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생활 30년 후 50대에 시작한 음악 인생, 뉴욕의 지휘자 최우명
이역만리 미국 땅에서 멋지고 당당하게 살아가는 교포들의 삶을 엿보는 시간. 이번에 소개해 드릴 분은, 의학박사이면서 오케스트라를 이끄는 예술감독이자 지휘자로 살아가고 계신 최우명 박사님입니다. 이제 음악가와 의사를 오가는 그의 삶과 인생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Q. 본인 소개를 부탁합니다.
안녕하세요. 최우명(올해 88세, 1936년생)입니다. 30여 년간 방사선의학과 전문의로 지내다가 지금은 은퇴하고 버겐 심포니 오케스트라에서 예술감독 겸 지휘자를 맡고 있습니다.
Q. 한 가지도 갖기 어려운 전문 직업을 두 가지나 가지고 계십니다. 어떻게 이게 가능했을까요? 그 과정을 설명해 주신다면요?
저는 경북 영천 출생으로 경북대 의대 재학 시절, 학내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을 결성하며 음악의 꿈을 이어갔습니다. 집안의 반대가 심해 음악을 대놓고 할 수가 없었거든요. 그 후 도저히 음악에 대한 마음을 포기할 수 없어 군의관으로 3년 근무한 후 이 두 가지를 모두 할 수 있는 미국으로의 이민을 결심했습니다. 사촌이 의사면서 바이올리니스트였는데, 이를 보며 나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이 보였습니다.
당시 미국은 베트남전쟁 때문에 의사 면허증이 있다면 쉽게 영주권을 내주던 시기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1968년 미국으로 건너와 뉴욕 브롱크스의 영 피플스 오케스트라, 매사추세츠주의 피츠 필드 심포니 오케스트라, 버크셔 유스 심포니에타 등에서 음악 감독을 거쳤고, 뉴욕 뉴버그 타운의 ‘그레이터 뉴버그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조직해 상임 지휘자로 활약했습니다.
Q. 50대에 다시 음악 대학에 입학할 정도로 음악에 대한 열정이 남다르셨다고 들었습니다. 미국에 오신 뒤로, 최우명 박사님은 어떻게 오케스트라를 지휘하게 되었는지요?
미국에 와서 의사로 일을 하고 있었지만, 음악에 대한 열정과 미련이 식지 않더군요. 그래서 개인적으로 지휘 레슨을 받다가 교수님의 권유로 50대에 미국 음대에 입학했습니다. 1987년 뉴욕 스키드모어 칼리지에서 4년, 메인주에 있는 피에르 몽튜 대학 지휘 학교에서 4년, 이렇게 총 8년의 시간을 지휘 공부에 매진했습니다.
Q. 50대에 새로운 인생 전환기를 설계하기 위해 이런 결정을 내리기가 쉽지 않으셨을 텐데요.
음악 대학에 오디션을 보러 갔는데 당연히 모두 저를 의심했습니다. 50대의 남자 한국인이 버젓한 직업이 있음에도 음대 입학을 하겠다고 방문했으니까요. 혹독한 훈련 과정을 견딜 수 있을지 의심하는 교수 앞에서 제 결의를 표현했지만, 한편으로 자신감이 없어지려던 찰나, 다행히 오디션 합격 통보를 받고 공부를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Q. 어렵고 힘든 훈련의 시기를 보내고 유지 비용도 많이 드는(?) 오케스트라를 창단하셨습니다. 그 목적은 무엇이었나요?
제 첫사랑이자 끝사랑이라 할 수 있는 아름다운 고전음악을 우리 동포들에게 들려주고 함께 즐기며 감동을 나누고자 함이었습니다. 또한, 단원들에게는 합동 연주 외에도 솔로 공연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있도록 노력해 그들의 음악 인생에 더 풍부한 경험을 선사하게 하고, 이를 통해 한국 교포 사회의 문화 발전에 기여하고 싶었습니다.
Q. 버겐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창단 연도, 연주회의 횟수, 그리고 공연 시 드는 비용은 어떻게 충당하시는지 궁금합니다.
2011년 11월 창단했고 매년 3~4회 공연을 진행합니다. 공연마다 대략 40~50명의 단원들이 하모니를 이뤄 연주합니다. 통상적으로 400석 공연장을 대관해 티켓을 판매합니다만, 티켓이 모두 팔리는 경우는 거의 없으니 연간 대략 5만 달러 안팎의 출혈이 있습니다. 부족한 비용은 거의 자비로 충당해 나가고 있습니다. 제가 평생 의사라는 직업을 선택해 돈을 번 것도 음악을 위해 쓰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니 제 인생에서 음악 외의 다른 생활비는 무조건 아껴서 사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Q. 개인의 노력과 희생, 이를 함께 나누려는 마음으로 이토록 오랜 시간, 그것도 한국이 아닌 미국 땅에서 오케스트라가 유지된다는 사실이 놀랍고 존경스럽습니다. 그 원동력이나 이를 뒷받침하는 신조가 있으신가요?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하면 불평할 일이 없습니다. 그리고 사람은 누구나 인간미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건방지지 않고 겸허하게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제 이력이 독특했던 만큼 직장 동료 사이에서나 교포 사회에서 질투 혹은 비아냥을 많이 겪어야 했습니다. ‘아마추어’라는 놀림, 명문 음대를 나오지 않았다는 조롱을 받은 적도 많았습니다만 저는 굴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의사가 예술을 하면 환자를 보는 기준이 달라진다고 믿습니다. 환자가 못났든 잘났든 그저 좋게만 보인다는 것이죠. 이는 제 음악 인생의 경험을 통해 직접 터득한 것입니다. 모든 인간은 저마다 아름답고 사랑스럽습니다. 제가 만약 음악을 안 했더라면 이런 마음의 여유와 인간미가 있었을까요? 저를 질투하고 질책했던 사람에게 화내지 않고 포용할 수 있었던 것, 저는 이것이 진정한 예술의 힘, 참된 예술인이라고 믿습니다. 결과적으로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저는 제 일생에서 손해를 본 것이 없습니다.
