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더 하이커스데이 2024
아이더는 우리나라 둘레길을 걸으며, 즐거운 하이킹 문화 확산을 위해 진행하는 ‘아이더로드’ 캠페인을 전개해오고 있다. 하이커스데이는 아이더로드 캠페인의 일환으로, 최대 3박 4일 동안 함께 걷고, 보고, 먹고, 자며 한국의 아름다운 풍경을 오롯이 즐길 수 있는 장거리 하이킹 축제다. 올해 아이더 하이커스데이는 해송 숲길과 호수길, 해변, 문화유산 길 등을 걸으며 다채로운 강릉을 만날 수 있는 강릉 해파랑길 구간에서 개최됐다.
코로나19가 한창 유행하던 몇 년간, 답답한 마음이 들 때면 강릉을 찾았다. 서울에서 가까운 바다를 만나는 일이 당시로써는 최선의 일탈이었기 때문에. 걸을 일은 잘 없었다. 이번 하이커스데이가 걸어서 만나는 첫 강릉이다. 시장을 가로지르고 해안을 만나는 코스는 강릉을 오감으로 즐길 수 있게 해줄 것만 같다. 한 가지 마음에 걸린 것은 일정이 다가올수록 비가 온다는 흐린 소식이 들려왔던 것. 가을비 정도야 장거리 하이킹을 포기하게 만들 이유는 아니었으나, 우천을 대비하느라 무거워질 가방이 걱정이었다.
기대 반, 걱정 반으로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퇴근과 동시에 강릉으로 향했다. 전날 저녁 강릉에 도착해 채비를 마치기 위해서다. 늦은 저녁을 먹은 뒤 비가 늦게 오고 일찍 그치길 바라면서 이른 잠자리에 들었다. 강릉역 인근은 생각보다 일찍 어둑해져 고요한 밤 속에서 깊은 잠을 누릴 수 있었다.
1일차, 비의 습격
10월 18일 7시 30분, 관동대학교 운동장에 도착했다. 하늘은 흐렸으나 마음만은 푸르른 상태. 북적이는 도심과 사무실을 벗어나 자유로운 이곳에 와있다는 것만으로도 몸이 날아오를 것처럼 자유롭다. 운동장 앞 부스에 참가자가 하나 둘 모였다. 2박 3일 일정으로 합류하는 이들은 약 100명. 설렘으로 상기된 표정의 사람들과 깨끗한 강릉의 아침 공기가 반갑다. 참가자 확인 후 받은 아이더 모자와 티 두 개, 방풍 재킷, 헐커스 마사지 젤 등 푸짐한 선물과 김밥. 아이더 제품으로 환복 후 고소한 참치김밥을 입에 넣는다.
하이커스데이 2024에서는 총 70km를 걷는 3박 4일 코스와 총 52.5km를 걷는 2박 3일 코스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었다. 필자는 대부분 평지라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두 번째 코스를 선택했다. 하이커스데이 전체 2일차 코스이자, 필자에게 1일차 코스는 3박 4일 참가자들이 지난밤을 보냈던 342camp에서 장현저수지, 강릉중앙시장, 솔바람다리, 강문해변을 지나 녹색도시체험센터로 향하는 길이다. 집결지인 관동대학교에서 2.5km를 걸어 342camp에서 3박 4일 참가자들과 합류한다. 컨디션을 끌어올려 줄 커피 한 잔과 강릉의 명물 커피콩빵을 맛보며, 배낭의 무게를 쟀다. 13.6kg. 우천을 대비하느라 다소 무거워졌지만 들뜬 몸과 균형을 잡기엔 적당한 무게다.
강릉의 품으로 첫 발을 내딛는다. 처음 만나는 광경은 산골마을이다. 먼 산봉우리의 삐죽 솟은 나무 하나까지 보일 만큼 시원한 들녘, 엉덩이를 붙인 채 궁금한 눈으로 하이커들을 응시하는 강아지까지 모두 정답다. 구름을 품은 듯 잔잔한 장현저수지가 나타나자 흙길이 시작됐다. 습기를 잔뜩 머금은 소나무와 흙이 자연의 향을 만들어낸다. 너무 서두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앞선 이의 트레킹 폴 리듬에 발걸음을 맞춰본다. 경사를 견뎌내다 보면 모산봉 전망대에 닿는다. 앞서 걷던 이들도 목을 축이며 먼발치의 도심 광경에 감탄을 쏟아낸다. 땀방울이 멎어 다시 아래로 내려갈 준비를 한다.
