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lebration of Life: 진심 어린 순간들의 총합 [사이에 서서]

어떤 사연이 있었더래도 죽음은 늘 갑작스럽다. 10월 말, 남편을 박사과정에 뽑아주셨던 지도교수님이 심장마비로 갑자기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코로나로 2년이나 미뤄졌던 졸업식 때도 만나 인사를 나눴기에 믿을 수가 없었다. 장례 행사가 언제 있을지 알아보고 있던 중, 한 통의 메일이 도착했다.

“Celebrating the Life”

"삶을 축하함"이라는 다소 어색한 이 표현은 죽음을 바라보는 관점을 달리해보자는 마음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임종을 앞둔 환자를 돌보는 호스피스 뿐 아니라 영화에 나오는 장례식 장면 중에서도 검은 상복과 무거운 분위기를 벗어나 고인의 삶을 돌아보며 또 다른 순간을 맞이하는 의미로 받아들여지기를 희망하는 행사라고 한다. 어쩐지 이청준 감독의 <축제>가 생각났다.

장소는 학교 강당이었다. 검은색 대신 학교를 상징하는 네이비와 오렌지 색의 옷을 입고오라는 메모가 눈에 띄었다. 한국어로 풀어보자면, ‘학교장’에 해당한다고나 할까

학부-석사-박사로 이어지는 “동대학원” 문화가 없다시피 한 미국 학계의 관례와는 정반대로 B교수는 80년대 초 학교에 입학 한 후, 한 번도 학교와 학과를 떠나지 않았다. 66년의 삶 중 46년을 한 학교, 그것도 같은 학과에서 보냈던 그의 삶을 기리기 위해 많은 이들이 학교 강당에 모였다. 학교 스웨터를 입고 밝게 웃고 있는 그의 사진이 담긴 순서지를 받아들고 자리에 앉았다.

직접촬영

B교수와 각별한 사이였던 이들의 추도사가 이어졌다. 한 제자는 직접 만든 노래를 피아노를 연주하며 불렀다. 여기까지는 다른 장례 행사와 비슷해보였는데, 화면에 휴대폰으로 찍은 영상이 재생되었다.

소파에서 농구 경기를 보며 지고 있는 팀에게 한 마디 하라는 딸의 말에 “이 게임 정말 짜증나, 리바운드를 왜 못하는거야” 라고 대꾸하는 아버지의 모습, 유행하던 Dab 댄스를 추는 모습, 고양이를 쓰다듬는 모습, 매년 할로윈 행사가 치러지는 The Lawn에서 백설공부, 난장이 옷을 입은 딸과 함께 웃고 있는 모습, 학생들에 둘러싸인 선생님의 모습, 그리고 화면 너머 아내를 바라보는 다정한 남편의 모습까지.

엄숙한 장례 문화에서 벗어나고자 했다는 “Celebration of life”라는 표현에 가장 어울리는 순간이 아니었을까 싶다.

자리에 앉은 모두가 저마다의 기억을 회상하고 있을 즈음, 영상에 가장 많이 등장했던 B교수의 딸이 단상에 섰다.

“동영상에서 계속 깔깔거리던 그 소녀가 바로 저예요.” 는 말로 시작해 삶의 순간 순간에 함께 했던 아빠의 모습에 대해 담담히 말하는 딸의 얼굴을 보며 많은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많은 사람들이 적어도 25년간은 이런 자리에 설 일이 없었으면 좋았겠지만”이라는 말엔 나도 모르게 내 옆에 앉은 아이의 손을 잡게 되었다.

자리에 함께한 많은 사람들에게 감사하던 B교수의 아내는 그가 평생을 바친 학과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He believed in you”라는 말을 남겼다. 조의금은 그의 이름으로 학교에 기부된다는 순서지의 메모가 와닿는 순간이었다.

직접 촬영

아카펠라 합창단의 노래를 마지막으로 행사는 끝났다. 유족들이 먼저 퇴장하는 동안 삶의 무게와 압박에서 벗어나라는 가사를 담은 <Born to Run>이라는 락 음악이 깔렸다.

B교수는 우리를 바라보고 있겠지. "There you go, good job!"이라 말하고 있지 않을까.

식장을 나오면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우리 셋의 기억이 서린 곳들을 둘러보기로 했다. 미국의 첫 집이 되었던 기숙사를 시작으로 자전거 타기를 처음 배웠던 공터를 지나 아이가 첫 학교 생활을 시작했던 초등학교로 향했다. 스프링 목마에 앉아있던 꼬마는 이제 중학생이 되었다.

직접촬영

집으로 돌아오기 전에 남편을 지도해주셨던 J교수님도 찾아뵈었다. B교수가 박사과정 동안 남편의 “학문적 아빠” 였다면, J교수는 엄마같은 느낌이랄까. 유학생활을 떠올리며 추수감사절마다 외국인 유학생들을 초대해 주셨던 J 교수님 댁에서 매해 진짜 추수감사절 음식을 먹곤 했다. 스터핑이 가득 들어간 칠면조, 크랜베리 소스, 펌킨 파이까지. 근 10년이 되어가는데도 아직도 칠면조를 좋아할 수 없다는건 우리 셋 만의 비밀이다.

코로나로 인해 뒤늦은 졸업식을 하게 되자 본인의 집에서 졸업 파티를 열어 남편의 지도교수 뿐 아니라 내 지도교수도 초대했던 J 교수는 너무 이른 B교수의 죽음에 함께 안타까워했다. '엄마'답게 남편과 나에게 이런 말을 남겼다. “미리 유언장을 써놓도록 해. 혹시 아니.” 아픈 어머님을 가까이로 모시고 돌보고 계신 J교수의 진심어린 조언이 마음에 와 닿았다.

자연스럽게 지난 시간들을 돌아보게 된 하루였다. 앞을 향해 몰두하느라 옆에 밀어두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내 삶의 자리를 채웠던 사람들, 그들과 나눈 순간들, 그리고 그 안에 담긴 소소한 이야기들까지.

‘Celebration of Life’라는 자리에서 느낀 건 결국 삶이란 거창한 무엇이 아니라, 우리가 누군가와 나눈 진심 어린 순간들의 총합이라는 사실이었다.

우리의 제 2의 고향, 샬러츠빌을 떠나며 마음 한 켠에서 작은 결심을 했다. 내게 주어진 오늘을, 지금의 사람들을 조금 더 소중히 여기자고.

삶이란, 그 소중함을 얼마나 자주 깨닫는지에 달려 있을 테니


[사이에 서서] 황진영

미국 Washington DC에 있는 국제기구에서 프로그램 코디네이터로 일하고 있습니다. 더 많은 ‘우리’를 발견하고 싶은 마음을 담아 공저 <세상의 모든 청년> 와 <나의 시간을 안아주고 싶어서> 를 썼습니다.

[사이에 서서]를 통해 '어쩌면 우리일 수 있었던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