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거 부족으로 좀처럼 풀리지 않는 사건을 식물을 이용해 해결하려는 학자들의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가장 연구가 활발한 것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접하는 식물 이끼다.
이끼를 사람의 지문처럼 사용해 범죄를 수사하는 아이디어는 미국에서 고도화됐다. 워싱턴대학교와 필드자연사박물관 공동 연구팀은 2013년 낸 보고서에서 시신 유기 현장 주변의 이끼를 통해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는 과정을 보여줬다.
당시 조사에 참여한 워싱턴대 젠나 마르켈 연구원은 “범죄 수사에 있어 중요한 증거는 일반적으로 지문이나 혈흔, DNA가 언급된다”며 “사실 우리 발밑에 펼쳐진 미세한 이끼도 범행 현장이나 시신 유기 장소를 특정하는 중요한 증거”라고 언급했다.

연구팀은 2013년 시신 유기 현장을 이끼를 통해 특정해 크게 주목받았다. 이 성과를 계기로 연구팀은 과거 150년에 걸친 살인사건을 정밀 조사하고 과학수사에서 이끼의 유용성을 부각한 연구 결과를 지난해 11월 공개했다.
이끼는 풀이 돋아나기 훨씬 전인 대략 4억 년 전 지구에 출현했다. 지의류로 분류되는 이끼는 지구상에서 가장 단순한 구조를 가진 식물로 줄기나 잎, 뿌리, 종자가 없는 대신 주위로부터 수분이나 양분을 직접 흡수한다.
이끼가 범죄 수사의 중요한 증거가 되는 것은 주위 환경에 매우 민감하고, 각 종이 특정 조건에서만 자라기 때문이다. 필드자연사박물관 맷 폰 콜랏 박사는 “이끼는 매우 작아 바위의 틈이나 수관, 풀 아래 같은 곳에 독자적인 미소 서식지(microhabitat)를 형성한다”며 “서식지에 밀집한 이끼의 틈은 대단히 작은 미생물들이 숲과 같은 독자적 커뮤니티를 만드는 데 유용하다”고 설명했다.

박사는 “이끼 조각뿐만 아니라 그곳에 서식하는 미생물의 종류까지 조사하면 용의자가 들른 범행 현장이나 시신 유기 장소를 핀포인트로 특정 가능하다”며 “과거에는 형사나 감식반은 물론 과학자들조차 범행 현장의 이끼를 제대로 조사할 생각조차 못했지만 이제는 상황이 다르다”고 강조했다.
연구팀은 이끼가 범죄 수사에 어떻게 이용돼 왔는지 체계적으로 조사했다. 150년 분량의 문헌을 분석하고 이끼가 범죄 수사에 얼마나 등장했는지 확인했다. 그 결과 지금까지 범죄 수사에서 이끼는 제대로 활용되지 않았고, 가장 오래된 기록은 1929년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부패한 골격 위에 성장한 이끼의 상태에서 사망 시점을 수사관들이 추측한 사례도 있었다.
마르켈 연구원은 “핀란드와 스웨덴, 이탈리아, 중국, 그리고 미국 등지에서 10건의 사례가 보고됐다”며 “각 사건에서 이끼가 범죄의 발생 시기, 장소, 혹은 그 상황에 대한 객관적인 정보를 제공했음을 알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 연구에서는 2011년 벌어진 영아 살해 유기 사건을 중점 들여다봤다”며 “미시간 주 북부에서 케이트라는 이름의 영아가 부친에 살해됐지만 시신이 발견되지 않았는데, 범인의 신발에 붙은 이끼 조각을 이용해 실마리를 찾았다”고 전했다.
콘랏 박사는 2013년 범죄 현장을 직접 찾아 범인의 신발에서 발견된 소재와 일치하는 이끼 서식 장소를 특정했다. 수백 종의 이끼가 서식하고 있었는데, 범인의 신발에 묻은 것과 똑같은 미소 서식지까지 영역을 좁히는 데 성공했다.
학자들의 이런 노력은 범죄 수사에 식물을 이용하는 법의식물학을 더욱 체계화했다. 법의식물학은 그간 실제 범죄 수사에 적용되는 일은 드물었지만 범죄가 갈수록 교묘해지면서 수사관들도 염두에 둘 만큼 부각됐다고 콘랏 박사는 의미를 부여했다.
정이안 기자 anglee@sputnik.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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