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의 안하면 엘리베이터에 공개”…요즘 시끄러운 분당, 주민들 얼굴 붉히는 이유

서진우 기자(jwsuh@mk.co.kr), 연규욱 기자(Qyon@mk.co.kr), 이희수 기자(lee.heesoo@mk.co.kr), 김유신 기자(trust@mk.co.kr) 2024. 9. 23. 0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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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기 신도시 27일까지 접수
8천가구 배정 경쟁 가장 치열
소수점 차이로 당락 갈릴 듯
일부 집주인 연락안돼 발동동
동의않는 가구 버젓이 공개도
“선도지구 선정되면 집 팔자”
실거주 대신 단기투기 우려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수내동 양지마을 금호1단지·청구2단지 전경. [매경DB]
“아파트 단지마다 1점이라도 더 얻으려 혈안이에요. 유독 분당만 평가 항목이 많아 그렇습니다. 소수점 차이로도 (선도지구) 당락이 갈릴 거예요.”

22일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의 한 통합재건축 단지 조합 관계자는 주민 동의율을 끌어올리려 백방으로 뛰고 있었다. 그는 “재건축 선도지구가 된다면 가장 빨리 2030년 새 아파트에 입주할 수 있으니 주민들 성원과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23일부터 분당을 비롯해 경기도 고양시 일산과 안양시 평촌, 군포시 산본, 부천시 중동 등 1기 신도시 5곳이 재건축 선도지구 신청을 받는다. 오는 27일까지 5일간 단지 간 통합 재건축을 원하는 토지 소유자 등 조합 대표는 해당 지방자치단체에 공모 신청서와 신청 동의서, 대상지 현황과 지방자치단체별 평가 기준에 따른 조합 자체 평가표를 서면으로 직접 제출해야 한다.

각 지자체는 국토교통부가 밝힌 선도지구 표준평가 기준을 토대로 세부 평가 항목을 만든 뒤 100점 만점으로 심사할 계획이다. 100점 중 가장 큰 비중은 역시 주민동의율이다. 이에 각 주택 단지 간 통합재건축을 노리는 이들은 많은 가구 소유주의 동의를 확보하기 위해 막판까지 치열한 물밑 싸움을 펼치고 있다.

평가 기준이 제일 복잡하고 공모 가구 수도 8000가구로 가장 많이 배정된 분당신도시에서 동의율 확보 경쟁은 유독 거세다. 동의율이 50%면 최하 10점이고 95% 이상이면 60점이다. 95% 미만 동의율은 1%포인트당 1.11점씩 차감된다.

일부 단지에선 외국에 나간 집주인과 연락이 닿질 않아 애를 먹고 있다. 조합이 아직 준비위원회 단계여서 관리사무소를 통해 문자로만 동의 여부를 발송해야 한다. 이에 대부분 조합은 27일 접수 마지막날까지 동의율을 끌어올려 최종 제출하겠다는 입장이다.

분당의 주요 통합 추진 단지 중 가구 수가 가장 많은 수내동 양지마을(한양3·5·6, 금호1·6, 청구2단지)은 지난 주말까지 94%를 웃도는 주민동의율을 얻어 만점인 95%에 거의 근접한 것으로 파악됐다. 수내동 파크타운(서안·롯데·삼익·대림)과 정자동 한솔마을(청구·LG·한일), 까치마을1·2단지·하얀마을5단지 등도 90~93% 동의율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쟁이 격화되면서 재건축에 동의하지 않는 가구를 노골적으로 저격하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한 조합 관계자는 “엘리베이터 안에 전체 층 그림에 동의한 단지만 표시하는 쪽지를 붙인 경우도 있다”며 “동의하지 않는 가구를 공개해 압박하는 수단으로 삼는 셈”이라고 말했다.

동의를 거부하는 집주인 설득에 전전긍긍하는 조합도 많다. 한 조합 관계자는 “대체로 고령 거주자는 이사 자체를 꺼리고 재건축 분담금도 부담스러워 거부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재건축 규모를 키워야 선도지구 선정에 유리한데 단지 간 통합을 시도했다 무산된 사례도 나왔다. 분당구 서현동 시범1구역(삼성한신·한양)과 2구역(우성·현대)이 합쳐 4개 단지 통합 재건축을 노렸지만 역세권 유·불리를 놓고 끝내 합의점을 못찾아 결국 1·2구역이 따로 신청하게 됐다.

빌라와의 신경전도 있다. 선도지구 평가항목에서 인근 소규모 단지(빌라)를 통합하면 2점이 붙는다. 현재 분당 시범1구역(삼성한신·한양)과 2구역(우성·현대)이 인근 빌라들과 통합하는 방안을 구상 중이다. 하지만 빌라의 경우 대형 평수가 많아 소형 평형 위주의 인근 아파트와 통합 재건축 시 조합원 분양 갈등이 생길 여지도 크다.

재건축 이후 해당 아파트에 거주할 생각이 없는 이도 많은 것으로 파악된다. 이들은 재건축보다는 선도지구로 선정돼 아파트 가치가 뛰면 즉각 팔아 차익을 챙기겠다는 수요다.

고준석 연세대 상남경영원 교수는 “선도지구 단지 중심으로 실수요자뿐 아니라 단기 자본 이득을 위한 투자자도 매수 대열에 합류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단기적으로는 투기 세력이 시장에 진입해 가격 상승을 부추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선도지구가 유력한 단지부터 가격이 치솟고 있다. 분당구 수내동 양지마을 통합재건축 단지는 한양 3·5·6단지와 금호 1·6단지, 청구 2단지 등 총 6개 단지를 품어 4392가구 규모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시스템에 따르면 양지마을 3단지 전용 102㎡ 매매가격은 지난해 11월 17억2000만원에서 올해 7월 20억9500만원으로 뛰었다.

선도지구로 선정되더라도 이후 정상적인 사업 추진이 진행될지 관건이다. 올라버린 공사비 탓에 재건축 분담금이 많게 책정될 수 있어서다. 한 조합 관계자는 “일부 단지들이 무리해서 선도지구 신청 계획서를 제출한 후 진행 과정에서 분담금 등을 이유로 제대로 사업을 실현하지 못하면 공사 지연 등 잡음이 생길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오는 11월 분당 8000가구를 비롯해 일산 6000가구, 평촌·중동·산본 각 4000가구 등 총 2만6000가구 선도지구가 선정되면 곧바로 특별정비계획이 수립돼 재건축이 진행된다. 정부가 50%까지 추가 선정할 수 있어 최대 3만9000가구까지 뽑힐 수 있다. 지구가 지정되면 오는 2027년 착공해 2030년부터 입주 예정이다. 선도지구는 1기 신도시 내 전체 정비 대상의 15% 수준이고 나머지 사업은 내년부터 매년 일정 물량씩 선정돼 차례로 추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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