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의 실수 아니라 대륙의 공포”...중국서 온 ‘이모님’이 안방 점령한다는데 [방영덕의 디테일]
중국산 로봇청소기 구매 여부를 두고 고민한다는 미용실 사장님. 온라인 쇼핑몰의 장바구니에 담아두기만 한 것이 몇 달째라고 했습니다.
그로부터 또 몇 달이 지난 후 미용실을 들르게 됐습니다. 매장 바닥을 자연스럽게 오가는 로봇청소기를 봤습니다. 고민을 끝내고 산 제품은 중국 브랜드 로보락의 것이었죠.
사장님 왈 “국산 브랜드로 올인원 로봇청소기가 나오길 기다렸는데 너무 늦게 나왔다”며 “그런데 또 막상 나온 제품을 보니 성능 측면에서 영 (중국 제품에) 못 미친다는 생각이 들자 결정 내리기가 쉬웠다”고 말했습니다.
그가 중국산 제품을 택한 이유는 꼭 싼 가격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사실 100만원 가까이 되는 고가 제품을 사려다보니 더 꼼꼼히 성능 등을 따져야했고, 그래서 선택한 것이 중국산 로봇청소기였습니다.
한 수 아래라고만 여겼던 중국 전자제품들이 한국을 맹추격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턱밑까지 따라온 기술력도 있고요. 이미 한국을 추월한 분야도 속속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중국 기업들에 대한 경계심을 감추지 않았는데요.
조 CEO는 지난 6일 기자간담회를 연 자리에서 “중국의 TCL과 하이센스를 보니 상당히 많이 (한국 기술력을) 따라왔다”며 “중국은 이제 폄하할 대상이 아니고 무서워할 대상이다”라고 밝혔습니다.
과거 한국 가전기업들이 이런 때가 있었습니다. 개구리가 올챙이였을 시절이죠.
당시 일본 기업들이 프리미엄 시장에 집중하며 가성비 좋은 제품을 만들지 않는 동안 그 틈새 시장을 비집고 들어가 주도권을 차지한 겁니다. 현재 중국 기업이 딱 그와 같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로봇청소기 시장이 한 예입니다. 가성비로 밀어부쳤던 중국 가전기업들이 어느 틈엔가 고가 프리미엄 제품으로까지 파고 들었습니다. 쿠팡 등 이커머스에도 속속 침투해 유통망을 넓힙니다.
다나와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로봇청소기 시장에서 판매량 기준으로 점유율을 따져본 결과 ▲1위 로보락(중국) 20.1% ▲2위 샤오미(중국) LG전자 17.7% ▲3위 삼성전자 15.5% ▲4위 에코백스(중국) 10.8% ▲5위 드리미(중국) 4.3% 순위였습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최근 다이슨이 영국 현지 직원의 3분의 1에 달하는 1000여명을 감원키로 한 것을 두고 다이슨의 위기를 야기한 것은 다름 아닌 차이슨(차이나+다이슨)이라고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일주일만 써보면 안다”라거나 “여전히 중국 제품은 싼맛에 쓰는 것”이라는 소비자들의 반응이 있습니다. 중국의 부족한 기술력을 지적하는 목소리입니다.
하지만 모자란 기술력을 뛰어넘을 정도의 무자비한 저가 공세에 두손 두발을 다 드는 국내 기업들이 나오고 있어 우려가 커집니다. LCD(액정표시장치) 관련 사업이 대표적입니다.
지난해 6월 삼성디스플레이는 수년간 중국 기업들이 펼친 저가 공세에 경쟁력이 크게 떨어지자 LCD 사업에서 철수했습니다.
LG디스플레이도 2022년 국내에서 TV용 LCD 생산을 중단한 데 이어 최근 중국 광저우 공장 매각 절차를 밟고 있습니다. 중국이 LCD 시장을 장악한 결과입니다.
덩달아 LCD 소재 분야에서도 국내 기업들의 철수는 잇따라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룹 내부에서 LCD 관련 소재를 공급할 곳이 사라진데다 중국과 가격 경쟁을 펼치기엔 수익 악화가 빤히 보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10일 삼성SDI는 편광필름 사업을 중국 우시헝신광전재료유한공사에 1조1210억원에 매각한다고 밝혔습니다. 중국과의 가격 경쟁으로 수익성이 크게 하락해서 입니다.
