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사로 보는 세상] 수술 후 합병증 치료에 공헌한 선구자 '파레'

예병일 연세대원주의대 의학교육학과 교수 2024. 3. 3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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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브루아즈 파레. 위키미디어 제공

● 고대와 현대의 수술법 사이에 등장한 '외과학의 아버지'

인류는 이미 수천년 전에 인공 눈을 만들어 주거나 손상이 생긴 코를 재건해 주는 수술을 했다.(https://www.dongascience.com/news.php?idx=62726, https://www.dongascience.com/news.php?idx=57853 참조) 또 돌로 만든 기구로 머리뼈에 구멍을 뚫는 뇌수술을 하기도 했다.(https://www.dongascience.com/news.php?idx=62500 참조)

이러한 수술법이 신석기 시대에도 환자들에게 성공적으로 시도될 수 있었고 성공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현대의 최신 의학기술과 비교해도 대단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천년간 수술이 크게 발전하지 못한 것은 수술의 성공률을 높이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방법이 해결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지난 글에서 소개한 무균처리법이다.(https://www.dongascience.com/news.php?idx=64017 참조) 1865년에 리스터(Joseph Lister)가 수술실을 소독하는 방법으로 수술후에 발생하는 합병증을 줄인 것은 수술성공률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는 위대한 발견이었다.

19세기에 마취제와 무균처리법이 발견되어 수술법을 획기적으로 발견하고 현대의 첨단 수술법이 발전하기까지 수술법은 수천년간 서서히 발전해 왔다. 그 가운데서 가끔씩 눈에 띄는 발견을 하여 수술법 발전에 큰 기여를 한 인물도 있었다.

16세기에 의대를 다니지 않았으면서도 외과 발전에 큰 공헌을 한 프랑스의 파레(Ambroise Paré, 1510-1590)는 대표적인 인물로 '외과학의 아버지'로 일컬어지고 있다.

해부학의 아버지 베살리우스. 위키미디어 제공

● 의학의 발전에 기여한 이발사

기원전 4~5세기에 활약한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Hippocrates)나 2세기에 로마에서 활약했고 중세의학을 지배했다는 평가를 듣는 갈레노스(Claudius Galenos, Galen)가 수술에 관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들의 의학을 계승한 이들은 주로 약을 사용하는 내과의사 역할을 했다.

오늘날 임상의학을 크게 내과와 외과로 구분할 때 내과는 약을 쓰고 외과는 수술을 한다고 쉽게 구분하곤 한다. 그러나 외과의사도 수술 전후에 약을 쓰고 내과의사도 내시경으로 인체 내부를 들여다본 후 뭔가 제거해야 할 이상 소견이 발견되면 내시경 끝에 달린 칼로 잘라내곤 하므로 수술 여부가 절대적으로 내과와 외과를 구분하는 기준은 아니다. 

고대에서 중세에 이르기까지 의학이 발전하면서 “의사”라는 직업이 등장했다. 이들이 주로 하는 일은 약을 쓰는 것이었으므로 오늘날 내과의사와 비슷한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11~13세기에 볼로냐, 파리, 옥스퍼드 등에 대학교(University)가 설립되기 시작하면서 깊이 있는 학문을 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대학설립 초기에는 학문 구분도 잘 되지 않았고 가르치는 교수의 관심분야를 학생들이 배우는 형식이었다.

따라서 각 대학교에 개설된 전공분야는 차이가 있었지만 일반적으로 대학교에 많이 개설된 학문 분야는 철학, 신학, 법학, 의학이었다. 의학은 주로 내과의학을 다루었다. 수술이 발전하면서 외과의술도 다루어야 마땅했지만 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하는 이들은 외과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중세 말기에 이를 때까지 죽은 사람의 몸에 칼을 대는 것은 금기로 여겨졌으나 르네상스기가 다가오기 직전 이탈리아에서부터 서서히 사람의 몸 내부를 알기 위해 시체 해부가 시도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교수가 갈레노스가 쓴 책을 읽으면 칼을 다루는데 익숙한 이발사가 해부를 하고 학생들은 결과를 보고 확인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다 보니 갈레노스의 책 내용이 맞는지를 확인하는 정도에 머물렀으며 책 내용과 실제 사람의 몸이 다른 경우는 그 사람의 몸에 변이에 해당하는 것으로 생각하곤 했다. 그랬으니 해부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16세기에 직접 해부를 하여 갈레노스의 책에서 수많은 잘못된 점을 지적한 '해부학의 아버지' 베살리우스(Andreas Vesalius, 1514~1564)가 등장할 때까지 해부학 발전은 크게 이루어지지 않고 단순히 확인하는 정도에 머물러 있었다. 

