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즉강끝!-멋지다!’는 드라마에서나…‘겉멋 안보’ 아찔
북핵과 실사구시 안보
대통령·국방장관 ‘허장성세’ 한심
북, 고농축 우라늄에 핵탄두 50기
한미일 ‘북핵 불용’ 말잔치일 뿐
실질적 평화 위한 정책전환 시급
“즉강끝!” 김용현 국방장관은 취임하자마자 “즉각, 강력히, 끝까지”를 외쳤다. 전임 신원식 장관의 구호를 이어받았다. 말은 더 세졌다. “‘즉·강·끝'의 ‘끝'은 북한 정권과 지도부다. 그들이 도발한다면 ‘정권의 종말'을 맞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시작전지휘권이 없는데 이게 가능하겠느냐는 합리적 의문에는 아무 말이 없다.
군통수권자 윤석열 대통령은 “적이 도발해온다면 ‘선조치, 후보고' 원칙에 따라 즉각적이고 압도적으로 대응해 적의 의지를 완전히 분쇄할 것”을 주문했다. 대통령이 되기 전에는 ‘더 벅 스톱스 히어’(The Buck Stops Here)라는 해리 트루먼 대통령의 좌우명을 좋아한다고 떠벌렸다.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는 의미라는 설명까지 덧붙였다.
“브라보! 멋지다, 연진아!” 드라마 ‘더 글로리’였다면 문동은(송혜교)은 이렇게 반응했을 것만 같다. 그리고 윤석열 정부의 최고 정점에 있는 사람들은 ‘진정한 칭찬’에 자못 흡족해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실은 드라마가 아니다. 대통령과 국방장관이 나서서 멋있어 보이는 말은 독차지하면서 책임은 밑에 있는 사람에게 넘긴다면, 그건 결코 멋지지 않다. 상황이 발생하면 알아서 먼저 조치를 취하고, 그것도 강력하게 끝까지 하고, 나중에 보고하라고? 잘했으면 그 공은 내가 가져갈 것이요, 혹시라도 ‘일등병'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면 책임은 사령관도 사단장도 지지 않고, 여단장 이하 아랫것들이 지게 하면 된다는 것 아닌가. ‘채 상병 사건'은 윤석열 정부의 무책임한 안보관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효험 없는 주문 속 북핵 능력 비약
지난 13일 조선(북한)은 고농축 우라늄 생산시설을 공개했다. 2010년 영변의 농축시설을 방문했던 시그프리드 헤커는 1년에 핵탄두 2기를 만들 수 있는 만큼 고농축 우라늄을 생산할 수 있다고 당시 평가했었다. 제프리 루이스는 2013년과 2021년에 이 생산 능력을 확장해 1년에 핵탄두 5기를 만들 고농축 우라늄을 생산할 수 있다고 평가한 바 있다. 이번에 공개된 사진만으로는 생산 능력을 예측하기 어렵다.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조선이 핵무기 생산시설을 계속 현대화하고 있고 확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헤커나 루이스의 평가를 능가할 것이라는 가능성에 무게를 둘 수밖에 없다.
2020년 초 조선의 핵탄두 보유수를 30~40기로 추산했던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는 올해 초 이 수치를 50여기로 상향 조정했다. 고농축 우라늄 생산시설이 현대화되고 확장된다면 당연히 핵탄두 수도 늘어날 것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기대하는 것같이 ‘기하급수적’은 아니더라도 조선의 핵탄두 보유 수가 100기를 넘는 날이 하루하루 가까워지고 있다.