트레킹은 하산 구간에서 가장 주의해야 한다. 특히 무거운 배낭을 멘 상태라면 더더욱. 올라올 때는 누구보다 거침없었으나 내려갈 때는 누구보다 천천히 발을 움직인다. 장거리 하이킹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체력을 다지는 것도, 배낭의 무게를 줄이는 것도 아닌 부상을 입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는 것. 아무리 체력이 좋아도 배낭이 가벼워도 부상을 입게 되면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필자가 너무하다 싶을 만큼 발에 테이핑을 한 이유도 이와 같다. ‘물집 하나쯤이야’라고 안일하게 생각하다가 남은 걸음 내내 울상을 짓느라 풍경을 감상하지 못하는 불상사가 생기기 마련. 방지할 수 있는 것들은 예방하는 게 좋다.
산길이 끝나니 도심이 나타났다. 커피로 유명한 강릉답게 골목마다 카페가 자리했다. 은은하게 밀려오는 커피향을 느끼다 칠사당을 발견했다. 강릉 칠사당은 조선시대 수령이 정무를 보던 관헌으로, 7가지 주요 업무를 행한다 하여 칠사라는 이름 붙었다. 대청마루에는 주민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푸른 잔디를 빠져나와 강릉 시내를 가로지르면 강릉중앙시장에 도착한다. 가장 기다렸던 시간이다. 하이커스데이 배낭 보관소에 배낭을 맡기고 시계를 보니 점심때가 됐다. 강릉의 먹거리가 가득한 미로로 얼른 숨어들고 싶다. 각지로 출장을 떠날 때마다 놓치지 않는 곳이 지역의 유서 깊은 시장이다. 그곳에서만 맛볼 수 있는 특산물과 덤과 정이 넘치는 사람 냄새나는 곳. 무엇이 많이 나는 동네인지, 무슨 음식을 많이 먹는지 시장에 가면 단번에 알 수 있다. 강릉은 오징어를 포함한 신선한 해산물은 물론, 아침에 미리 맛봤던 커피콩빵, 초당순두부, 감자, 장칼국수 등이 별미다. 마침 중앙시장 인근에서 누들 축제를 진행 중이었는데, 필자도 강릉의 정통 누들을 맛보기 위해 시장 골목 한편에 맛집의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가게로 들어가 장칼국수와 감자전을 시켰다. 장칼국수는 고추장, 된장 등의 장醬을 풀어 맛을 낸 강원도 향토 칼국수다. 걸쭉하고 깊은 맛을 내는 국물이 일품. 탄수화물을 가득 충전한 후, 후식은 초당순두부 아이스크림. 외관은 하얀 바닐라 아이스크림인데 입에 넣자마자 두부향이 가득 퍼지는 것이 생전 처음 경험하는 맛이다.
다시 출발하기 위해 옷매무새를 정리하는 순간,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드디어 시작’이라는 생각과 함께 배낭에 레인커버를 씌운다. 당초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비가 내린다는 소식을 듣고는 숙영지로 향하기 위해 서둘러 발걸음을 옮긴다. 시원한 바람이 부는 듯한 노암터널을 지나 남항진해변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가을비 정도야’라 말했던 필자에게 벌을 주는 듯한 세찬 비바람이 몰아친다. 고대했던 해안길이 비바람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판초우의도 들이치는 비를 전부 막아주진 못했다. 두 다리를 움직이면 걸을 순 있고 비를 피할 수도 있으니, 흠뻑 비를 맞으며 시원하게 걸어보자는 생각으로 앞으로 나아간다. 잠자리가 걱정이다. 이렇게 쏟아지는 비에는 금세 텐트가 침수될 터라 걱정하는 사이, 운영국에서 알림을 보낸다.
