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019년부터 올해 봄까지는 우리나라의 경제력과 외교력, 군사력과 더불어 특히 문화력이 폭발하며 전 세계 모든 이의 기억 속에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존재감을 분명하게 각인시킨 시기였습니다. 특히 우리 국민에게 무척 역사적이고 행복한 시기였습니다.

<기생충>이 무려 아카데미상을 받더니, <미나리> 역시 여우조연상을 받고, BTS는 전 세계 소녀들의 마음을 홀리며 단숨에 빌보드 1위에 오른 후 세상의 모든 음악상을 휩쓸며 월드스타가 되었습니다. 축구선수 손흥민이 영국에서 메시와 호날두의 아성을 무섭게 위협하는 코리안 폭격기로 성장하는 놀라운 모습도 보았습니다.

그즈음 우리나라에서 서비스를 시작하게 된 넷플릭스에 우리나라 작품들이 공개되는 족족 전 세계인에게 말도 안 되는 인기를 끌며 1위를 하는 일이 다반사였고 어쩔 땐 1, 2, 3위가 전부 다 한국 작품일 정도로 보고 듣는 모든 것이 온통 코리아였던 때가 있었습니다.
이런 한국 문화의 글로벌 초히트 릴레이의 마지막 주자는 의외의 곳에서 나왔습니다. 스트리밍 서비스를 시작하며 아시아 시장의 중요성을 유심히 눈여겨보고 있었던 애플TV에서 <파친코>를 내놓은 것입니다.

<파친코> 역시 앞서 보았던 <기생충>이나 <오징어 게임> 이상으로 전 세계에서 거대한 성공을 이끌어내며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공식을 한 번 더 확인시켜주었습니다. <파친코>는 특히 우리 한국인에게 특별했습니다. 우리의 아픈 근대사를 생생하고 아름답게 담아 일본이 근 50여 년간 우리나라에 저질렀던, 말로는 차마 다 하지 못할 악행에 대해 지난 수십 년간 우리 정부가 세계에 알리고자 이어왔던 노력보다도 훨씬 더 큰 힘으로 전 세계인에게 그 시절의 전말을 알리는 데 크게 기여했기 때문입니다. 그 어떤 총보다도 강한 펜의 힘으로, 문화의 힘이 발휘할 수 있는 실로 놀라운 파급력과 전파력을 실감했습니다.

<파친코>가 대단한 또 다른 이유는 한국 작가가 썼으며, 서양에서 먼저 인정받았다는 점입니다. 소설은 가장 고전적인 분야의 문화로서 아이돌이나 영화, 드라마와는 결이 조금 다른, 조금 더 높고 깊은 수준의 존중을 받는 영역입니다. 특히 한국인이 쓴 한국소설이 그런 성공을 거두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분야였기 때문에 더더욱 그 성공의 감동이 남달랐습니다. 글로 표현한 한국의 예술 작품이 가진 무한한 가능성을 세계인에게 확실히 보여준 고맙고 위대한 작품이었습니다.
그런데 조만간 <파친코>의 영광이 더 큰 성공으로 한 번 더 재현될 것으로 보입니다. 바로 <작은 땅의 야수들>이라는 누가 봐도 한국의 호랑이를 암시하는 멋진 제목을 가진 한국소설이 현재 미국 문학계에 한바탕 거대한 돌풍을 일으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에서 폭발적인 이슈로 부상하며 12개국에서 번역 출간이 진행 중이고, 상이란 상은 모조리 휩쓸고 있는 이 작품은 현재 아마존과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오른 것은 물론이고 NBC 방송과 USA 투데이, 포춘을 비롯한 미국 언론 수십 곳에서 극찬하며 적극 추천하고 있는, 지금 미국에서 가장 뜨거운 소설입니다.
이 작품은 1917년부터 1965년 사이, 일제강점기의 아픔과 고통이 가장 극심하던 때부터 시작해 독립과 그 이후 찾아온 한국전쟁 그리고 그 직후 혼란과 슬픔이 뒤섞인 격동의 한반도 근현대를 살아간 한국인의 모습을 너무도 사실적으로 그려낸 작품입니다.

