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이냐고요?” 탕후루 킬러 이현진의 ‘근거 있는’ 자신감[인터뷰]

차갑고 잔혹한 얼굴은 쉽게 잊히지 않는다. ‘조각도시’ 속 이현진은 탕후루를 씹으며 등장해 아무렇지 않게 사람을 죽인다. 그 얼굴이 남긴 인상만큼이나 강렬한 것은, 그 얼굴을 만들어낸 배우 이현진의 태도였다. 화면 밖에서 만난 그는 감정을 또렷하게 지닌, 차분한 패기의 배우였다.
이현진은 지난 18일 서울 중구 경향신문 사옥에서 스포츠경향과 만나 디즈니+ 오리지널 ‘조각도시’ 공개 이후의 반응과 청리라는 캐릭터를 만들어가기까지의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작품 공개 이후 가장 많이 들은 말은 다름 아닌 “못 알아보겠다”는 반응이었다.
“저를 잘 아는 분들도 처음엔 제가 나온 줄 몰랐다고 하더라고요. 중국 친구들까지 ‘이거 너 맞냐’고 연락이 와서, 그 반응이 오히려 재밌었어요.”

‘조각도시’는 평범한 삶을 살던 태중(지창욱 분)이 억울한 범죄에 휘말린 뒤, 모든 사건이 요한(도경수 분)에 의해 계획됐음을 알게 되며 복수를 실행하는 액션 드라마다. 이현진은 극 중 요한의 곁에서 임무를 수행하는 킬러 청리 역을 맡았다. 등장 분량은 길지 않지만, 청리는 단숨에 극의 공기를 바꾸며 강렬한 존재감을 남긴다.
이 강렬함은 우연이 아니었다. 청리의 첫인상은 철저하게 계산된 결과였다. 이현진은 캐릭터를 준비하며 가장 먼저 ‘기존의 이현진’을 지우는 데서 출발했다. 스타일링 역시 수차례의 시행착오를 거쳤다.
“제가 원래 눈도 동그랗고 인상이 부드러운 편이잖아요. 그래서 처음부터 세 보이게 가자는 방향이었어요. 주근깨를 더하고 화장도 거의 안 했고요. 의상도 터미네이터처럼 각 잡힌 스타일부터 캐주얼, 화려한 명품 스타일까지 다 해봤어요. 그런데 계속 ‘이건 아닌 것 같다’는 이야기가 나왔고, 결국 감독님이 ‘힙한 느낌이 맞다’고 정리해주셨어요.”

청리는 오디션을 통해 얻은 역할이었다. 액션이 중심이 되는 캐릭터였고, 이현진에게는 첫 액션 도전이기도 했다. 그만큼 준비 과정은 절실했다. 무엇보다 중요하게 붙잡았던 건 ‘가짜처럼 보이지 않는 액션’이었다.
“나중에 찾아보니까 제가 인터뷰에서 계속 액션을 하고 싶다고 말해왔더라고요. 그런데도 안 시켜주시길래, 그냥 제가 먼저 움직였어요. 그렇게 들어간 작품인데, 연습할 때 보니까 제가 봐도 춤추는 것처럼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정말 미친 듯이 연습했어요.”
청리의 살벌함은 감정을 억누른 결과가 아닌, 행동에 집중한 선택의 결과였다. 또한 이현진은 청리를 단순히 ‘감정이 없는 인물’로 단정 짓지 않았다.
“사람을 죽일 때 즐거워하는 것도 하나의 감정이라고 생각했어요. 오히려 그게 청리의 방식인 거고, 더 그 캐릭터의 잔혹성을 나타낼 수 있을 것 같았아요. 그래서 일부러 감정을 절제해야겠다고 생각하진 않았어요. 그냥 ‘청리라면 어떻게 행동할까’를 계속 고민했어요.”
‘조각도시’를 보다 보면 이현진의 유창한 중국어 실력이 눈에 띈다. 그는 2006년 가족들과 중국으로 이주해 현지에서 생활해왔다. 그렇기에 중국어는 이현진에게 분명한 무기였다. ‘조각도시’ 속 중국 킬러 설정은 원래 존재했지만, 그는 오디션 과정에서 자신의 강점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제가 중국어를 완벽하게 소화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대사도 청리다운 말투로 직접 고쳤고요. ‘중국어를 이렇게 잘할 수 있는 건 나밖에 없다’는 자부심으로 도전했어요. 그 결과인 건지, 중국 SNS에 ‘중국 사람이냐’는 댓글이 달리더라고요. 현지인들한테까지 인정받은 게 뿌듯했어요.”

‘조각도시’는 이현진의 필모그래피에서 분명한 기준점이 됐다. 이현진은 그 변화가 오디션 현장에서도 느껴졌다고 말했다.
“요즘 오디션에 가면 ‘조각도시 찍으셨네요?’라는 말을 많이 들어요. 어떤 분은 바로 ‘청리’라고 부르시기도 하고요. 작품이 잘 됐다는 게 실감이 가더라고요.”
특정 캐릭터로 기억되는 것에 대한 부담은 없다고 했다. 오히려 지금의 자신에게는 필요한 과정이라고 봤다.
“그만큼 임팩트가 있었다는 거니까요. 선배 배우들께서도 ‘기억되는 캐릭터가 있다는 건 잘했다는 증거’라고 말씀해주시더라고요. 오히려 기억에 안 남는다면 그게 더 제가 흐릿했다는 거잖아요.”
잔혹한 얼굴의 청리와, 그 이면에 자리한 이현진의 열정. ‘조각도시’는 이현진이라는 배우의 장점을 또렷하게 드러낸 작품이다. 신인으로서 들뜰 수도 있는 시기지만, 그는 조급해하지 않고 차분히 다음을 준비하고 있었다.
“제가 해보지 않은 역할이면 뭐든 도전해보고 싶어요. 액션도 또 하고 싶고, 로맨스도 해보고 싶어요. 끊임없이 도전하는 배우로 남고 싶어요.”
이민주 기자 leem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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