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연금 의무화?… 영세기업 부담, 저조한 수익률 넘을 수 있을까
영세기업 부담, 저조한 수익률은 걸림돌
중소·영세기업, 매년 적립금 내는 것 부담
2%대 낮은 수익률을 높이는 것도 관건
정부·여당이 일시금으로 받던 퇴직금을 월별로 나눠서 지급하는 퇴직연금으로 의무 전환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국민연금 개편만으로는 노후 소득 보장에 한계가 있는 만큼, 부족한 노후 소득을 퇴직연금 제도로 보완한다는 취지다.
17일 당정에 따르면 국민의힘 연금개혁특별위원회 위원장인 박수영 의원은 지난 12일 국회에서 관계 부처와 간담회를 한 뒤 “당정이 가진 복안은 국민연금 개편은 지속가능성에 방점을 찍고, 실질적인 소득대체율 상향 조정은 퇴직금을 연금화해서 아주 두텁게 가져가고자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도 회의에서 “퇴직금을 퇴직연금으로 전환해서 노후에 노동자들이 연금 혜택을 받도록 개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퇴직연금 도입 의무화에 나선 것은 퇴직금보다 퇴직연금이 근로자 퇴직급여를 안전하게 관리할 수 있어서다. 외부 금융회사에 적립해 운용하는 퇴직연금은 기업에 부도가 나는 등 재무 상황이 악화해도 근로자 퇴직급여를 보장할 수 있다. 현재는 노사 합의에 따라 근로자가 일시금으로 퇴직금을 받을지, 퇴직연금을 받을지를 선택할 수 있다. 당정은 퇴직연금 수급 방식을 선택 아닌 의무로 단계적으로 전환한다는 계획이다.
5인 미만 사업장 도입률 11.9%
300인 이상은 91.9%가 제도 채택
“도입 안 하는 게 아니라 못 하는 것”
서둘러 강제하면 역효과 발생 우려도
하지만 퇴직연금 의무화에도 걸림돌은 있다. 영세기업의 금전 부담과 저조한 수익률이 대표적이다. 퇴직연금 제도가 시행된 지 20년이 됐지만, 퇴직연금을 도입한 사업장은 전체의 26.8%(2022년 말 기준)에 불과하다. 10년 전인 2012년(13.4%)과 비교하면 10% 포인트 이상 높아졌지만 2019년(27.5%) 이후 가입률이 계속 떨어지고 있다. ‘퇴직연금 도입률 100%’가 정부의 최종 목표이지만, 쉽지 않은 상황이다. 영세기업의 부담을 낮추고 저조한 수익률을 높이는 등 퇴직연금 제도를 촘촘하게 설계하는 것이 필요하다.
제도 도입을 안 하는 게 아니라 못 하는 중소·영세기업이 많다. 운전자금이 부족한 영세기업들은 매년 일정한 적립금을 외부 금융회사에 적립하는 것을 부담스러워한다. 2022년 말 기준 300인 이상 기업의 91.9%가 퇴직연금을 채택했으나 30인 미만 영세사업장의 도입률은 23.7%, 5인 미만 사업장은 11.9%에 그쳤다. 대다수 대기업은 노사 합의를 거쳐 퇴직연금을 도입했지만, 중소기업의 도입률은 개선되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퇴직연금 의무화를 서둘러 강제하면 역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 정부도 충분한 준비 기간을 두고 ‘당근’으로 자율 도입을 유도한다는 방침이다. 고용부 관계자는 “당장 가입하지 않으면 과태료를 부과하는 등 처벌한다는 것이 아니라, 가입 혜택을 늘리면서 중소기업 도입을 유도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지난 4일 연금개혁안을 발표하면서 퇴직연금을 도입하는 영세기업을 대상으로 보조금을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근로복지공단이 30인 이하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운영 중인 퇴직연금기금 ‘푸른씨앗’ 가입 대상 규모를 확대하는 등의 보완이 뒤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5~10년 수익률 2%대 불과
수익률 저조하다 보니 일시금 선호
디폴트옵션 90%, 원금 보장형 선택
정부 “디폴트옵션 개선해 수익률↑”
턱없이 낮은 수익률을 높이는 것도 과제다. 수익률이 저조하다 보니 적립 금액이 많지 않아 연금으로 받는 경우가 적고 대부분 일시금으로 찾아간다.
현재 퇴직연금 수익률은 물가상승률조차 좇아가지 못할 정도로 형편없다는 비판을 받는다. 최근 5년과 10년간의 연 환산 수익률은 각각 2.35%, 2.07%다. 국민연금 5년(2017~2021)간 연평균 수익률이 7.63%인 것과 대비된다. 외국 주요 국가들의 퇴직연금 수익률도 보통 7%가 넘는다.
원금 손실을 피하기 위해 안정성이 높은 ‘원리금 보장형’ 중심으로 운용된 결과다. 퇴직연금은 확정급여형(DB)과 확정기여형(DC)으로 나뉜다. DB형은 회사가 금융사와 계약해 적립금을 운용한다. 근로자는 퇴직 때 사전에 확정된 퇴직급여를 받기 때문에, 수익률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반면 DC형은 근로자가 금융사와 직접 계약한다. 근로자 본인이 투자 결정을 해야 한다.
정부는 지난해 DC형 가입자를 대상으로 가입자가 운용 방법을 지시하지 않더라도 사전에 약속한 방식으로 운용할 수 있게 하는 ‘사전지정운용제도’(디폴트옵션)를 도입했다. 하지만 이 옵션 가입자의 90%가 원리금 보장 상품을 선택했다. 위험성과 변동성이 높은 금융 상품에 투자했다가 자칫 원금마저 까먹을 위험이 있다고 보고 안정성에만 치중하다 보니 실효성이 거의 없는 상황이다.
연 2%대에 머물러 있는 퇴직연금 수익률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연금 자산을 지금보다 전문적으로 운용하는 ‘기금형 퇴직연금’ 방식이 확대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로 구성된 중개조직이 가입자를 대신해 적립금 관리·운용을 대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는 수익률이 저조한 디폴트옵션을 개선하는 등 퇴직연금 수익률을 높이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세종 유승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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