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만에 되찾은 ‘신선한 밥상’…주민센터 귀퉁이 마트가 준 ‘작은 행복’

이문수 기자 2024. 9. 20.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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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사막, 일본은 어떻게 대응하나] 구라요시 첫 공공형 마트 탄생
지역민 주도로 현안 해결 주효
시, 장소 제공…현, 교부금 확보
‘미카모스토어’ 입점 성과 거둬
주민 삶의질 높이고 예산 절감
소포장 등 맞춤 판매 고객 증가
일본 돗토리현 구라요시시 세키가네초에 있는 주민종합문화센터 전경. 이곳 안에 ‘공공형 마트’가 들어섰다.

지역 거점 식료품점이 잇달아 문을 닫으며 곤경에 빠진 돗토리현은 민관이 협업해 세운 ‘공공형 마트’로 돌파구를 마련하겠다는 계획이다. 이런 가운데 현 중부에 있는 구라요시시는 주민이 주도해 공공형 마트를 설립한 모범사례로 주목받는다.

특히 교통 요지인 주민종합문화센터 1층 로비의 유휴 공간을 활용해 ‘기발한 착안으로 주민의 식품 접근성을 높인 것은 물론 예산도 절감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주민 여러분! 우리의 힘으로 마을에 새로운 마트가 생겨났습니다. 서로를 격려하는 마음으로 큰 박수 부탁드립니다.”

2023년 3월31일 오전 9시20분 일본 돗토리현 구라요시시 세키가네초(우리나라 동 단위 개념) 주민종합문화센터 앞에선 우레와 같은 박수와 함성이 터져 나왔다. 이날엔 시 역사에서 새 이정표를 세운 것을 기념하고자 시민 300여명이 모였다. 2022년 JA전농(일본 전국농업협동조합연합회) 계열 마트 폐쇄 설명회를 개최한 후 약 2년의 시행착오 끝에 시 역사상 최초로 ‘공공형 마트’가 문을 연 것이다.

주민종합문화센터 내 공공형 마트 직원이 농산물을 매대에 올려 놓고 있다.

구라요시시 세키가네초는 인구 3000명 남짓한 전형적인 농촌지역이다. 과거 온천이 인기를 끌며 많은 관광객이 몰려들어 영화를 누렸지만 지금은 명맥만 유지할 정도로 상황이 바뀌었다.

세키가네초 역시 다른 돗토리현의 시·정·촌과 마찬가지로 인구 감소와 고령화를 겪어야 했고, 결국 JA계열 마트가 2022년 폐점 절차를 밟고 말았다.

지역주민은 폐점에 따른 고통을 감내하지만은 않았다. 2022년 1월 주민 주도로 ‘자치공민관협의회’가 열렸다. 이후 주민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였고, 같은 해 2월 ‘지역 거점에 신선식품을 취급할 슈퍼를 유치하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였다.

주민의 바람과는 달리 초반엔 난항을 겪었다. 수억원이 들어가는 초기 투자비, 전기료를 포함한 점포 유지비가 걸림돌로 작용하며 마트를 운영할 주체를 정하지 못했다. 기존 JA계열 마트 부지를 승계하는 방안도 높은 임차료, 협소한 주차 공간 탓에 흐지부지됐다.

구라요시시 지역진흥협의회 관계자는 “5월부터 8월까지 공민관협의회가 여러차례 열린 끝에 ‘주민종합문화센터’ 1층 로비의 남는 공간에 마트를 세우는 방향으로 중지를 모았다”면서 “비용 절감, 센터 주차장 활용, 센터의 높은 접근성을 고려하면 모두를 만족시키는 시나리오”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주민이 자발적으로 움직이자 시와 현도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시는 식료품점의 공익성이 크다고 판단해 문화센터 공간을 무상으로 제공하기로 했다. 현은 중앙정부로부터 ‘식품구매환경확보 추진교부금’ 3700만엔(3억5000만원)을 타내며 사업 추진의 발판을 마련했다.

공공형 마트 내부. 매대 뒤쪽에 문이 잠겨 있어 과거 이곳이 출입구로 활용됐음을 보여준다.

부지와 초기 투자 비용 문제가 풀리자 일은 일사천리로 진척됐다.

본점을 오카야마현에 둔 ‘미카모스토어’에서 마트를 운영해보겠다는 의향을 내비쳤다. 마침내 초등학교 교실 크기(110㎡·33평)만 한 작지만 든든한 구라요시시 공공형 마트가 탄생했다.

마트가 생겨난 후 주민은 평범한 일상을 되찾았다. 타우리 나나미씨(81)도 “마트에 토마토·바나나·달걀·양배추 같은 신선식품이 즐비해 다양한 건강식을 요리할 수 있으니 삶의 질이 올라갔다”며 “과거엔 멀리 떨어진 대형마트에 가 일주일치, 또는 이주일치 장을 봐야 해 상당히 불편했다”고 했다.

마트 문을 연 지 채 1년이 되지 않았지만 고객은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미카모스토어에 따르면 하루 방문객은 최대 150명으로, 매출은 15만엔(140만원) 내외다. 규모가 크지 않아 직원 2명이 재고를 관리하고 계산대를 맡는다.

지역 맞춤형 판매전략도 주목할 만하다. 고령의 소비자가 많은 만큼 장보기 편의를 높이고자 소포장 제품을 늘리는 한편, 신선식품은 소분해서 판다.

문화센터에서도 마트 고객 유치에 발 벗고 나섰다. 문화센터 관계자는 “댄스 배우기 같은 다양한 문화체험 프로그램을 구성해 주민이 자연스럽게 센터 내 마트에 들러 장을 볼 수 있도록 유도한다”고 했다.

구라요시시 공공형 마트는 주민이 지역사회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려는 노력이 가미됐다는 점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구라요시시의 타무라 츠요시 시민생활부 과장은 “지역문제 해결 과정에서 주민 참여가 활발할수록 현장 목소리를 반영한 생활밀착형 정책이 나오기 마련”이면서 “앞으로도 주민 의견을 지속적으로 수렴해 마트 안에 농특산물 가짓수를 늘리고, 포장지를 분리 배출할 공간을 마련하는 등의 변화를 모색하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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