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에서 찍고 마산에서 배포된 6월 항쟁 전단지
"모이자! 3.15의거탑으로! 행동하는 국민 속에 박종철은 부활한다!"
1987년 6월 10일 창원시 마산합포구 서성동 3.15의거기념탑 앞에서 계획된 '고문살인 은폐 규탄·호헌철폐 국민대회' 개최 소식을 담은 전단 속 한 대목이다. 전단을 본 시민들이 하나 둘 거리로 모여들었다. 이들은 박종철 군 고문치사 사건 조작 문제를 규탄했다. 호헌철폐, 독재타도를 외치며 거리행진을 벌였다.
전단 내용에는 그해 6월 시민들이 품은 분노가 고스란히 녹아있다. '억울하게 고문 살해된 박종철 군의 원혼이 채 잠들기도 전에 그를 또 한 번 죽이는 사건축소 은폐 조작 만행이 벌어졌다'며 함께 행동하자는 글귀가 또렷하다. '스스로 민주 권리를 쟁취하고자 하는 국민 행동이 있어야 박 군이 되살아날 수 있다'는 문구도 확인된다. 집회 참석 때 소형 태극기를 지참해달라는 안내 사항도 있다.
당시 집회는 박종철 군 고문살인 은폐조작규탄 범국민대회 준비위원회가 주최하고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가 주관했다. 집회 홍보 전단을 인쇄해 주변에 뿌린 사람은 박영주 경남대박물관 비상임연구원이다. 그는 국민운동본부에서 실무 업무를 맡고 있었다. 국민운동본부가 제작한 전단을 집회 시작 이틀 전쯤 대구지역 인쇄처에서 뽑았다.
박 연구원은 "마산에서는 인쇄해주겠다는 곳이 없어 지인을 통해 알게 된 곳에 의뢰했다"며 "1t 트럭 바닥에 1단으로 모두 덮을 분량으로 뽑아 민주화 운동을 하는 사람 등과 함께 지역 학교와 노동 현장에 각각 배포했다"고 말했다.
전반적인 전단 속 구성은 운동본부 인사가 했지만, 여기에 집회 집결지를 3.15의거기념탑으로 적은 것은 박 연구원이다. 그러나 집회는 계획과 달리 기념탑에서 열리지 못했다. 집회 사실을 파악한 경찰이 기념탑 주위를 봉쇄했다. 결국 주최 측은 주변 남성로 일대에서 도로변에 모여든 시민 200여 명과 함께 애국가를 합창하며 행사를 시작했다. '더 이상 못 속겠다, 거짓 정권 물러가라'고 적힌 펼침막을 폈고, 유인물과 소형 태극기 등을 주위 시민, 지나가는 차량 운전자에 나눠줬다. 호헌철폐, 독재타도를 외치면서 시위를 진행했다. 그 과정에서 주최 측 인사들이 연행됐다.
당시 어시장 지하도 근처에는 미리 조직된 학생과 노동자 200여 명이 집결했다. 이들은 차도를 점거해 시위를 벌였다. 또 시위대는 마산수출자유지역 후문으로도 향했다.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을 강요하던 기업체들을 향해 "쪽바리는 물러가라", "노동 3권 보장하라"고 외쳤다. 철제 출입문을 밀어 넘어뜨리기도 했다. 맞은편에 있던 양덕파출소를 공격했다. 파출소 안에 걸려있던 전두환 액자를 떼어내 사진을 불태워버렸다.
박 연구원은 "6월 항쟁 결과로 헌법이 개정됐고 87년 체제가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며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 사회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민주주의는 썩 발전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사회 이끄는 것은 민주주의가 부분적으로 퇴색했고 사회적 합의가 거꾸로 후퇴하기도 했다"며 "미래를 위해서라도 민주주의를 발전시킬 만한 길과 민주주의 가치를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최석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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