의대 해부학 수업을 도와 준 이발사들의 활약은 여기에 머물지 않고 수술법 발전에도 기여했다. 의대에서 수술법을 제대로 교육하지 않는 가운데 수술을 시도하는 의사들은 있었고 이들을 도와 주는 이들이 이발사였다. 그들 가운데는 제대로 된 의학교육을 받지는 않았지만 장기간의 경험으로 숙련된 기술을 발휘하는 이들도 있었다. (내과)의사들은 수술이 필요한 경우 능력있는 이발사에게 수술을 의뢰하기도 했다.

많은 나라에서 이발소의 상징물로 흰색, 파란색, 빨간색이 나란히 빙글빙글 돌고 있는 삼색등을 사용하곤 한다. 이 삼색등이 돌고 있으면 이발소가 문을 열었음을 의미하고 등이 꺼진 채 돌지 않고 있으면 이발사가 퇴근했음을 의미한다. 이발소에 대한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필자는 요즘 헤어살롱을 찾는 남성들이 많아져서 삼색등을 보기 어려워진 것이 아쉽다.

삼색등에서 빨간색은 동맥(산소를 함유한 빨간색 피), 파란색은 정맥(산소가 없는 푸르스름한 피), 흰색은 붕대를 가리킨다. 이 세 가지는 모두 수술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므로 이발사들이 오래 전 외과의사 역할을 했다는 흔적으로 남아 있다. 

환자를 돌보는 파레. 위키미디어 제공

● 파레가 '외과학의 아버지'라는 별명을 가지게 된 이유

수술 후 합병증이 생기는 것은 상처부위를 통해 질병을 일으키는 미생물이 침입하기 때문이다. 이를 예방할 무균처리법은 1865년에야 발견되었지만 그 이전에도 상처부위로 병균이 침입하면 몸에 해롭다는 사실은 눈치를 채고 있었다. 

피부에 작은 상처만 생겨도 밴드를 붙이는 것은 그 부위로 병균이 들어오는 것을 막고 상처 부위가 원래의 모양처럼 잘 아물게 하기 위해서다. 수백년 전에는 밴드 대신 나뭇잎이나 천으로 가리기는 했지만 상처가 큰 경우에는 뜨거운 기름을 붇거나 인두 등을 이용하여 불로 지져 혈관을 막아 버렸다. 

언제부터 뜨거운 기름을 부었는지는 확실치 않으나 총이 나온 후부터 많이 사용된 것은 분명하다. 총알이 날아갈 때 열에너지가 발생하지만 혈관에 손상이 생겨도 손상부위가 총알의 열에 의해 혈관이 막히는 경우가 흔히 발견된 것이 그 이유로 생각된다.

그런데 뜨거운 기름을 부으면 통증이 심하고 불로 상처부위를 지지는 경우에도 통증은 물론 흉터가 수반되므로 치료를 포기하겠다는 이들도 있었다. 따라서 끓인 기름 대신 끓인 후 식힌 기름이 이용되기도 했다.

파레가 젊은 시절에 이룬 가장 큰 업적은 총상 환자를 치료하는 과정에서 상처 회복에 아주 좋은 방법을 알아냈기 때문이다. 외과의사를 겸한 이발사의 아들로 태어난 파레는 정규 의대가 아나리 지금도 파리에서 노트르담성당 근처에 가장 오래된 병원으로 남아 있는 오텔디외에서 몸으로 의학을 배웠다. 

26세에 프랑스가 이탈리아로 쳐들어갈 때 군의관으로 입대한 그는 총상 환자 치료에 힘을 쏟았다. 그는 비고(Giovanni de Vigo, 1450-1525)가 쓴 책을 참고로 하여 펄펄끓는 기름에 여러 가지 약과 벌꿀을 섞은 용액을 상처 부위에 쏟아부었다. 뜨거운 용액이 피부와 상처 내부에 닿자 환자들은 엄청난 고통을 호소했고 이를 본 파레는 가슴이 아팠지만 다른 대책이 없었다.

환자는 많았고 제조한 기름은 모두 소진되는 일이 발생했다. 그래도 상처는 보호해야 했으므로 테레빈유에 달걀흰자와 장미기름 등을 혼합하여 응고시킨 후 상처부위에 발라 보았다. 비고의 책에서 사용하라고 한 재료 중 일부는 제외하고 일부는 대체하여 제조한 것이다.

다음 날 아침이 되자 놀랍게도 환자들의 상태가 크게 호전되었다. 밤새 고통을 느끼지 않은 채 자 보냈으며 상처부위로 회복기미가 보였다. 이보다 앞서 끓는 기름으로 치료를 한 부상자들은 밤새 열이 많이 났고 통증과 붓기도 더 심했다. 파레는 몰랐지만 달걀흰자에는 미생물의 증식을 억제하는 라이소자임(lysozyme)이 들어 있으므로 좋은 선택이었다.

파레가 쓴 총상 치료에 대한 논문은 프랑스어로 씌어졌으므로 당시에 국제어라 할 수 있는 라틴어보다는 파급효과가 적었다. 그래도 반밀레니엄이 지난 지금 그가 '외과학의 아버지'라는 별명을 가지게 한 가장 큰 업적이 되었다.