편광필름은 스마트폰용 화면이나 PC 모니터, TV 화면 등에 탑재돼 선명하고 맑은 화면을 구현하는데 사용되는 핵심 소재입니다.
하지만 최근 수년간 중국기업들이 대량 생산한 편광필름을 저가에 대량 판매하자 가격 경쟁력이 크게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지난해 LG화학이 편광판 및 편광판 소재 사업을 중국 업체에 넘긴 이유도 이와 같습니다.
시장조사업체 DSCC에 따르면 전 세계 디스플레이 생산능력은 지난해부터 2028년까지 연평균 1.4% 증가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LCD는 연평균 1%, OLED는 연평균 4.8% 성장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OLED 생산능력의 경우 중국이 2023년부터 2028년까지 연평균 8%의 성장률을 기록, 한국의 연평균 성장률(2%)보다 4배 빠른 성장세를 보이며 한국을 추월할 것으로 DSCC는 예상했습니다.
LCD 시장을 중국에 내주고 OLED 시장에 집중하고 있는 한국 기업들로서는 앞길이 캄캄할 수밖에요.
특히 디스플레이는 핵심 전자부품으로 OLED와 같은 최첨단 기술까지 중국 중심의 공급망이 형성되면 그 영향력이 어디까지 미칠지 가늠이 잘 되지 않을 정도입니다.
그야말로 급성장 중인 ‘차이나 테크(중국의 첨단산업)’.
반도체 분야를 보더라도 미국이 중국에 대한 수출 규제를 시작한 이후 오히려 반도체 첨단 초미세 공정에서 ‘기술 독립’을 이루는 모습이 역력합니다.
‘제조업 최강국’에서 이제는 ‘신품질 생산력’이란 슬로건을 내걸어 국가 전략 차원에서 육성되다보니 치고 올라오는 속도가 매우 빠르고 매섭습니다.
첨단 기술을 기반으로 나라 경제의 체질을 바꾸고 미국과의 패권 다툼에서 우위를 차지할 생각만 할 뿐입니다.
‘대륙의 실수’란 말을 들어보셨을 겁니다. 가격은 저렴한데 생각보다 뛰어난 품질의 중국 제품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여기엔 기술력이 우리보다 한 수 아래인데 실수로 좋은 품질의 제품을 내놓았다고, 중국 기술력을 얕잡아보는 듯한 뉘앙스가 담겨 있습니다. 대륙의 실수란 말로 중국의 기술력을 희화하하는 동안 우리가 놓친 부분은 무엇일까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며칠 전 생활가전사업부 현장을 찾았다고 합니다. 올해 들어 처음이라고 합니다.
인공지능(AI) 기반 제품·기술 전시 공간을 둘러본 이 회장은 전략 제품별 핵심 기술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이건 우리의 독자 기술인가”, “우리가 얼마나 앞서 있나”, “이 기술을 개발하는 모멘텀이 무엇인가” 등의 송곳 질문을 던진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초격차 기술 리더십을 확보하기 위한 더 많은 고민과 질문들이 필요해 보입니다.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S대 출신 아나운서 정다은 “동서 때문에 시댁 가기 싫어” 동서 누군가 했더니 - 매일경제
- 나라망신, 빨리 자수하라…‘오빠 사랑해’ 낙서 테러 당한 전시작품 - 매일경제
- 터널 속 역주행 차량에 일가족 참변…운전하던 30대 가장 숨져 - 매일경제
- “하루아침에 장애인 됐다”…전등 유리 커버 떨어져 팔 크게 다친 40대 아빠, 관리소장 “우리
- “조카 용돈 3만원 주고 싶은데” 한국은행 ‘3만원권 도입’에 입장은 - 매일경제
- “모니터에 번호 띄워선 감당 못해”…벨 울리는 스타벅스 100개 육박 - 매일경제
- “비행기 빈 좌석에 아기 눕힌 맘충”…불만 터트린 작성자 되레 ‘뭇매’ - 매일경제
- “아버지, 재산 나눠주셔도 된대요” 30억 3형제 물려주면 ‘세금 5.4억’ 줄어들까 - 매일경제
- 프라이팬 들고 “전부 치는 중” 마동석의 추석연휴 근황 - 매일경제
- ‘드디어 넘었다!’ KBO리그, 출범 42년 만에 1000만 관중 시대 ‘활짝’ - MK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