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술과 과학]⑦ “송산 포도 막걸리 개발만 2년…향료로 흉내내면 농가 피해”
과일의 기능성 성분이 막걸리 맛과 향도 높여
향료·색소 허용하면 진짜 과일 막걸리 사라질 수도
“최근 막걸리에 대한 청년 세대의 관심과 함께 젊고 역량 있는 신규 업체도 증가하고 있다. 우리쌀 소비 촉진을 위해 전통주 산업 진흥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
지난 9월 23일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경기도 화성시에 위치한 화성양조장(마스브루어리)에서 전통주를 만드는 젊은 양조인들을 만나 이렇게 말했다. 우리 쌀과 농산물 소비 촉진을 위한 돌파구로 전통주 산업 진흥을 꼽은 것이다. 이날 간담회에는 김기명 화성양조장 대표와 정덕영 팔팔양조장 대표, 고성용 한강주조 대표가 참석했다.
송 장관이 찾은 마스브루어리는 국내에 몇 없는 포도 막걸리를 만드는 곳이다. 마스브루어리의 대표 제품인 ‘로제’는 캠벨 품종의 포도를 넣어서 만든 막걸리다. ‘사워’는 청수 포도 품종을 넣었다. 두 제품 모두 골드퀸 3호로 알려진 수향미라는 우리 쌀이 기본이다. 마스브루어리가 1년에 사용하는 포도만 1t에 달한다. 농림부가 우리 쌀과 농산물 소비 촉진을 위한 전통주 산업 간담회 장소로 마스브루어리를 택한 이유다.
송 장관이 다녀간 지 이틀 뒤인 9월 25일 마스브루어리를 찾아 갔다. 양조장은 화성시 송산면에 있다. 송산 포도로 유명한 그 송산이다. 시장과 가까운 터미널에 내리자 거리 곳곳에 포도를 잔뜩 쌓아둔 모습이 보였고, 어디를 가도 포도 향이 짙었다. 터미널에서 10분쯤 걸어가자 마스브루어리가 보였다. 양조장 뒤편도 온통 포도밭이었다. 김기명 대표는 “지역에서 나오는 재료에 집중해야 겠다는 생각에 송산 포도를 이용한 막걸리를 떠올렸다”고 말했다.
◇포도 막걸리 향과 색 찾는 데만 2년
포도를 이용한 술이라고 하면 흔히 와인을 먼저 떠올린다. 국내에도 청수 품종을 이용한 와인을 만드는 양조장이 여럿 있다. 하지만 포도를 이용해 막걸리를 만드는 곳은 찾아보기 힘들다. 김 대표는 “이벤트성으로 포도 막걸리를 내놓는 경우는 있지만, 우리처럼 1년 내내 포도 막걸리를 지속적으로 생산하는 곳은 없다”며 “그만큼 포도를 이용해 막걸리를 만드는 게 어렵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화성시 송산면에 자리를 잡으면서 자연스럽게 포도 막걸리에 관심을 뒀지만, 실제 제품이 나오기까지는 지난한 과정이 필요했다고 설명했다. 2021년 제품 개발에 착수하고 첫 제품이 나온 건 2023년이었다. 제품 개발에만 2년이 걸린 셈이다.
김 대표는 “포도를 넣고 일반적인 방법으로 막걸리를 빚으면 갈변이 되면서 색이 탁해진다”며 “포도의 맛과 향, 색을 유지하기 위한 방법을 찾는 데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김 대표가 찾은 방법은 포도를 일정 온도로 높여서 가열한 뒤 착즙해서 쌀 발효조에 넣고 막걸리를 만드는 방식이다. 포도를 바로 으깨서 만드는 와인과 달리 포도 막걸리는 포도즙을 이용한 것이다. 이후 저온에서 숙성을 하는 식으로 포도 특유의 색을 지키는 데 성공했다.
포도의 맛과 향에 어울리는 누룩을 배합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마스브루어리는 네 가지 누룩을 섞은 뒤에 이를 물에 불려서 사용한다. 김 대표는 “발효 온도와 시간, 급수량을 바꿔가면서 어떤 누룩을 어떻게 섞는 게 과일 맛에 가장 어울리는지 찾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했다.
