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대표 대형마트인 홈플러스가 기업회생절차에 들어가면서 최대주주이자 사모펀드인 MBK파트너스의 모럴해저드 논란이 일고 있다. 홈플러스가 수년째 적자를 내는 와중에도 해결책을 내놓지 못한 데 따른 경영실패론도 불거지지만, 별다른 자구책도 없이 곧바로 법정관리를 택한 무책임함에 대한 비난이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우리 경제에 아픔을 남긴 론스타 사태의 트라우마에서 겨우 벗어나던 중에 MBK가 사모펀드의 도덕적 해이에 대한 부정적 여론에 다시 불을 지피는 모양새다.
5일 금융권에 따르면 홈플러스가 MBK 손에 넘어간 시기는 2015년이다. 당시 MBK는 7조2000억원을 들여 홈플러스를 인수한 것으로 알려져 왔다. 이때부터 MBK의 홈플러스 인수에 대한 시선에는 의구심이 있었다. 홈플러스 이름으로 거액의 빚을 내 자금을 마련하는 방식과, 기업을 다시 팔아 최대한 빨리 이익을 내려는 사모펀드의 특성을 연계해보면 MBK에 책임 있는 경영을 기대하기는 어렵지 않겠냐는 평가였다.
MBK는 블라인드펀드로 2조2000억원을 투입하고, 나머지 5조원은 홈플러스 명의로 대출을 받아 충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대출 5조원 중 4조3000억원은 은행 선순위 대출로, 7000억원은 상환전환우선주로 조달했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금융권에서는 MBK가 홈플러스의 장기성장을 도모하기보다 전국의 부동산 자산을 처분해 인수금을 회수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됐다. 홈플러스 주식을 담보로 잡은 인수금융 계약에 자산을 매각할 경우 인수금융을 먼저 갚겠다는 약정이 포함돼 있다는 후문 때문이었다.
실제로 MBK가 홈플러스를 인수한 후 영업이 종료됐거나 종료를 앞둔 점포는 25곳에 달한다. 이 가운데 폐점한 곳만 14곳이다. 이로써 2015년 당시 142곳이었던 홈플러스 점포는 현재 126곳까지 줄었다.
다만 이런 의혹에 홈플러스 측도 해명에 나섰다. 홈플러스는 이날 배포한 팩트체크 자료를 통해 MBK의 홈플러스 인수 당시 시장 차입금 규모가 4조3000억원으로 알려진 것은 사실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공동투자자 자금과 우선주 7000억원을 포함해 3호 펀드에서 투자한 자금이 약 3조2000억원이었고, 인수를 위한 인수금융 차입금은 2조7000억원 정도였다는 설명이다. 아울러 대주주의 투자금을 회수하기 위한 목적으로 점포 매각을 한 적이 없다고 부연했다.
그럼에도 MBK의 홈플러스 경영방침에 대한 의문은 여전하다. 오프라인 매장이 핵심인 홈플러스의 사업구조가 변하지 않는 가운데 점포를 줄이면 실적이 나빠질 수밖에 없지 않겠냐는 평가였다. 실제로 2월 말 결산 법인인 홈플러스는 2021회계연도부터 영업이익이 1335억원 적자로 전환했다. 이후 3년 연속 손실이 이어졌다. 2023회계연도 매출은 6조9315억원으로 10년 전보다 5.4% 감소했다.
이 와중에 전격적으로 홈플러스의 법정관리를 신청하면서 MBK를 향한 비판은 한층 확산될 것으로 전망된다. MBK 스스로 단기 자금 부담을 이유로 곧바로 기업회생 카드를 꺼내는 것은 책임감 없는 행동으로 보일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주인 있는 기업이었으면 자구책부터 내놓거나 오너의 사재 출연 등 다른 모습을 보였을 거라는 얘기다.
가뜩이나 MBK는 최근 세계 1위 비철금속 제련 업체인 고려아연의 경영권 분쟁에 적극적으로 뛰어들며 뜨거운 감자가 됐다. 그런데 홈플러스에 대한 행동이 도마 위에 오르면서 고려아연 경영권을 둘러싼 명분도 상처를 입게 됐다. MBK는 최윤범 회장을 중심으로 한 고려아연의 지배구조 문제가 심각하다며 고려아연 최대주주인 영풍과 손잡고 경영권 확보를 추진해왔다. 이에 최 회장 측은 MBK가 고려아연을 인수할 자격이 없다며 맞서왔다.
일각에서는 홈플러스에 대한 이번 MBK의 조치를 계기로 사모펀드에 더 따가운 눈총이 쏠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안 그래도 사모펀드의 기업 인수합병(M&A)이 국내 산업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염려가 여전한 가운데 이를 뒷받침할 실제 사례가 발생한 셈이기 때문이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지난해 12월 전국의 만 18세 이상 남녀 1004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전체 응답자 중 57.5%는 사모펀드에 대해 '부정적'이라고 답했다. '긍정적'이라는 응답(21.9%)보다 3배 가까이 높은 수치다. 또 사모펀드의 M&A가 우리나라의 산업 경쟁력에 미치는 영향을 묻는 질문에는 58.4%가 '부정적'이라고 답했다. '긍정적'은 19.0%에 그쳤다. 이 조사의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1%p다.
우리나라에서 사모펀드에 대한 인식이 이토록 나쁜 데는 론스타 사건의 영향이 절대적이다. 해외 사모펀드인 론스타가 2003년 8월 옛 외환은행을 1조3834억원에 사들여 9년 뒤인 2012년 하나은행에 되팔며 4조원 넘는 차익을 챙기면서다.
여기에 더해 론스타는 외환은행을 더 비싼 가격에 매각할 수 있었음에도 우리 정부가 정당한 사유 없이 승인을 지연시키고, 국세청이 자의적·모순적 과세를 해 막대한 손해가 났다는 주장을 폈다. 그러면서 2012년 11월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에 한국 정부가 46억7950만달러를 배상하라는 취지의 중재 신청을 냈다.
ICSID 중재판정부는 2022년 8월 우리 정부가 외환은행 주식을 매각하는 과정에서 투자협정을 위반했다는 등의 이유로 2억1650만달러를 론스타에 지급하라고 판정했다. 정부는 배상금이 잘못 계산됐다며 ICSID에 정정 신청을 냈고, 이 신청이 받아들여지면서 배상금은 약 2억1601만달러로 정정됐다.
금융권 관계자는 "최근까지 국내에서도 선진금융의 주요 영역으로서 사모펀드의 역할이 강조되며 이미지 개선이 꽤 이뤄졌다"면서도 "이번 홈플러스의 법정관리로 사모펀드는 약탈적 기업사냥꾼이라는 주홍글씨가 다시 부각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부광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