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ST, 5000억원대 치매치료제 기술 수출…출연연 역대 최대 규모
과학기술 분야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의 기술 수출 사례 중 역대 최대 규모의 계약이 체결됐다. 매출에 따라 추가로 받는 '매출 로열티'를 제외하고도 계약 규모가 5037억원에 달한다. 신약 개발 전주기에 걸친 정부와 출연연의 기술 사업화 지원 전략의 결과이라는 점에서 정부, 출연연 협력의 모범사례가 될 것으로 보인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기정통부)는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창업기업인 '큐어버스'가 16일 이탈리아 제약사 '안젤리니파마'와 총 3억7000만달러(5037억원)의 기술 수출 계약을 체결했다고 21일 밝혔다.
글로벌 제약회사인 안젤리니파마는 뇌신경 질환 관련 신약 파이프라인에 집중하고 있는 회사다. SK바이오팜의 뇌전증 약물에 대한 유럽 판권을 보유해 판매하고 있다.
큐어버스는 올해 9월 서울대에서 임상 1상에 착수한 'CV-01(씨브이-공일)' 개발 기술을 안젤리니파마에 이전했다. 한국, 중국을 제외한 글로벌 시장을 대상으로 한 개발, 판매 등을 할 수 있는 권리를 모두 이전했다.
CV-01은 박기덕 KIST 책임연구원(KIST 뇌과학연구본부 뇌질환극복연구센터장) 등 연구진이 2014년부터 개발한 차세대 치매치료제다. 최근 글로벌 제약회사들은 '뇌염증' 및 '산화성 스트레스'가 치매의 근원일 가능성에 주목해 이와 관련된 차세대 기전의 치료제 개발에 적극 나서고 있다. 문제는 이같은 치료제가 독성이나 부작용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이다.
KIST 연구팀은 'Keap1/Nrf2 시그널 경로'를 통해 신경염증 반응을 억제함으로써 뇌 신경회로 손상을 방지하는 방식으로 작동하는 치매치료제 개발에 집중했다. Keap1/Nrf2 시그널 경로란 산화성 스트레스 및 염증에 대한 생체 내 대표적인 방어 기전으로 일종의 면역체계 역할을 한다. 하지만 고령화나 특정 질병에 걸리면 이 기전이 작동하지 않고 치매를 유발할 수 있다.
연구팀은 다년 간의 연구 결과 Keap1/Nrf2 시그널 경로가 다시 작동하도록 '스위치'를 켜주는 역할을 하는 CV-01를 개발했다. 신약 상용화에 성공하면 이 기전을 이용한 세계 최초의 치매치료제가 된다. 또 파킨슨병, 뇌전증 등 뇌 신경 손상이 원인인 다양한 뇌신경계 질환에도 적용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
CV-01의 장점은 선택적으로 작동하고 경구형이라는 점이다. 박 연구원은 "CV-01은 다른 타깃이 아니라 특정 타깃에만 선택적으로 결합하기 때문에 뇌혈관부종 등 부작용과 독성이 적다"면서 "CV-01은 경구용으로 개발돼 병원을 방문해 기존 주사 치료제를 투여받는 번거로움을 없앨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자가에서 손쉽게 주기적으로 복용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또 저분자 화합물 약물이어서 뇌혈관장벽 투과가 용이해 뇌 등으로 약물 침투가 빠르다는 장점도 있다. 치매의 발병 전 예방 용법으로도 활용이 가능한 것도 특징이다. 고령화의 사회적 비용을 낮추는 획기적 약물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에 체결된 기술료는 개발 단계별 '마일스톤'이 포함된 금액이다. 마일스톤이란 계약금과 함께 신약개발 단계 성공에 따라 기술료를 받는 계약 방식을 뜻한다. 임상 단계를 각각 통과할 때마다 계약금을 받고 상용화에 성공하면 또 나머지를 받는다. KIST는 기술료의 20%를 받는다.
이같은 계약은 신약 개발 기술을 수출하는 보편적인 계약 방식이다. 신약을 상용화하기 위해서는 기초연구, 전임상시험, 임상시험 1~3상을 거쳐야한다. 대부분의 제약회사나 연구기관은 신약개발의 모든 단계를 독자적으로 진행하기보다는 신약을 개발하는 도중에 축적된 고도의 기술 및 물질에 대한 권리를 다른 기업에 이전하며 수익을 창출한다.
조성진 큐어버스 대표는 "5년 정도면 CV-01의 상용화가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면서 “CV-01은 치매, 뇌전증, 파킨슨병 등과 뇌신경계 질환에 획기적인 잠재력을 지니고 있어 치매 등 뇌질환으로 고통받는 환자와 그 가족들에게 희소식이 될 것으로 전망한다”라고 말했다.
KIST는 2016~2021년 국가과학기술연구회 미래선도형 융합연구단'의 지원을 받아 신약 후보물질을 개발했다. 이후 2021~2024년 진행되는 '바이오스타 사업'의 지원으로 큐어버스가 창업됐다. 바이오스타 사업이란 바이오 기업 출신 연구자와 KIST 연구자 및 기술성과를 매칭해 기술창업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큐어버스는 81억원의 시리즈A 투자를 유치했다.
오상록 KIST 원장은 “KIST 연구자가 개발한 기술이 첨단바이오 스타트업 창업으로 이어지고, 글로벌 제약시장에 진출한 훌륭한 사례가 되었다”라면서 “앞으로도 게임체인저가 될 세계적 원천기술 확보에 힘쓰고 국민이 체감할 만큼 파급효과가 큰 기술이전 성과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황판식 과기정통부 연구개발정책실장은 “그간 정부의 꾸준한 바이오 분야 연구개발 지원에 힘입어, 최근 출연연의 대형 바이오 기술이전 성과들이 차례로 나타나고 있다”라면서 “출연연과 대학의 우수 연구성과를 바이오 기업의 임상과 사업화까지 연계하는 오픈이노베이션 전략을 중심에 두고 국산 블록버스터 신약 개발을 위한 기술사업화 정책과 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이채린 기자 rini11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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