하지만 2022년 5월 취임 이후 줄곧 ‘북한 비핵화’를 목표로 내세운 윤석열 정부는 ‘강력한 말’로만 대응하고 있다. 대통령실은 13일 북한의 우라늄 농축시설 공개와 관련해 “북한이 우라늄 농축시설을 공개하면서 핵 능력의 가속적 강화, 전술핵무기용 핵물질 생산을 운운한 것에 대해 강력히 규탄한다”고 밝혔다. 통일부도 “어떠한 경우에도 우리와 국제사회는 북한의 핵 보유를 절대 용인하지 않을 것임을 북한도 인식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도 미국 정부도 마찬가지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하야시 요시마사 관방장관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은 일본 및 국제사회의 평화와 안전을 위협하는 것이므로 결코 용납할 수 없다”며 “한국, 미국 등과 협력해 북한 핵 탄도미사일 프로그램의 완전한 폐기를 요구해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소통보좌관은 “북한의 핵 야망과 탄도미사일 기술 및 프로그램 진전을 계속 주시하고 있다”며 “이것이 우리가 한반도 주변 지역에 정보, 감시, 정찰 자산의 우선순위를 두는 이유”라고 부연했다.
한·미·일 3국 정상은 2023년 8월 캠프 데이비드에서 발표한 정상회의 공동성명(캠프 데이비드 정신)에서, 또 함께 채택한 ‘캠프 데이비드 원칙’에서도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다짐한 바 있다. ‘북한 비핵화’는 비상한 효험이 있는 주문이 아니다. 그 주문을 여기에도 찍어놓고 저기에도 찍어놓는다고 이뤄지지 않는다. 그 공약을 주문처럼 되뇌기만 하다가, 현실은 정반대로 가고 있다. 3국 정상이 내세운 공약이 이처럼 처참하게 무너지고 있는데 3국 정부에서 나오는 대응은 ‘잘 보고 있다’ ‘강력히 규탄한다’ ‘결코 용납할 수 없다’는 말잔치뿐이다.
“브라보! 멋지다, 연진아!”
드라마라면 이런 대사 한줄로 스트레스를 확 날릴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대사를 골백번 되뇌어도 현실의 핵무기는 사라지지 않는다. 정부가 겉멋만 든 안보 행태를 보인다면 스트레스만 쌓이는 것이 아니다. 핵탄두가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
병사 한명의 목숨에서 시작하라
조선은 이 핵탄두를 한국에 ‘배달’할 미사일들도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다. 미사일 시험 단계는 진작에 끝냈다. 다종다양한 미사일을 생산해 부대에 배치했고, 핵미사일 사용을 위한 군사훈련을 실시하기도 했다. 이것도 모자라 18일에는 4.5톤짜리 고중량 탄두의 정밀타격 능력을 과시했다. 핵미사일뿐만 아니라 가공할 위력의 통상미사일도 차곡차곡 만들어나가겠다는 선언이다.
그런데 한국군의 대응이 아슬아슬하다. 18일 합동참모본부는 탄도미사일이 약 400㎞를 비행했다고 발표한 반면 조선중앙통신은 그 다음날 사거리가 320㎞였다며 발사 장면과 탄착 장면의 사진을 공개했다. 사거리에서 무려 약 80㎞나 차이가 난다. 서울과 원주 정도의 거리다. 조선중앙통신이 순항미사일도 함께 발사했다고 19일 공표하고 나서야 군당국도 순항미사일이 있었다고 뒷북을 쳤다.
윤석열 정부 지도부는 겉멋만 내는 안보 정책을 외치고 있고, 군당국은 그 책임에 버거워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지금까지 정부가 ‘일체형 확장억제’를 추진한 결과, 조선의 핵탄두만 늘어났다면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가. 한·미·일 3국 안보협력을 강화한다고 미국과 일본에 모든 것을 내준 결과, 조선의 미사일만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면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가. 겉멋으로 ‘더 벅 스톱스 히어’ 명패를 책상 위에 놓은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책임을 진다면, 이제는 전면적으로 정책 전환을 모색해야 하지 않는가.
그 모색의 단초는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대령)의 말에 있다. 박 대령은 ‘제5회 노회찬상’ 특별상을 받으며 말했다. “한 병사의 목숨의 가치는 지구의 무게만큼이나 무겁다.” 한 병사의 목숨, 한 국민의 목숨, 거기에서부터 출발하라.
일본 국제기독교대 정치·국제관계학과 교수
시카고대학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펜실베이니아대학에서 국제관계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일본 국제기독교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한반도와 국제관계에 대한 다수의 저서와 논문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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