이런 노력 덕분에 마스브루어리의 과일 막걸리는 상품성을 인정받고 해외에 수출되고 있다. 작년 7월 홍콩을 시작으로 올해는 싱가포르와 일본에도 제품을 수출했다.
◇막걸리에 과일 더해 맛과 향, 영양까지 챙겨
마스브루어리처럼 과일을 넣은 막걸리를 생산하는 곳은 꾸준히 늘고 있다. 경북 문경의 문경주조가 2000년대 중반 오미자를 넣은 막걸리로 인기를 끈 이후 새로운 시도가 계속되고 있다. 최근 들어 젊은 소비자와 여성 소비자가 늘어난 것도 과일 막걸리의 인기 덕분이다.
과일을 넣은 막걸리는 맛이나 향, 영양 성분에서 기존의 막걸리보다 나은 모습을 보여줬다. 손홍석 동신대 교수 연구진은 2014년 한국식품영양과학회지에 파인애플을 넣은 막걸리의 품질 특성을 분석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진은 파인애플 과육과 심지를 넣은 막걸리를 아무 것도 넣지 않은 막걸리와 비교했는데, 파인애플이 들어간 막걸리가 유기산 함량이 높았다. 유기산은 막걸리의 맛과 산미를 결정하는 주된 성분이다.
이원종 강릉원주대 식품영양학과 교수 연구진이 2011년 한국식품영양과학회지에 발표한 블루베리 첨가 막걸리에 대한 논문도 마찬가지 결과를 보여준다. 연구진은 블루베리 함량을 5%, 10%, 20%로 나눠 아예 넣지 않은 막걸리와 성분을 비교했다. 블루베리를 10% 넣은 막걸리가 당도와 산도(pH) 등에서 블루베리를 넣지 않은 막걸리보다 좋은 결과를 보였다.
이대형 경기도농업기술원 지방농업연구사는 “과일은 당류가 있어서 맛을 좋게 할 뿐만 아니라 유기산, 폴리페놀, 플라보노이드 같은 다양한 기능성을 가진 성분도 있어서 (과일을 넣은 막걸리는) 영양학적으로도 좋다”고 말했다.
◇막걸리에 향료·색소 허용하면 농가도 피해
막걸리 업계는 최근 둘로 쪼개졌다. 막걸리에 진짜 과일만 넣을 것인지, 과일 맛이나 향을 내는 향료나 색소도 허용할지를 놓고 갈라졌다.
다툼의 시작은 기획재정부(기재부)가 지난 7월 발표한 세법 개정안이었다. 기재부는 세법 개정안에서 탁주(막걸리) 제조 시 첨가 가능한 원료에 향료와 색소를 추가하겠다고 밝혔다. 지금은 향료와 색소를 첨가하면 막걸리가 아닌 ‘기타주류’로 분류돼 7배 정도 높은 세금을 내야 한다.
기재부 개정안을 환영하는 막걸리 제조사들은 “높은 세율과 막걸리 표기 불가 때문에 다양한 맛과 향의 제품 개발이 제약받았다”고 했다. 반면 개정안에 반대하는 업체들은 향료와 색소를 허용하면 막걸리의 전통성을 해치고, 과일 같은 지역 농산물 사용도 줄어들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기명 마스브루어리 대표도 마찬가지 반대 입장이다. 김 대표는 “향료 한 방울로 포도 막걸리라는 이름을 붙이면 몇 t씩 포도를 써가면서 포도 막걸리를 만들 이유가 없다”며 “프랑스에서는 와인에 첨가하는 재료에 대해 까다롭게 관리하는데 한국은 오히려 반대로 가는 것 같아 아쉽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의 의견도 같다. 이대형 연구사는 “주세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과일을 넣고 발효를 통해 술을 만드는 어려운 과정 대신 향료와 색소를 넣고 쉽게 만드는 과정을 택할 가능성이 크다”며 “지역특산주를 만들 때도 지역 농산물을 100% 사용하지 않고 향료와 색소로 빈 부분을 채우면 농산물 소비도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참고 자료
한국식품영양과학회지(2014), DOI : http://dx.doi.org/10.3746/jkfn.2014.43.8.1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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