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둔 20일 오후, 가장 안쪽 병원 침대로 실려 온 ‘환자’가 있었다.
외관상으론 상처가 없었지만, 움직임이 없었다. 의사는 배를 가르고 내부를 살펴봤다.
"드르륵, 치지지지직"
"삐용삐용, 또로로로롱"
의사의 주름진 눈과 손이 바쁘게 움직이고 새로운 장비가 이식되고 혈관인 전선이 연결됐다. 몇 분 후, 환자는 의식을 되찾고 띵동거리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환자는 바로 보석함 장남감. 수술을 마친 심범섭(77)씨의 얼굴에도 미소가 감돌았다.
하지만 병원은 잠시 쉴 틈이 없다. 함께 온 다른 '장난감 환자'를 살펴야 하기 때문이다. 다른 4명의 의사들의 손도 전국에서 택배로 실려 온 응급 환자들을 살피느라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이 곳은 인천 남구 주안동의 '키니스 장난감 병원'. 국내 최초의 무료 장난감 병원이다.
인하대학교 금속공학과 교수를 지낸 김종일(77) 이사장이 지난 2011년 설립해 12년째 운영 중인 비영리 봉사단체다.
김종일 키니스장난감병원 이사장은 "은퇴 후 내가 가지고 있는 기술과 지식을 살리면서도 다음 세대를 할 수 있는 게 무엇일지 고민하다가 장난감 병원을 떠올리게 됐다"고 말했다.
처음엔 사비를 털어 시작한 이곳은 현재 시민과 기업의 후원으로 운영되고 있다.
"미래를 짊어질 애들을 위해서 하는 거잖아요. 여기엔 돈벌이가 들어가고 사심이 들어가면 안 되는 거예요"
무보수 재능기부를 하고 있는 장남감 의사들의 평균 나이는 75세가 넘는다.
전직 공대 교수, 공고 교사, 교장, 사업체 운영 사업가 등이 힘을 모았다. 그들은 여기에서 '장난감 박사님'으로 불린다.
이곳을 이용하려면 '입원 의뢰서'를 작성해야 한다. 기본 검진을 위해 직접 장난감 환자와 내원해도 되지만 먼 곳에 사는 이들을 위해 온라인으로도 의뢰할 수 있다.
사진과 장난감에 얽힌 사연, 수리 요청 내용을 작성하면 된다.
가장 어려운 치료를 담당하는 의사는 최고령인 이종균(84) 씨.
부품을 구하지 못하면 직접 만들어서라도 고친다. 이 씨는 이날 여러 설명이 적힌 휴대폰 회로 사진과 문서를 보면서 심각하게 장난감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이게 작은 장난감도 열어보면 안이 아주 복잡한 것들이 있어요. 계속 공부가 필요한 거죠."
60대 후반인 막내 원덕희 씨는 자신을 '한국에서 아기 모빌을 제일 많이 고쳐본 사람 중에 한 명'이라고 소개했다.
그에게 이 일을 하며 힘들었던 적이 무엇이었냐고 묻자 "못 고쳤을 때 아주 그냥 속상해 죽갔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작년에 모빌을 700개를 고쳤는데 부품 문제로 22개를 고치지 못했던 게 아직도 마음에 걸린다.
어떤 장난감은 사흘을 꼬박 새워 겨우 고쳤던 적도 있다고 한다.
"물놀이 장난감인데 안에 보니까 녹이 슬었더라고요. 세정액으로 녹을 녹여내고 하면서 힘들었는데 오기가 생기더라고요. 고치고 아이가 행복해할 생각을 하니까 기분이 좋더라고요"
대부분의 아이들은 병원 가는 것을 싫어하지만, 이 특별한 병원을 찾는 아이들은 다르다.
이날 병원을 찾은 14개월 된 기준이도 그 중 한 명. 김 이사장이 내민 자동차를 받아들고는 병원을 아장아장 걸어다녔다.
엄마 이애화(36) 씨는 "장난감 병원에 온다고 하면 정말 저 보다도 더 빨리 신나서 나갈 준비를 해요"라고 했다.
고물가 시대, 점점 비싸지는 장난감 가격은 부모들에겐 큰 부담이다. 22일 기준 완구용품업체인 토이저러스의 베스트 상품의 가격은 5-6만원 선이었다. 10만원을 넘는 장난감도 많았다.
이 씨는 "애기들 물건은 친환경 등 좋은 재료를 많이 쓰다보니 비싼데 더 비싸진 거에요. 근데 애들은 입에 빨고 계속 가지고 놀고 그러다보니까 고장이 쉽게 나고요. 그 뒤로 장난감 병원을 애용하게 됐어요. 환경을 보호하고 재활용하는 걸 교육하는 의미도 있지요"라고 했다.
장난감 병원 벽에는 아이들과 부모들의 감사 편지로 가득 차 있었다. 아이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사탕이나 과자도 함께 보내기도 한다. 이런 것들이 이 곳 장난감 박사님들에겐 가끔 수리를 제대로 못했다고 달리는 악플을 이겨내는 힘이 된다고 했다.
인터뷰 말미, 꼬마 손님 두 명이 병원을 들어왔다. 김 이사장은 황급히 자리에 일어나 아이들에게 막대 사탕 하나씩을 쥐어줬다.
그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정말 최선을 다해서 장난감을 고쳐줘야 겠구나'하고 마음을 되새긴다고 한다.
특히나 아픈 아이들이 오면 그 마음은 더욱 간절해진다.
"4학년이라는데 4살짜리가 갖고 노는 뽀로로 버스를 간절한 마음으로 들고 왔어요. 자폐가 있는 아이었는데 그 애는 이 버스가 아니면 안되는 거예요."
장난감은 아이들에겐 물건이 아니라 소중한 친구이기에 안되면 비슷한 거라도 만들어서 쥐여 보낸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김 이사장의 목표는 장난감 병원이 전국에 더욱 많이 늘어나는 것. 아이들이 고장 난 장난감 때문에 속상해하기를 원치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장난감 의사 선생님들은 아이들의 동심도 고치고 있다.
"장난감 종류가 참 많지만, 본인 마음에 평생 가져갈 수 있는 장난감을 하나 찾아보세요. 혹시라도 고장 나면 언제든지 가져오세요. 우리가 최선을 다해 보살펴줄게요. 형제들이랑 장난감 가지고 싸우지 말고요(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