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 목련’ 카터 여사…“공직자로서의 영부인” 롤모델 [특파원 리포트]
■"강철 목련"(steel magnolia).
96세의 일기로 별세한 로잘린 카터 전 영부인을 부르는 별명입니다. 매그놀리아(목련)는 남부 지방에서 자생하는 꽃나무로, 우리나라의 목련과는 조금 다르지만 부드럽고 우아한 꽃입니다. 로잘린 카터의 출신이 조지아주, 남부라는 점을 빗대 남부의 꽃인 매그놀리아라는 별명이 지어졌는데, 겉보기와는 달리 로잘린 카터 영부인은 강인한 정치적 동반자로서의 영부인의 역할을 정립했습니다. 우리 말로는 '외유내강' 영부인이라는 별명인 셈입니다.
로잘린 카터의 별세 소식에 미국 정가는 물론 언론들의 추모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로잘린 카터가 현재 미국인들이 생각하는 '영부인의 역할'을 정립했다는 평가 때문입니다.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은 로잘린에 대해 “로잘린은 내가 성취한 모든 것에서 나와 동등한 파트너였다”, "그녀와 결혼한 것은 내 인생의 정점이었다"고 했습니다.
■여성의 역할 변화하던 시기 '영부인' 역할 정립
로잘린 카터가 영부인의 자리에 올랐을 때는 사회 각계 각층에서 여성의 역할이 변화하던 시기였습니다. 가정을 돌보는 일에 충실하고 아이를 키우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여성의 역할'이었던 시기에서 여성의 사회 활동이 늘어나던 시기. 그만큼 여성의 사회적 진출에 대한 비아냥과 뒷말도 무성했습니다. 세칭 '암탉이 울면 나라가 망한다'는 말이 적지 않던 때였습니다.
로잘린 카터는 전임자 중 하나인 포드 대통령의 영부인 베티 포드의 조언을 마음에 새겼다고 합니다.
"무슨 일을 하든 비난 받을 테니 하고 싶은 일을 하세요."
로잘린 카터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백악관에서 열린 취임식 파티에 낡은 드레스를 꺼내입은 일이었습니다.
1977년 대통령 취임식에서 로잘린 카터는 새로운 드레스를 맞추는 대신, 1971년 남편이 조지아 주지사에 취임할 때 입었던 드레스를 꺼내입었습니다. 영부인이 입는 옷이 시장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 지 아느냐는 세간의 혹평에도 로잘린 카터의 메시지는 '검소함'이었고, 이 일화는 지금까지도 회자될 정돕니다.
검소함을 첫번째 메시지로 장착했던 그녀는 "영부인이 뭘 입었는 지 신경쓰지 말라"는 무언의 표현에 이어 영부인 사무실에 처음으로 대통령 비서실장과 동등한 급여와 직위를 가진 영부인 비서실장을 채용했습니다. 영부인 사무실에 있는 직원들은 숨은 그림자여야 한다는 인식에서 벗어나, 대통령을 보좌하는 사람들과 동등한 능력을 가진 이들을 채용해 "제대로 된 영부인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조치였습니다. 이후 영부인 사무실에 있는 정규직 직위는 20%가 증가했습니다. 이어 로잘린은 국무회의에 참석한 첫번째 영부인이 됐고, 카터 대통령이 국가안보회의 브리핑을 받을 때도 종종 동석했습니다. (역시나 '암탉 논쟁'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이후 로잘린은 취임 첫 해, 남편을 대신해 자메이카, 코스타리카 등 중남미 7개국을 홀로 순방했고 각종 현안을 협의했습니다. 1978년 안와르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을과 배긴 이스라엘 총리를 초청해 캠프 데이비드에서 그 유명한 중동 평화회담을 열도록 설득한 사람도 영부인이었습니다.
■정신건강과 간병 문제를 양지에 올려놓은 선구자
로잘린 카터의 가장 큰 업적은 모두가 쉬쉬하던 정신건강 문제를 양지에 내놓았다는 겁니다. 당시 미국 역시 우울증 같은 마음의 병으로 병원에서 상담을 받는 것을 부끄럽게 여겼고, 보험 급여조차 되지 않았습니다. 로잘린 카터는 스스로 의회에서 자신의 조울증을 고백하며(엘리노어 루즈벨트에 이어 2번째), 마음의 병을 어떻게 치료해야 하는 지, 미국 정부가 이들을 위해 왜 예산을 써야 하는 지를 증언한 영부인이었습니다.
로잘린은 정신 질환이 있는 사람들에 대한 낙인을 줄이고 정신 건강 치료에 대한 평등과 접근성을 위한 투쟁에 평생을 바쳤고, 대통령 직속 정신건강위원의 명예 의장으로 활동하며 죽을 때까지 '정신건강의 중요성'을 널리 알렸습니다.
로잘린이 일생을 바친 두번째 과업은 간병 문제였습니다.
가족의 돌봄에만 의존하는 미국의 간병인들과 만난 로잘린은 호스피스 즉, 간병 문제의 중요성을 실감했고, 이후 호스피스를 정책적으로 지원하는 일에 앞장섰습니다. 특히 장애와 질병을 안고 살아가는 가족을 돌봐야 하는 이들의 어려움을 직접 듣고, 이들을 돕기 위한 정책적 실현으로 전문 간병인 제도를 적극 지지하기도 했습니다.
■역대 영부인들의 네트워크 만든 로잘린 카터... '정책적 노력' 뒷받침
여기에는 전현직 영부인들과의 모임도 크게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일례로 카터 대통령이 레이건 대통령에게 선거에서 패하자 로잘린 카터는 재임 기간 추구했던 "정신건강을 위한 법안"이 물거품이 되고 예산이 사라질 것을 우려했습니다. 로잘린은 그러나 뒤에서 욕하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들지 않았습니다. 낸시 레이건 여사와 만나 정신건강을 위한 법안과 예산 지원을 당부했고, 레이건 여사 역시 이에 동조해 해당 법안은 레이건 행정부에서 통과돼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우울증, 조울증을 앓는 이들에게 처음으로 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게 한 법안입니다.
공직자로서의 영부인 롤모델로 불리는 로잘린 카터.
오바마 대통령의 영부인 미셸 오바마는 로잘린 카터 여사를 이렇게 추모했습니다.
영부인이 되기 위한 지침서나 규칙 같은 건 없다는 걸 금방 알게 됩니다.
엄밀히 말하면 공식적인 직책도 아닙니다.
어떻게 하라는 말과 무언의 기대가 있기는 하지만,
영부인의 역할은 주로 영부인 스스로의 열정에 형성됩니다.
....
로잘린 카터의 삶은, 우리가 남기는 유산이
우리가 받은 상이나 영예가 아니라
우리가 감동을 준 삶으로 측정된다는 것을 상기시켜 줍니다.
- 미셸 오바마 (@MichelleObama) 11월 19일,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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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양순 기자 (ysooni@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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