당초 녹색도시체험센터 임시주차장에서 숙영을 할 계획이었으나, 폭우가 쏟아지자 녹색도시체험센터 건물 내부에서 취침하도록 조치를 취했다고. 안도의 한숨을 내뱉은 뒤 숙영지로 향한다. 옆으로 파고드는 비 때문에 신발은 어느새 축축해졌다. 아무리 고어텍스라 해도 바지를 타고 흘러내리는 비까지 막아줄 수는 없다. 물먹은 휴지처럼 축축해진 몸이 지쳐갈 때쯤, 해송길에 들어섰다. 길게 뻗은 나무 사이에 숨어들어 비바람을 피하다, 다시 걷기를 반복하니 숙영지에 닿았다. 비를 맞으며 참가자들을 기다리던 세이퍼들이 반갑게 손을 흔든다. “고생하셨어요. 조금만 더 가면 돼요. 힘내세요!”
쏟아지는 비바람에 호되게 당한 사람들은 지친 기색이 역력했으나, 웃음을 잃지는 않았다. 건물 복도 및 회의실 등에 취침 자리를 정했다. 원래 저녁마다 친목을 다지는 행사가 진행되나, 오늘만은 예기치 못한 기상상황으로 취소. 제공되는 밀키트로 저녁식사를 해결한 뒤 일찍 자리에 누웠다. 같은 곳에 나란히 눕게 된 참가자들에게 엊저녁의 재미난 이야기들을 들으며, 아침에 받은 마사지 젤로 다리의 피로를 풀다 잠에 들었다.
2일차, 새로운 만남
오전 7시, 멎을 줄 알았던 비는 아직 세차게 내리고 있다. 오늘도 여전히 난항이 예상되지만 오후에는 그칠 거라는 기상청의 예보에 힘을 내본다. 둘째 날 코스는 17.5km로 경포호, 사근진해변, 순포해변, 사천해변에서 숙영지인 연곡솔향기캠핑장으로 이어지는 해안길이다. 출발하기를 기다리는 참가자들의 모습도 어제와 사뭇 다르다. 옷과 배낭 위에는 우의가 덧씌워지고, 방수 바지에 우산까지 들었다. 뒷모습에서 왠지 모를 비장함까지 느껴진다.
경포가시연 습지는 비가 내리니 분위기가 더욱 짙어졌다. 비를 머금고 청량하게 반짝이는 초록빛이 땅만 보고 걷던 고개를 들게 했다. 날이 좋았으면 하고 아쉬워할 겨를도 없다. 한없이 나풀거리는 판초우의와 조금이라도 손에 힘을 풀면 날아가 버릴 것 같은 우산도 긴장감을 늦추지 못하게 한다. 하지만 곳곳에서 마주치는 세이퍼들이 참가자들을 돕고 안내하고 동행했다. ‘낙오될 일은 없겠구나’라고 생각하며 걸음을 재촉한다.
푸른 하늘과 어우러지는 바다는 볼 수 없었으나, 바람이 바다 위에 그려내는 수많은 백파는 멋졌다. 더군다나 강릉의 대표적인 관광지인 해변을 따라 걷는 덕에 부족함 없는 시간을 보냈다. 당이 떨어지면 편의점에 들어가 요깃거리를 사고, 목이 마르면 카페에 들어가 커피 한 잔을 즐기고. 사실 강릉이 커피로 유명하다는 것은 이곳을 걸으며 알게 됐다. 하이커스데이가 종료된 직후에 커피 축제가 열린다는 것도. 아! 얼마나 좁은 시야로 살았는가.
기상 상황 때문에 같이 오게 된 사진기자와 동행하다 떨어졌다 하길 반복하다 보니 혼자 걷는 시간이 점점 늘어났다. 그런데 혼자인 느낌은 들지 않는다. 편의점에서 마주친 참가자들은 “파이팅입니다! 나중에 봬요!” 하고 응원을 건네고, 나란히 걷게 되는 사람과는 짧은 인사라도 주고받게 된다. 뒤집어진 우의에 난감해 하고 있으면 누군가 와서 바로잡아준다.
