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2100명 안성 농민 뭉쳤다, 연매출 150억원 곰탕 공장의 기적
진한 사골 곰탕으로 유명한 고삼농협 안성마춤푸드센터 방문기
“못난 소나무가 산을 지킨다더니, 같은 초등학교 마흔명 중 저 포함 단 두 명만 고삼을 지키고 있습니다.”
고삼농협의 윤홍선 조합장(59)은 스스로를 ‘못난 소나무’라고 소개했다. 나고 자란 안성시 고삼면을 단 한 번도 떠나지 않은 스스로를 낮춰 표현한 것이다. 가까이서 만난 그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였다. 고령의 조합원들에겐 매년 명절 선물을, 농협 직원들에겐 매년 새로운 복지 혜택을 추가할 정도로 후한 인심 덕에 ‘3선 조합장’이라는 이름표를 거머쥐었다.
그가 인심을 쏟고 있는 또 다른 영역은 ‘먹거리’다. 고삼농협은 안성 지역에서 키운 한우 부산물로 가공식품을 만들어 유통하는 사업을 하고 있다. 이곳의 곰탕은 국물이 뽀얗고 진하기로 소문이 났다. 윤 조합장을 만나 못난 소나무가 지역 사회에 기여하는 법에 대해 들었다.
◇4대가 모여 사는 3선 조합장
경기도 안성시 고삼면은 인구 2100여명, 600여 가구에 불과한 작은 지역이다. 규모는 작지만 존재감은 크다. 고삼 지역 농가의 중추인 고삼농협은 ‘안성마춤푸드센터’를 통해 가공식품을 제조해 ‘착한들’이라는 브랜드로 유통하고 있다. 작년 기준 연매출은 150억원이다.
대표 상품은 ‘진한 사골 곰탕’이다. 안성 지역 한우의 부산물을 끓여 만든 것으로 뽀얀 빛깔과 담백한 국물 맛이 특징이다. 500g 한 봉지당 단백질 함량이 11g으로 단백질 함량이 6g인 200ml 우유보다 단백질이 많다. 색을 내기 위한 유화제나 조미료 같은 첨가물이 들어가지 않아 어린 아이를 둔 부모 사이에서 인기다. 어린이용 곰탕 제품도 있다. 사골 본연의 맛이 진하게 나 만둣국이나 떡국 같은 다른 음식의 육수로 응용하기 좋다.
윤 조합장은 고삼면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다. ‘흙에 살리라’ 노래처럼 고향 땅을 한 번도 떠난 적이 없다. 소를 키우던 부모님 따라 30년간 낙농업에 종사했다. 전성기 때는 1만평 이상의 부지에 젖소 100마리, 한우 200마리를 키울 정도였다.
지역에서 그는 ‘4대가 모여 사는 다복한 조합장’으로 불린다. 부모님과 세 자녀, 여섯 명의 손자 모두 가까이 살고 있다. 2015년 처음 조합장으로 당선된 이후로 3연임 중인 그는 현재 9년차 임기 중이다.
- 소개 부탁드립니다.
“고삼면 끝자락에서 태어난 촌놈입니다. 지금도 4대가 함께 살고 있습니다. 저 스스로는 농사꾼 출신의 조합장이라고 소개합니다.”
- 조합장으로 세 번이나 당선되셨네요.
“부모님 모시고 열심히 축산 일하며 살아왔을 뿐인데 고산면민들께서 도와 주신 것 같습니다. 한 번 해도 영광인데 삼선까지 하게 되어 무척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30대 때부터 농협 조합원이었는데요. 오랜 시간 고삼면에 관심을 가지고 여러 활동을 한 것을 높게 평가받은 것 같습니다. 조합원들의 집안 사정을 속속들이 알 정도니까요.”
- 당선 후 주로 어떤 활동을 하셨나요.
“사람이 먼저인 만큼 복지부터 신경 썼습니다. 암을 늦게 발견해서 돌아가시는 분들을 보고 전체 조합원 대상으로 건강검진을 진행했습니다. 또 농협 설립 시 출자하셨던 원로 조합원분들에게 우대 차원으로 설 선물을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직원들의 근로 환경도 개선했습니다. 자차로 출퇴근하는 직원들이 많은 것을 보고 차량 보험료 지원, 타이어 교체 사업 등을 진행했죠. 직원들의 단결을 위해 동호회 활동도 지원하고 있습니다.”
- 복지를 확충하면 비용이 커져 경영이 악화되지 않나요.
