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엔 정치 검사만 있는 게 아니다 [뉴스룸에서]
이재명 당선 땐 문재인 전철 우려
개혁은 보통 검사들 마음 얻어야

서초동 어느 사립학교의 전교생은 100명이다. 개교 이후 50년간 전교 회장과 반장 자리는 대체로 교사 말을 잘 듣고 성적 순으로 10등 안쪽 학생이 차지했다. 학교를 인수한 이사장은 성적 순대로 회장과 반장을 뽑아 온 관행을 바꾸겠다고 공언했다. 학생 대부분이 학교 방침에 호응하자 이사장은 자신 있게 물갈이 계획을 밀어붙였다.
일부 학생이 공개적으로 지지 의사를 밝히자 이사장 눈에 들어왔다. 문제는 목소리 큰 학생들의 성적이 대부분 80등 밑이었다는 점이다. 하위권 학생들이 전교 회장과 반장 자리를 차지하자 아이들은 불만을 터뜨렸다. 학교 방침에 반대하진 않았지만 반장 말을 듣지 않았다. 자기보다 훨씬 못한 이들이 의사 결정을 주도하고 지시하는 걸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학교는 성적 순이 아니지만, 학생들은 성적이 아예 무시되는 건 원치 않았다. 결국 새 이사장의 개혁은 실패했고 학교는 한동안 구성원 간 반목으로 혼란에 휩싸였다.
오래전 윤석열을 증오해 온 자칭 '진보 성향' 검사에게 들은 얘기가 요즘 자주 떠오른다. 그는 문재인 정부의 검찰개혁이 왜 실패했는지 분석하다가 가상의 학교 사례에 비유했다. 그때 검찰 구성원 대부분은 특수부 검사들의 끼리끼리 문화와 통제받지 않는 권력에 우려의 시선을 보냈다. 큰 틀에선 검찰개혁에 동의하는 검사가 적지 않았지만 방식이 문제였다.
'윤석열 사단'으로 대표되는 특수부 검사들을 솎아 내는 것까진 좋았는데, 다수 구성원에게 지지받지 못하는 검사들이 그 자리를 차지한 게 문제였다. 묵묵히 자기 자리에서 일해 온 대다수 검사는 설자리가 없었다. 이들은 튈 줄도 몰랐고 정치권에 기웃거리지도 않았고 아부할 줄도 몰랐다. 이들은 윤석열 사단을 싫어했지만, 문재인 정부를 더 싫어했다. 학교 사례를 들려준 그 검사가 말했다. "전교 20~50등 하는 성실하고 평범한 학생들을 반장으로 뽑았다면 그렇게 반발하진 않았을 겁니다. 학생들도 자존심이 있는데 80~100등 하는 반장 말을 제대로 듣겠습니까."
서열화를 말하려는 게 아니다. 잠시 잊었던 보통 검사들 얘기다. 지금 대한민국에는 윤석열 내란죄 사건과 김건희 샤넬백 사건만 있는 게 아니다. 이재명 대장동 수사와 문재인 뇌물 수사만 있었던 게 아니다. 검찰청에는 정치권 주목을 받지 못했을 뿐 보통 사람들에게 너무 중요한 사건이 수도 없이 많다. 보이스피싱과 전세사기, 마약과 딥페이크 범죄가 평범한 검사들에 의해 소리소문 없이 해결되고 있다. 이들을 단죄하기 위해 법정에서 치열하게 다투는 검사도 적지 않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공약을 보면 검찰 대수술은 피할 길이 없어 보인다. 검찰청을 폐지하고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겠다고 한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권한을 대폭 강화하고 검찰의 영장 청구권 독점 규정을 폐지하겠다고 예고했다. 방향이 옳은지는 둘째 치고, 평범한 검사들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검찰개혁은 재차 실패할 수밖에 없다. 특히 일부 정치 검사를 응징하려는 감정에 사로잡히면 당장은 통쾌할지 모르지만 효능감은 순식간에 사라질 거다.
김장하 선생이 말하지 않았나. 우리 사회는 평범한 사람들이 지탱하는 거라고. 검찰청은 정치 검사들이 아니라 평범한 검사들이 지탱하고 있다. 그들의 마음을 얻어야 검찰개혁은 성공한다.
강철원 사회부장 stro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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