수술을 집도중인 파레. 위키미디어 제공

● 파레가 의학발전에 남겨준 유산

파레는 '화승총과 총기로 인한 상처를 치료하는 법(1545)', '사람 머리의 상처와 골절을 치료하는 법(1561)', '수술에 관한 논문(1564)'을 비롯하여 여러 저서를 남겼다. 그는 외과학의 아버지라는 별명을 가지게 된 큰 이유중 하나는 수술에서 다루는 작업을 다섯 가지로 분리한 것이다. 

① 비정상적인 것 제거하기, ② 탈구된 것 복원하기, ③ 뭉친 것 분리하기, ④ 분리된 것 통합하기, ⑤ 자연적으로 잘못된 것을 바로잡기가 그것이다.

또 나름대로 질병 분류법을 확립하기도 하고 오늘날에도 이용되는 여러 가지 새로운 치료법을 개발하기도 했다. 예를 들면 상처난 혈관에서 피가 흐르는 것을 막기 위해 혈관 윗부분을 묶는 것이다. 그러면 통증없이 피를 멈추게 할 수 있으니 불로 지지는 것보다 훨씬 시술이 쉬웠다. 또 골절 치료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부목을 개발하기도 하는 등 평생 많은 기구를 직접 만들었다.

파레는 위에 발생한 돌의 특성을 시험하는 실험을 진행했다. 그 때까지 돌은 해독제로 사용될 수 있었다고 믿었지만 파레는 아니라 믿었다. 고급 은수저를 훔치던 요리사가 들키는 바람에 교수형에 처해질 위기에 처하자 요리사는 독을 먹은 직후에 위석을 투여하여 살아남으면 석방되는 실험에 임하기로 했다. 결과적으로 위석은 아무 효과를 보이지 못하여 요리사는 사망하고 말았다. 이로써 위석은 해독효과를 가지지 못한다는 파레의 주장이 증명되었다.

파레는 또 부상당한 병사들에게서 절단된 사지에서 감각을 인식하는 환상통에 대한 기록을 남겼다 그는 환상통이 뇌의 문제라 생각했으니 시대를 앞서간 착상이라 할 수 있다.

파레가 전쟁터는 물론 궁전에서 군인들과 왕족을 치료했지만 정규 교육을 받은 (내과)의사들중에는 파레는 무시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파레가 평생 임상의사이자 의학자로 일하면서 후대에 많은 영향을 주었으므로 역사를 빛낸 의학자중 한 명으로 이름이 남게 되었다.

또 외과의학이 의학의 한 분야에 들어오게 된 것은 파레의 영향이 컸다고 할 수 있다. 내과에 비해 낮은 평가를 받던 외과를 동등한 수준으로 올려놓음으로써 의학을 공부하고 의업에 종사하는 이들에게서 외과의학도 같은 학문으로 인정받게 한 것이 그의 업적에 해당한다.

※참고문헌
Raffi Gurunluoglu 1, Aslin Gurunluoglu, Hildegunde Piza-Katzer. Review of the “Chirurgia” of Giovanni de Vigo: estimate of his position in the history of surgery. World Journal of Surgery 27(5):616-23, 2003
쿤트 헤거. 삽화로 보는 수술의 역사. 김정미 옮김. 이룸. 2005
아커크네히드. 세계의학의 역사. 허주 역. 민영사. 1993
헨리 지거리스트. 위대한 의사들. 김진언 옮김. 현인. 2014

예병일 연세대원주의대 교수

※필자소개

예병일 연세대학교 의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C형 간염바이러스를 연구하여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텍사스 대학교 사우스웨스턴 메디컬센터에서 전기생리학적 연구 방법을,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의학의 역사를 공부했다. 연세대학교 원주의과대학에서 16년간 생화학교수로 일한 후 2014년부터 의학교육학으로 전공을 바꾸어 경쟁력 있는 학생을 양성하는 데 열중하고 있다. 평소 강연과 집필을 통해 의학과 과학이 결코 어려운 학문이 아니라 우리 곁에 있는 가까운 학문이자 융합적 사고가 필요한 학문임을 소개하는 데 관심을 가지고 있다. 주요 저서로 『감염병과 백신』,  『의학을 이끈 결정적 질문』, 『처음 만나는 소화의 세계』, 『의학사 노트』, 『전염병 치료제를 내가 만든다면』, 『내가 유전자를 고를 수 있다면』, 『의학, 인문으로 치유하다』, 『내 몸을 찾아 떠나는 의학사 여행』, 『이어령의 교과서 넘나들기: 의학편』, 『줄기세포로 나를 다시 만든다고?』, 『지못미 의예과』 등이 있다.

[예병일 연세대원주의대 의학교육학과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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