“협동 조합의 핵심은 사람입니다. 사람에게 투자해야 성과가 나오는 구조죠. 제가 처음 지휘봉을 잡았을 때 고삼농협의 예수금이 700억원대였습니다. 지금은 1400억원대 정도로 빠르게 성장했습니다. 대도시 농협과 비교하면 소소하게 보이겠지만 모두가 합심해서 이뤄낸 성과라 자부심을 느낍니다. 초등학교 학년별로 합반할 정도로 인구가 줄어들고 있기 때문에 사람이 귀합니다. 사람을 귀하게 대한 것에 대한 보상이라 생각합니다.”
◇한우 부산물 활용한 식품 가공 사업으로 농가 소득 증대
고삼농협의 또 다른 역점 사업은 식품가공 사업이다. 고삼농협은 식품 가공시설인 ‘안성마춤푸드센터’에서 안성 지역의 한우 부산물을 활용한 가공 식품을 제조하고 있다. 안성마춤푸드센터는 농림축산식품부가 주관하는 향토산업육성사업자에 선정된 후 경기도와 안성시가 공동 투자해 2012년 8월에 세운 식품가공시설이다. 이곳에서 제조된 식품은 ‘착한들’ 브랜드 상표를 달고 유통된다.
- 푸드센터 설립 취지가 궁금합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한우 가격이 폭락한 바 있습니다. 고삼면 같은 농외소득 없이 축산경제가 지역 경제를 지탱하는 지역은 그야말로 난리가 났습니다. 송아지 사료값을 내고 나면 남는 돈이 없는 수준이었죠. 이 지역의 축산업이 무너지면 농협이 무너지고, 지역이 황폐화될 위기였습니다. 한우 가격을 지지할 방안을 모색하던 과정에서 ‘뼈, 우족, 머리, 내장 같은 부산물을 가공해서 축산 농가의 소득을 보전하자’는 의견이 제시됐습니다. 1차 농산물의 가격 등락폭을 가공식품이 상쇄해주는 효과가 있거든요. 일각에서는 ‘파우치형 곰탕을 누가 사 먹냐’ 비웃었지만 향토산업육성사업자로 선정돼 사업을 추진하게 됐습니다.”
- 착한들은 어떤 브랜드인가요.
“고삼농협은 친환경 농업의 발상지입니다. 1997년 정부가 친환경 농업법을 제정하기 전인 1994년부터 친환경 농법을 도입했습니다. 논에 오리를 풀어서 잡초와 해충 제거하게 했죠. 화학비료를 많이 쓴 땅에서 생산된 농작물을 사람이 먹으면 좋을 리 없습니다. 친환경 농법은 토양과 사람 모두에게 좋습니다. 사람과 자연 모두에게 좋은 식품이라는 뜻에서 ‘착한들’이라는 이름을 지었습니다. 착한들 브랜드 제품의 모든 원물은 국산입니다. 고기나 부산물은 안성의 9개 지역 농협이 공동으로 조직한 ‘안성마춤농협’에서 인증한 한우만 사용했습니다.”
- 어떤 제품을 제조하고 있나요.
“푸드센터는 총 2개의 공장을 운영하고 있는데요. 제1공장에서는 곰탕과 냉면육수, 피클 등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2022년 완공된 제2공장에서는 한우미역국, 한우버섯육개장, 한우사골선지해장국을 생산 중입니다.”
◇우유처럼 뽀얀 육수의 비밀
안성마춤푸드센터 공장에 들어서면 진하고 구수한 육향이 코를 찌른다. 큰 솥에서 사골을 끓이며 나는 향이다. 사골을 끓이는 큰 솥을 ‘추출기’라고 하는데, 푸드센터에서는 1공장과 2공장을 합쳐 총 5대의 추출기를 가동한다. 매일 적게는 3톤 많게는 6톤의 한우 부산물이 추출기에 투입돼 맛있는 가공식품으로 재탄생한다. 푸드센터 설립 당시 30톤에 불과했던 농축산물 매입량은 지난해 769톤을 기록했다. 10년 간 25배 이상 증가한 것이다.
매일 500g 제품 기준으로 3만봉의 가공식품이 안성마춤푸드센터에서 생산된다. 최고 인기 상품은 ‘진한 사골 곰탕’이다. 최소 9시간에서 11시간 우린 곰탕은 뽀얀 빛깔을 띤다.
- 곰탕 제조과정이 궁금합니다.
