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개시명령에도 꿈쩍 않는 전공의들… 대화 물꼬는 텄지만 장기전 우려

김표향 2024. 2. 22.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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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직서 제출 9,275명, 미근무 8,024명 
업무개시명령 위반 회피 '위장근무'도
복지부·의협 23일 생방송 TV토론 합의
정부의 의대 증원 방침에 반대하는 전공의 집단 진료 거부 사태가 사흘째 이어진 22일 서울 시내 한 종합병원에서 의료진과 환자들이 병동을 오가고 있다. 뉴스1

의과대학 입학정원 확대에 반발해 사직서를 제출한 전공의(인턴·레지던트) 수가 1만 명에 육박했다. 실제로 병원에 출근하지 않은 인원도 8,000명이 넘는다. 급증하는 환자 피해와 국민 여론 악화, 범정부적 강경 대응에도 전공의들은 꿈쩍도 하지 않는 분위기다. 그나마 보건복지부와 대한의사협회(의협)가 23일 TV토론에 합의하며 대화 물꼬는 텄지만, 벼랑 끝으로 치달은 의정 갈등이 단시간에 봉합되긴 쉽지 않아 보인다.


전공의 5명 중 3명 환자 떠났다

22일 복지부에 따르면 전체 전공의 1만3,000명 중 95%가 일하는 주요 100개 수련병원을 점검한 결과 전날까지 9,275명이 사직서를 제출한 것으로 파악됐다. 소속 전공의의 74.4% 규모로 하루 만에 459명 늘었다. 미근무자는 211명 증가한 8,024명(64.4%)이었다. 전공의 5명 중 3명은 환자를 떠난 셈이다.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가 진료 중단 시점으로 제시한 날짜(20일)가 지나 사직서를 낼 사람은 다 낸 터라 이탈자 증가 폭은 크지 않다. 사직서가 수리된 곳도 아직 없다. 복지부는 현장 점검을 통해 결근이 확인된 6,038명 가운데 이미 업무개시명령을 받은 5,230명을 제외한 808명에게 새로 업무개시명령을 발령했다.

그러나 전공의들은 돌아오지 않고 있다. 업무개시명령을 받고 병원에 복귀해도 일을 하지 않거나 전산망에 접속해 처방 기록만 남겨 두는 식으로 명령 불이행을 회피하는 ‘위장 근무’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의료계 관계자는 “일부는 병원 주변에 머물면서 돌아가는 상황을 예의 주시하거나 정부의 현장 점검에 대응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복지부는 이날 중앙사고수습본부(중수본) 브리핑에서 “일하지 않는다면 업무개시명령을 이행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한다”며 “여러 차례 진행되는 현장 점검 결과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검찰 고발 여부를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국민 정서 악화에 여론전 나선 의사계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정책에 반발한 전공의들의 집단행동 사흘째인 22일 서울 시내의 한 공공병원에 의료연대본부가 작성한 필수·지역·공공의료 확대 촉구 성명서가 걸려 있다. 연합뉴스

의료 공백에 환자 피해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전날 ‘의사 집단행동 피해신고·지원센터’에 신규 접수된 수술 지연, 진료 거절, 예약 취소 등 피해 사례만 57건으로 집계됐다. 센터 운영 첫날인 19일 34건, 20일 58건까지 포함하면 사흘간 150건에 달한다. 정부에 구제를 요청하지 않은 피해는 훨씬 더 많다.

환자 생명을 등한시한 의사들에 대한 비난이 빗발치자 의사계는 본격적으로 여론전에 나서고 있다. 외부 연락을 피했던 박단 대전협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정부가 총선을 앞두고 의료 정책을 정치적으로 이용한다는 의심이 든다”며 “환자들이 걱정되지만 정부가 요구안을 어느 정도 수용해야 병원에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대전협은 △의대 증원 백지화 △의료사고 법적 부담 완화 △명령 전면 철회 및 정부 공식 사과 등 일곱 가지 요구사항을 내놓은 상태다.

의협도 중수본 브리핑에 대응하는 반박성 브리핑을 21일부터 매일 열고 있다. 하지만 의사계의 현실 인식은 국민들과 괴리가 크다. 의대 증원을 압도적으로 찬성하는 여론조사 결과를 어떻게 보느냐는 질문에 주수호 의협 비대위 언론홍보위원장은 “국민에게 의사들 입장을 알리려면 언론이 보도해야 하는데 언론이 의사들 목소리를 안 들어줬기 때문”이라며 언론을 탓했다.


장기전 우려 속 의정 TV토론 성사

박민수 중앙사고수습본부 부본부장(보건복지부 제2차관)이 22일 오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전공의 집단 사직에 대한 정부 대응 방안을 설명하고 있다. 뉴스1

의료계 안팎에선 이번 사태가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다며 우려하고 있다. 정부는 “2,000명 증원도 부족하기 때문에 증원 숫자에 대한 협상은 없을 것”이라며 선을 그은 반면, 의사단체는 줄기차게 “증원 계획 전면 철회”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윤 서울대 의대 교수는 MBC 100분 토론에서 “짧으면 2~3개월, 길면 반년 이상 갈 것 같다”고 내다봤고, 박 위원장도 대전협 회의에서 “1년 이상 갈 수도 있다”며 장기전 의지를 드러냈다. 인턴·레지던트 수련 계약이 종료되는 이달 말이 사태 향방을 가를 분수령이 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다만 지난 6일 의료현안협의체 회의 이후로 끊겼던 의정 간 대화는 물꼬가 트이는 분위기다. 전날 새벽 방송된 MBC 100분 토론에서 유정민 복지부 중수본 전략팀장과 이동욱 의협 경기도의사회장이 토론자로 참석한 데 이어, 23일에는 박민수 복지부 2차관과 김택우 의협 비대위원장이 KBS에서 생방송 토론을 갖기로 했다. 하지만 의료 수요 변화와 의사 공급 구조를 분석한 동일한 연구보고서를 두고도 양측이 정반대로 해석할 만큼 입장 차이가 커서 뚜렷한 성과를 기대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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