예술은 마음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실 어떤 사람을 보면 ‘저 친구는 틀렸구나’라는 걸 얼굴만 보고 느낄 때도 있습니다. 그러니 사람은 정직해야 합니다. 완벽한 음악을 위해서는 서로 조화가 잘 돼야 하기 때문입니다. 연주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술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마음을 다해 연습을 하다 보면 결과적으로 잘 되게 되어있습니다. 간혹 사람들은 ‘나이’라는 잣대로 평가하지만, 제 경험상 이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Q. 지금껏 했던 수많은 연주회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 청중을 손꼽는다면요?
저는 사실 관중의 반응보다는, 단원들의 한마디, 한마디가 특히 기억에 남습니다. 일전에 저와 손발을 맞춰 연주했던 연주자가 저와 함께 베토벤의 교향곡 6번 〈전원〉을 연주했을 때가 참 좋았다고 이야기해 준 적이 있습니다. 그런 말이 저에게 큰 힘을 줍니다. 아시겠지만 〈전원〉 교향곡은 연주가 어렵기도 하고, 연주 시간도 꽤나 긴 편입니다. 그러니 함께 연주하는 동료에게 듣는 이런 진심 어린 의견이야말로 제가 매번 공연을 할 수 있는 힘이 되는 셈입니다.
Q. 매사추세츠주의 탱글우드는 매년 여름 열리는 음악 축제로 유명합니다. 최근 몇 년간은 인기 피아니스트 조성진 씨도 참여를 해서 화제가 되었었습니다. 그 근방에 세컨드 하우스를 가지고 계시는데요, 지휘자님의 주변 지인들이 항상 자유롭게 머물며 여행과 축제를 즐기는 장소로 제공해 주신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계기로 그렇게 집을 운영하시게 된 건가요?
의사로 근무하던 시절, 우연히 그곳에 직장을 구했습니다. 가족이 오래 살았던 곳이라 그 추억이 담겨있기도 하고, 저 역시 매년 방문해 지인들과 함께 음악 축제를 즐기면서 그 공간을 알차게 활용하고 있습니다. 친한 지인들이 늘 방문하는데 심경흠 지휘자, 한동일 피아니스트,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 악장 타마라 스미노마 등이 자주 오십니다.
Q. 앞으로의 계획을 여쭙고 싶습니다.
2024년 4월 21일 미국 뉴저지주 프로미스교회에서 버겐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정기 연주회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6, 9, 11월에도 공연할 예정이고요. 매년 정기 공연 외에도 챔버 앙상블 2회를 추가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2019년에 포트 리 도서관 100주년 공연을 성황리에 마친 적이 있는데요, 올해는 버겐 카운티 지역 도서관 공연도 준비 중에 있습니다.
Q. 앞으로 미국으로 이민 올 분들, 한국에서 이 소식을 들을 분들, 현재 미국에서 사시는 분들에게 한마디 한다면?
내가 걸어온 인생은 의학과 음악이 합쳐져 있습니다. 그건 미국이니까 가능한 것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선입견이나 편견이 다른 곳에 비해 덜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음대에 입학하면서 앞으로 20년은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고, 실제로 그렇게 해냈습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20년 이상을 음악가로 살고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자기가 원하고 노력한다면 기회는 얼마든지 있고 성공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간절히 원하는 마음이 있다면 문을 두드리십시오. 열릴 것입니다.
2011년 11월, 현 지휘자 겸 예술 감독인 최우명 박사가 당시 뉴저지 한인 상록회 이명석 회장과 합심하여 뉴저지 주의 버겐 카운티를 기반으로 만든 교향악단입니다. 한국인과 타 민족 연주자 등으로 구성된 다민족 오케스트라로, 창단 이후 해마다 수 차례 정기 연주회를 개최하고 있으며, 2024년에도 4, 6, 9 11월에 연주회가 계획되어 있습니다.
인터뷰·사진 | 조은정
최소 2개월에 한 번은 비행기를 타줘야 제대로 된 행복한 인생이라고 믿는 여행교 교주. <미국 서부 셀프트래블>, <뉴욕 셀프트래블> 외 여러 권의 저서가 있는 베스트셀러 직딩 여행작가. 현재 뉴욕에서 지내고 있다.
이 콘텐츠는 카카오의 운영 지침을 준수합니다.
Copyright © 브릭스 매거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