“매입한 통뼈를 파쇄한 후 2차례에 걸쳐 핏물을 뺍니다. 핏물이 잡내의 원흉이기 때문에 이 공정에서 맛이 결정됩니다. 아주 중요하죠. 핏물 빼는 데만 10시간 가까이 소요됩니다. 피를 완전히 제거한 후에 추출기에서 9~11시간 동안 국물을 끓입니다. 진하게 우려낸 국물은 ‘유수분리기’로 이동해 기름을 제거하는 공정을 거칩니다. 기름을 제거한 후 농축기로 옮겨져 농도를 균일하게 맞추는 작업을 진행합니다. 이 다음 공정이 아주 중요합니다. ‘유화’ 공정이라고 하는데요. 국물을 고압균질기에 투입해 높은 압력으로 사골 기름을 눈에 보이지 않는 수준으로 쪼갠 후 물에 섞는 작업입니다. 뽀얀 국물 색의 비결이죠. 이후 파우치에 포장하고, 엑스레이 검출기를 통과시켜서 이물질을 검사한 후 유통 준비를 합니다. 냉장제품의 경우 살균 및 냉각 작업을, 냉동 제품의 경우 급속 냉각 작업을 진행하죠. 이후 파우치 표면의 물기를 제거하고 박스에 포장합니다.”
- 공장을 운영하며 주안점을 두는 것은요.
“직원의 안전이 최우선입니다. 매일 아침 직원들을 한 자리에 모아서 가볍게 체조를 하면서 그날의 생산 목표를 공지하고 안전 교육을 실시합니다. 공장에 뜨거운 육수가 있으니 안전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항시 주의해야 합니다. 공장에서 근무하는 직원은 모두 팀으로 일합니다. 혼자 근무하면 비상사태 발생 시 대응할 수가 없으니까요.”
- 식품 제조라는 특성 때문에 신경 써야 할 게 많을 것 같습니다.
“제조 능력을 보증하는 인증과 안전 인증을 확보했습니다. 가장 자랑할만한 것은 국제 식품 안전 시스템(FSSC22000) 인증을 받은 것입니다. 현존하는 식품 시스템 인증의 가장 상위버전이라고 생각하면 되는데요. 이 인증이 있으면 수출할 때 위생 심사가 면제됩니다. 당연히 식품안전관리체계(HACCP) 인증도 획득했고요. 농림축산식품부로부터 전통식품 인증도 받았습니다. 국산 농수산물을 주원료로 하는 제품에 정부가 품질을 보증하는 인증으로, 규격이 까다로운 편인데요. 사골곰탕 제품으로 받은 곳은 저희가 유일무이합니다.”
◇작은 고추가 맵다
고삼농협은 ‘작은 고추가 맵다’는 사실을 몸소 보여주고 있다. 지난해 푸드센터 사업부는 15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착한들 브랜드 론칭 첫 해 2억2800만여 원에서 무려 66배 이상 뛴 것이다. 국경의 문턱도 넘었다. 착한들 제품은 한국을 넘어 해외 곳곳에 수출되고 있다.
- 제품들은 어디 유통되고 있나요.
“전국 500곳의 하나로마트와 대형마트, 쿠팡과 마켓컬리 같은 온라인 플랫폼에서 판매하고 있습니다. 코스트코에도 입점했어요. 전국 수천 곳의 학교와 여의도와 강남 성모병원 같은 대형 병원에도 곰탕을 납품하고 있습니다. 수출 사업도 합니다. 2014년 미얀마를 시작으로 필리핀, 베트남, 일본, 싱가포르, 홍콩 등 아시아 주요 국가에 착한들 제품을 수출하고 있습니다. 기념비적인 기억도 있어요.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때 한국 국가대표 선수촌에 곰탕을 납품했습니다. 우리나라 선수단에게 힘을 줄 수 있어 뿌듯했죠.”
- 임기 9년 차 소회는요.
“조합원과 직원들에게 감사합니다. 인구가 2100여명에 불과한데 다른 농협에 합병되지 않고 되레 성장하고 있는 비결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분들에게 베푸는 일은 줄일 수가 없어요. 고령의 조합원이 추가 출자를 하겠다고 장롱에 모아둔 돈뭉치를 건넸던 날엔 눈자위가 시큰해지는 걸 느꼈죠. 작은 덩치가 오히려 장점이 되기도 합니다. 큰 농협들이 할 수 없는 사업을 많이 시도할 수 있거든요. 그렇다보니 협동조합을 연구하는 기관에서도 고삼농협을 예의주시 한다고 합니다.”
- 앞으로의 계획은요.
“사업적으로는 연매출 300억원을 달성하고 싶습니다. 1공장과 2공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매출 최대치가 각각 150억원이거든요. 전국 하나로마트에서 유통되는 곰탕의 3분의 1이 착한들 제품인데요. 이 비중을 50% 이상 늘리는 게 제 바람입니다. 조합원들이 판매 걱정 없이 마음껏 농사할 수 있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진은혜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