인이다.

*베이스볼코리아 매거진 19호에서 더 다양한 내용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