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권도가 VR로 간다…아시안게임 정식 종목 추가 검토..격투기가 아니라 게임인가?

발차기 한 방이 상대의 몸을 가르는 대신, 화면 속 게이지를 소진시킨다. 심판 대신 모션 센서가 승부를 가리고, 도장 대신 데이터 공간이 경기장이 된다. 태권도가 VR 기술과 결합해 완전히 다른 종목으로 재탄생하고 있다. 일본 요미우리신문이 21일 단독 보도한 '버추얼 태권도'의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정식 종목 추가 검토 소식은, 단순한 기술 실험을 넘어 전통 스포츠의 정체성을 다시 묻는 질문이기도 하다. 한국이 세계에 수출한 무도(武道)가 디지털 콘텐츠로 진화하는 순간, 우리는 과연 이를 같은 종목으로 볼 수 있을까.

태권도가 디지털화의 길을 걷기 시작한 것은 하루아침의 일이 아니다. 국제 무대에서 태권도는 오랫동안 판정 논란에 시달렸다. 육안으로 발차기의 유효성과 위력을 동시에 판별하는 방식은 이른바 '심판 사고'로 이어지기 십상이었고, 2012 런던 올림픽 이후 전자호구 채점 시스템(PSS)이 전면 도입됐다. 몸통과 머리에 부착된 센서가 일정 압력 이상의 접촉을 자동으로 감지해 점수를 부여하는 방식이었다.

판정 시비는 줄었지만, 동시에 새로운 문제가 생겼다. 선수들이 강하게 차는 것보다 센서가 반응하는 방식으로 발을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일각에서 '발펜싱'이라는 비판이 나온 것도 이 시기부터다. 강한 타격보다 빠른 터치, 압박보다 거리 관리가 유리한 구조가 굳어지면서, 전통적인 태권도의 역동성이 퇴색됐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됐다.

세계태권도연맹(WT)은 이를 타개하기 위해 기술별 점수 차를 확대하고, 회전 발차기와 머리 공격에 높은 점수를 부여하는 방향으로 규정을 개정해왔다. 그러나 근본적인 흥행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고, 올림픽 정식 종목 유지 여부를 두고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의 긴장도 이어졌다. 그 돌파구로 등장한 것이 바로 '버추얼 태권도'다. WT는 이미 별도의 세계 선수권 대회를 개최하며 디지털 버전의 저변을 넓혀왔고,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에 아시안게임 종목 추가를 정식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요미우리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버추얼 태권도는 VR 헤드기어와 팔·다리에 부착하는 모션 트래킹 센서, 그리고 균형·회전·이동 축을 실시간으로 수치화하는 AXIS 시스템을 활용한다. 선수는 가상 공간에서 상대와 마주하고, 실제 신체 접촉 없이 오직 센서 데이터만으로 공격과 방어를 구현한다. 격투 게임과 유사하게 제한 시간 안에 상대의 '파워 게이지'를 먼저 소진시키는 쪽이 이긴다.

종목 구조는 기존 겨루기·품새와 완전히 다르다. 남녀 구분이 없는 혼성 개인전으로 치러지며 참가 자격은 17세 이상 35세 이하로 한정된다. 방식은 16강 토너먼트다. 체급이나 성별, 체격 조건이 승패에 미치는 영향은 대폭 줄어들고, 대신 모션 데이터를 얼마나 정밀하게 설계하고 구현하느냐가 핵심 경쟁력이 된다.

메달 구조도 변한다. 기존 겨루기 체급 일부가 축소되고 혼성 단체전이 제외되는 대신, 버추얼 태권도가 새로운 금메달 종목으로 추가된다. 경기 장소는 아이치현 도요하시시 종합체육관으로, 기존 겨루기·품새와 같은 공간에서 병행 운영하는 방안이 논의 중이다. 종목 추가 여부는 6월 중순 조직위원회 이사회에서 공식 결정된다.

버추얼 태권도를 둘러싼 논쟁은 태권도라는 종목의 정체성 문제로 귀결된다. 지지하는 쪽은 접근성 확대를 핵심 근거로 든다. 신체 충돌이 없으므로 부상 위험이 낮고, 체격 차이나 성별 구분 없이 동일 조건에서 경쟁이 가능하다. 어린이와 장애인도 참여할 수 있으며, 물리적 훈련 공간이 없어도 VR 장비만 있으면 준비할 수 있다는 점도 강점으로 꼽힌다.

그러나 이 변화는 단순한 기술 진보가 아니라, 스포츠의 본질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내포한다. 태권도는 신체를 단련해 상대와 맞서는 무도에서 출발했다. 발차기의 위력과 정확성,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신체 능력이 경쟁의 핵심이었다. 전자호구 도입 이후 이미 '센서를 울리는 기술'이 '강한 기술'을 대체하기 시작했다는 비판이 있어왔는데, 버추얼 태권도는 그 연장선에서 아예 신체 접촉을 제거해버린다. 기존 겨루기에서 팬들이 느꼈던 이질감, 즉 강하게 맞아도 점수가 안 나고 살짝 건드려도 점수가 올라가는 상황이 버추얼 버전에서는 더 극단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한편으로는 이 흐름이 시대적 필연이라는 시각도 있다. 전통 스포츠들이 e스포츠와 경쟁해야 하는 지금, 디지털화된 버전을 통해 젊은 세대와 접점을 넓히지 않으면 종목 자체가 흥행을 잃을 수 있다는 현실적 판단이다. 실제로 WT가 버추얼 세계 선수권을 독자적으로 운영하며 팬층을 확대해왔다는 점은 무시하기 어렵다.

이번 변화가 주목받는 이유도 여기 있다. 버추얼 태권도의 아시안게임 합류는 태권도 하나의 문제가 아니라, 테니스와 스쿼시를 결합한 '빠델', 축구와 탁구 요소를 합친 '테크볼' 등 융합 종목의 부상과 맞닿아 있다. 전통 스포츠의 경계가 흐려지고 있으며, 국제 종합 대회의 무대 위에서 '스포츠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이 실질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국내 태권도 커뮤니티의 반응도 엇갈린다. "태권도의 글로벌 확산을 위한 불가피한 진화"라는 긍정론과, "이름만 태권도인 게임 종목을 왜 태권도 메달로 인정해야 하냐"는 회의론이 팽팽하다. 특히 기존 겨루기 체급 일부가 줄어드는 대신 버추얼 종목이 들어온다는 구조는, 실제 겨루기 선수들의 메달 기회가 줄어든다는 점에서 반발의 씨앗이 될 수 있다.

6월 이사회의 결정이 어떻게 나든, 이 논쟁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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