아침을 푸짐하게 챙겨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열한시가 되자 배가 고팠다. 뜨끈한 국물을 생각하며 사색에 잠겨 있는데 누군가 말을 걸어온다. “점심 먹으러 갈 건데, 같이 갈래요?” 조금 전 화장실에서 마주쳤던 참가자들이다. 아까부터 나를 눈여겨봤다고(!) 한다. ‘주워졌다’는 표현이 적당한 것 같다. 일행은 셋이었는데, 모두 이곳에서 처음 만나 친해진 사람들이라고. 역시 혼자 오면 이런 묘미가 있다. 같은 취미를 가진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게 되는 일. 기쁜 마음으로 동행한다. 목적지로 정했던 칼국수 가게가 문을 닫아 근방의 추어탕 집으로 들어왔다. 그런데 역대급 추어탕이다. 날이 궂어서도, 배가 고파서도 아니다. 원래 여행지에서도 계획적으로 움직이는 편이라, 이렇게 갑자기 만난 집이 맛집인 경우에는 기대하지 않은 상황이라 더 기쁘다. 이날의 추어탕과 파전, 곁들인 막걸리는 잊을 수 없다. 강릉역에서부터 하이커스데이 참가자임을 알아채고 말을 걸어 처음부터 동료가 된 일, 친구들과 함께 신청했지만 혼자 성공하게 된 일, 다른 참가자들의 대단한 일화 등등. 흥미로운 이야기가 안주가 되니 더욱 흥이 오른다. 파전을 두 개나 해치우고 나니 빗줄기도 차츰 가늘어져 간다.
숙영지에 도착하자 우의를 벗어도 될 만큼 비가 잦아들었다. 오늘의 숙영지는 경치와 시설이 좋기로 유명한 연골솔향기캠핑장. 200여 명의 참가자를 모두 수용할 만큼의 데크를 확보해둔 터라 쾌적한 수면은 보장됐다. 고양이 가족이 뛰어다니는 평화롭고 여유로운 곳. 고행을 보상받는 듯하다. 비와 땀을 말끔히 씻어낸 뒤에 지난날 비 때문에 즐기지 못했던 다양한 이벤트들을 즐겨본다. 아이더 신발 연구소에서 근력과 밸런스를 측정한 뒤, 컵 증정 이벤트를 한다는 보아핏 시스템 부스 소문을 듣고 부랴부랴 뛰어간다. 왜 이렇게 놓치면 안 될 것이 많은지, 2박 3일 일정의 마지막 저녁이라는 게 아쉽기만 하다. 19일, 마지막 밤인 토요일에는 하이커스데이의 하이라이트인 디너파티가 열렸다. 맛있는 바비큐가 준비되고, 가수 치즈와 마인드유의 공연으로 잔잔한 음악소리가 캠핑장을 가득 채운다. 특히 경품 추첨 시간에는 이틀간 그토록 비 맞고 고생한 사람들이 맞나 싶을 정도로 다들 에너지가 넘쳤다. 필자가 가장 기대한 시간은 그동안 강릉에서 결제한 영수증을 모아 추첨하는 이벤트였는데, 행운은 다른 사람의 몫이 됐다. 하지만 영수증을 꼭 쥐고 설레었던 시간만큼은 행복했다.
파티가 끝나고 각자 자리로 흩어졌다. 바닷바람이 불어오는 해송 속에서, 마지막 밤을 붙잡으며 텐트 사이에 모닥불 겸 스토브를 켜놓고 둘러앉아 이야기꽃을 피운다. 와인 한 잔에 추위에 떨던 몸이 녹는다. 밤은 경계를 무너트린다. 낯을 가리는 필자도 입이 트여 이런저런 얘기를 늘어놓았다. ‘날씨 때문에 아쉽지 않냐’고 물음을 던지니 예상치 못한 답이 들려온다. “그래도 다 같이 진행하는 행사니까 비가 많이 내려도 계속할 수 있는 거죠. 혼자였다면 비가 내리자마자 포기해야 했을걸요. 오기 전에 날씨 앱을 보면서 무사히 진행될까 걱정을 많이 했는데, 대처를 잘해준 것 같아요.” 돌아보니 그렇다. 곳곳에서 기다리던 세이퍼가 없었다면, 비를 피해 안전하게 잘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준 운영진이 아니었다면, 크고 작은 부상을 치료해 줄 의료팀이 없었다면, 집으로 도망치고도 남았을 거다. 위기가 신뢰가 된 순간이다. 일주일만 지나면 좋은 기억과 예쁜 사진들밖에 남지 않을 것 같다며 다들 웃는 순간, 누군가 단호하게 말한다. “솔직히 난 미화될 건 없을 것 같아요. 애초부터 나쁜 게 없었으니까. 다리 아프고, 신발부터 양말까지 다 젖은 거, 벽돌에 드러누웠던 거, 지금도 너무 재밌잖아요.”