특히 우리가 단순히 일제강점기라고만 알고 있는 그 시절 일본과, 한국 땅에 있던 일본 군인의 패악, 광복 직후 한국 땅에서 좌우로 나뉘어 벌어졌던 숨 막히는 긴장과 혼돈의 시기, 그리고 한국 전쟁을 거쳐 사실상 폐허가 되어버린 땅에서 끝까지 살아남았던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현실감 넘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다큐보다 생생하게 당시의 상황과 아픔을 경험할 수 있는 작품으로 한국인이라면 모두가 깊이 공감할 매우 보기 드문 그리고 너무 재미있는 명작입니다. 영화나 드라마로 보는 것보다 오히려 더 깊이 몰입되고 그만큼 감정의 여운도 길게 남습니다. 마치 등장인물과 함께 그 시절을 살아낸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파친코>는 일제강점기 시절 재일교포의 삶을 다룬 작품인 반면 <작은 땅의 야수들>은 일제강점기의 소용돌이 한복판에서 2등 시민으로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아갔던 한국인의 아픈 삶을 고스란히 다루었다는 결정적인 차이점이 있습니다.

<작은 땅의 야수들>은 매우 독특한 등장인물들의 시선을 통해 그 당시를 조명합니다. 함경북도 출신 사냥꾼과 그의 아들. 경성 최고의 기생이 되는 옥희, 월향, 연화 세 소녀. 그들이 각각 일본군 장교, 아편, 생활고 등을 통해 겪게 되는 사건들. 그리고 조선에서 손꼽히는 부잣집 출신의 두 친구. 한 명은 친일파의 길을 걸으면서 호의호식하며 살아가는 방식에 대해, 다른 한 명은 자신의 모든 재산을 내놓은 것도 모자라 목숨까지 걸고 상해와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이끄는 독립운동가의 활동상을 보여줍니다. 이처럼 각 인물의 삶의 궤적을 따라가며 그들의 눈에 비친 당시 한국의 상황을 볼 수 있어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그 시절로 여행을 간 것처럼 이야기가 입체적이고 사실적으로 다가옵니다.
일제강점기에 우리나라는 일본으로부터 체계적이고 꾸준하게 식량을 수탈당했습니다. 한국 땅에서 나는 최고고 좋은 것들, 인삼이나 전복뿐 아니라 문화재까지 모조리 일본 상류층에게 넘어갔습니다. 그들이 특히 좋아하던 것이 바로 호랑이의 가죽이었습니다.

소설은 눈발이 두껍게 날리던 한겨울 산속, 한 무리의 일본 군인이 조선인 사냥꾼을 길잡이로 세워 얼마 남지도 않은 한국 호랑이를 사냥하려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제목에서 유추되듯 소설 곳곳에 한국 호랑이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김주혜 작가는 호랑이야말로 한국의 영혼과 기개를 상징한다고 여겼습니다. 우리 조상에게 호랑이는 단지 짐승이 아닌 사람의 먼 친척뻘 되는 친근한 영물이었습니다. 작가는 야수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작품 전반에 녹여냅니다.

줄거리가 흥미진진하며 긴장이 넘칠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번역이 잘 되어 있어서 읽는 내내 맛깔 나는 문장의 친근함 때문에 쉽게 읽혀 읽기 자체의 즐거움이 큽니다. 책을 잘 읽지 않았던 분이나 한국 근대사를 쉽고 재미있게 배우고 싶은 분께 이 책이 다시 독서를 시작하는 아주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읽으면서 영상이 그려질 정도로 아름다운 한국의 모습이 넘치게 많기 때문에 이 작품은 곧 높은 확률로 넷플릭스나 애플에서 보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기를 바랍니다. 한국어 특유의 글맛을 누리고, 당시의 우리 삶을 체험하는 소중한 경험을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후에 이 소설이 영상화된다면 책과 비교하며 다시 한번 그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 듯해 무척 기대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