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법학자도 놀랐다, 나림의 깊고 풍부한 법철학

조봉권 기자 2024. 9. 12.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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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깊었다'는 굉장히 치열한 책이다.

책에 관한 책인 '밤은 깊었다'에서 저자는 독특한 형식과 방법을 여럿 시도한다.

이 책에서 저자가 이렇듯 치열하게 독자에게 소개하는 글은 모두 나림 이병주(1921~1992) 작가의 문학 작품이다.

하태영 교수는 이 독특한 구성의 책에서 일관되게 나림의 인문정신·법철학·교육철학·예술론을 짚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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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깊었다- 하태영 지음/법문사/3만5000원

- 하태영 교수가 쓴 ‘밤은 깊었다’
- 필사·미니소설 독특한 형식으로
- 이병주 철학·문학적 의미 조명
- 인문학적 사유가 뒷받침 돼야
- 올바른 법사상 완성된다고 강조

‘밤은 깊었다’는 굉장히 치열한 책이다. 투지라고 해야 할지 간절함이라고 표현하는 게 좋을지, 독자를 향한 저자의 절실한 마음이 고농도로 농축됐다. 책의 형식·구성에서도 이런 특징은 선명히 드러난다.

법과 교육 등의 영역에도 해박하고 깊은 지식을 갖췄던 나림 이병주 작가. ‘밤은 깊었다’에는 특히 법과 관련한 내용이 많이 담겼다. 국제신문 DB


책에 관한 책인 ‘밤은 깊었다’에서 저자는 독특한 형식과 방법을 여럿 시도한다. 대체로 이렇다. 먼저 작품 개요와 주요한 개념 해설. 여기에는 등장인물, 작품 속 법·교육·문학·철학, 이 작품이 현대에 갖는 의미가 포함된다. 그리고 저자 자신이 필사해 둔 중요한 문장을 바탕으로 한 번 더 줄거리를 제시하면서 이를 ‘미니 소설’로 이름 붙인다. 그 뒤에 다시 ‘문장과 낭독’ 단원을 두어, 해당 작품 속 중요한 문장을 낭독용으로 갈무리했다.

이 단계를 밟고 나면, 독자의 뇌리와 가슴에는 작품이 박힌다. 잘 잊히지 않는다. 책의 재료가 된 원작도 찾아서 읽고 싶어진다. 다만, 그 과정에서 앞에서 한 번 소개했던 문장이 뒤에 또 나오고 또 나오고 해서 독서 흐름이 정체되기도 하는데 그런 대목은 건너뛰면 된다.

‘밤은 깊었다’ 저자는 저명한 형법학자인 하태영 동아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다. 이 책에서 저자가 이렇듯 치열하게 독자에게 소개하는 글은 모두 나림 이병주(1921~1992) 작가의 문학 작품이다. 저자는 대문호 이병주 문학 작품을 읽고 정리한 책 ‘밤이 깔렸다’로 2022년 이병주하동국제문학제에서 연구상을 받았다. ‘밤은 깊었다’는 두 번째 책인 셈인데, 구성과 내용이 더 깊고 단단해졌다.

법학자 하태영 교수는 이 책에 나림의 에세이 ‘지적 생활의 즐거움’, 소설 ‘목격자’ ‘운명의 덫’ ‘거년의 곡’ ‘망명의 늪’ ‘세우지 않은 비명’을 담았다. ‘작품 해제-나림 이병주의 법사상·교육사상’ ‘서문-필사 문학과 작품 제목에 관하여’ ’후기-나림 이병주 1921~1992~2024’도 중요하고 흥미로운 글이다. 특히 ‘서문-필사 문학과 작품 제목에 관하여’에서 저자가 이병주 작품을 읽고, 사색하고, 필사하고, 다시 추려 탈고하는 과정과 그렇게 하는 마음이 담겨 인상 깊다. 저자는 이렇게 썼다. “이 작업을 마치면 캄캄한 밤이다.” 그래서 책 제목이 ‘밤은 깊었다’이다.

하태영 교수는 이 독특한 구성의 책에서 일관되게 나림의 인문정신·법철학·교육철학·예술론을 짚는다. 특히 형법학자로서, 나림 문학 속에 광맥처럼 놓인 풍부하고 깊은 법철학·법지식·법사상에 주목한다.

인문 공부란 세상을 진지하게 공부해 지혜를 구하고, 인간에 관해 배우면서, 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함께 또는 홀로 노력하는 일이다. 이런 인문 공부가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법 공부는 균형감을 잃거나 깊이를 상실한 채 위태롭게 비틀거릴 수 있음을 나림은 작품 속에서 줄곧 말한다. 저자도 바로 이런 점을 우선 강조하고 싶은 듯했다.

돌이켜 들여다보면, 상앙·한비·이사는 모두 국가와 권력에 이익을 제공하는 데는 크게 성공하고도 막상 자신은 자기가 만든 법의 틀에 갇혀 불행하게 죽는다. 상앙·한비·이사는 모두 절정고수의 법가(法家) 인물이다. 왜 이렇게 됐을까? 인문 없이 각박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법가와 대비되고 인문 교양을 강조하는 유가(儒家) 또한 공동체 운명을 오롯하게 맡길 만한 그 무엇은 못 된다. 멀리 갈 것 없이 유가가 지배한 조선 말기를 떠올려보자. 나라가 망했다.


결국, 유가와 법가가 다시 말해 인문의 사유와 날카로운 지식은 조화를 이뤄야만 좋은 기능을 한다는 건데 나림 이병주도, 하태영 교수도 이를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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