3일 차, 마지막까지 아름다운
마지막 날 아침이 밝았다. 밤새 새끼 고양이가 이너텐트 위로 올라와 울어대는 바람에 잠을 설친 건지, 고양이 꿈을 꾼 건지 모르겠다. 여섯 개가 넘는 핫팩을 곳곳에 둔 덕에 텐트가 유난히 따뜻했나 보다. 아직 하늘에는 구름이 잔뜩 껴있지만 비는 더 이상 오지 않을 모양이다. 구름을 비집고 뻗어 나온 햇살이 아름다운 아침. 일출에 맞춰 일어난 사람들은 해변으로 나가 이 눈부신 광경을 누리고 있다. 마지막 날인 20일의 코스는 영진항, 주문진항, 등대마을, 아들바위공원을 거쳐 주문진해수욕장에 닿는 코스다. 10km 남짓한 거리로 천천히 걸어도 반나절이면 완보할 수 있다.
마지막 날이라는 아쉬움을 주워 담느라 아침을 거른 상태라, 시원한 커피 한 잔이 절실했다. 어느새 또 혼자가 된 길 위에서 카페를 찾는다. 어렵지 않게 발견한 카페로 들어가 커피를 주문한 후 대기석에 앉아 있는데, 갑자기 눈앞에 카야 토스트 한 조각이 등장한다. “네 조각이 나왔는데 저희가 세 명이라서요. 같이 쉬다가 다시 걸어요!” 너무 유혹적인 제안이라 같이 합석하기로 한다. 같이 온 친구 두 명, 이곳에서 만난 동료 한 명이다. 한 사람은 자그마치 제주도에서 날아왔다. 첫날 저녁 해남에서 온 분도 있다는 소식을 듣고 놀랐는데, 더 먼 곳에서 온 사람이 있었다. 배낭이 무겁지 않냐고 걱정해 주다가, 바꿔 메보기도 한다. 백패킹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이면 이런 장면이 자연스럽다. 첫날은 힘들지 않았는지, 어제는 얼마나 재밌었는지, 집에는 어떻게 돌아가는지. 커피가 줄어드는 것이 아까울 만큼 재밌는 휴식시간이다.
갈매기들이 몰려 앉은 바다는 비가 그치니 한결 얌전해졌다. 어제는 뿌옇게만 보였던 색도 푸른빛을 되찾았다. 인파가 몰려 있는 곳으로 고개를 돌리니 주문진 수산시장이다. 나도 모르게 참가자들의 줄을 벗어나 시장으로 들어선다. 해산물이라면 없어서 못 먹는 필자에게 강릉은 너무 매력적인 도시다.
등대마을 골목으로 숨어든다. 몰래 온 손님이라는 말이 적당할까. 사람들이 살고 있는 이 마을, 조심스럽게 하이커스데이 리본을 따라 움직인다. 의자에 앉아 있는 고양이를 발견하고 살금살금 다가가고 있는데, 어느새 녀석은 난간 너머로 사라지고 뒤편으로 펼쳐진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명당이라 여기 앉아 있었구나.’ 옹기종기 모인 지붕과 바다가 바다마을의 낭만적인 풍경을 만들어 낸다.
드디어 마지막 지점인 주문진해수욕장에 도착했다. 피니시 라인을 통과하며 메달을 받는데, 왠지 눈물이 터져 나올 것만 같았다. 무사히 끝났다는 안도감 때문일까. 날씨 때문에 배로 힘들었지만, 배로 즐거웠다. 우중 하이킹의 성취감은 누려본 사람만이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