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악부 첫 산문집 신영인 수필가 ‘페이스트리’

“나는 언젠가 얇게 펼친 반죽 위에 편지를 쓰고 싶다. 달걀 하나를 곱게 풀어 붓을 적신 뒤에 당신에게, 로 시작하는 편지를 적어 나갈 것이다. 달걀로 쓰는 문장은 내게도 보이지 않아 나는 문득 용기가 날지도 모르겠다. 몇 번이나 첫 장을 구겨버리고 나서야 봉투에 넣었던 손 편지들처럼 지울 수도 다시 쓸 수도 없으니 두서없이 서성대는 문장들과 물잔 엎지르듯 쏟아버린 속마음과 오랫동안 나 자신에게도 감추었던 비밀이 적힐지도 모르겠다. 밀지(密紙)는 밀지(密旨)가 된다. (중략) 운이 좋다면 당신은 따뜻할 때 이 편지를 받을 수 있다. 나는 이 빵이 편지라는 사실을 말하지 말아야지.(후략)”(수필 ‘편지2’ 일부)
수학도에서 성악가로 성악가에서 제빵사로 이제는 수필가로, 독특한 이력을 지닌 작가의 첫 산문집이 나왔다.
신영인 수필가의 ‘페이스트리’로, 창원지역 출판사인 뜻있는도서출판의 임프린트(현대문학 브랜드) 사유악부가 선보이는 첫 산문선이다.
‘페이스트리’는 갓 오븐에서 나와 따끈따끈한 식빵을 결 따라 찢어 먹다 보면 어느새 바닥나는 것처럼 훌훌 읽히는 산문집이다.
세종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저자는 지난해 ‘시와 반시’ 에세이스트 공모에 당선돼 문단에 나온 신예 수필가다. 본격적으로 글을 쓴 기간은 길지 않지만, 따스하고 고요한 문체가 매력적이다.
“모두가 떠난 주방에서 몰래 새로운 빵을 연습하거나 글을 써 내려갈 때마다 나는 유대인 작가 프레드릭 모턴을 떠올렸다. 나치를 피해 제빵사로 숨어지내던 그가 감당해야 했을 두려움을 느끼면서, 서늘하도록 적막한 주방에서 홀로 빵을 빚었다. 잘못된 선택으로 돈과 집마저 모두 잃고 병들었을 때 다시 살아보자고 선 이곳에서 빵은 나를 먹였고 살렸다. 반죽을 오븐에 넣고 한숨 돌릴 때나 숙성을 기다리다 짬이 나면 책을 읽었다. 그곳에서만 허락된 한정된 자유에 숨을 쉬며 제빵의 정교함에 기대어 산 시간, 밀가루 반죽이 늘어 붙은 책들에게 나는 40대의 목숨을 빚졌다.”(저자의 말)
저자는 지금까지 살아오며, 겪은 자신의 은밀한 약점까지 스스럼없이 고백하며 이웃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놓치지 않는다.
추천사를 쓴 손음 시인(웹진 문예지 ‘같이가는 기분’ 발행인)은 “그녀는 이상하고 아름다운 문장을 남긴다 이상하고 아름다운 빵을 굽는다 시인가? 산문인가? 사이에서 그녀는 무척 예민한 문장을 남긴다. 지독히 외롭고 지독히 따뜻한 담벼락 같은, 날벼락 같은”이라며 작가의 첫 산문집을 반겼다.
편집을 맡은 성윤석 시인은 이 책에 대해 “신영인의 문장은 편지로 읽히기도 하고 한 편의 시로 읽히기도 한다. 어떤 글은 잘 쓴 산문으로 다가오기도 하고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짧은 소설로도 남는다”며 “한 편 한 편마다 살갑다. 애틋하다. 다정하다. 삭막하고 건조한 사막 같은 현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감동과 위로와 나란히 걷는 유대감을 줄 것”이라고 소개했다.
사유악부. 168쪽. 1만 7000원.
백지영기자 bjy@gnnews.co.kr

신영인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