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서울 답십리에서 시작된 밥퍼나눔운동본부(이하 밥퍼)는 올해로 35년째 취약계층에게 무료로 식사를 제공하고 있다. ‘이 땅에 밥 굶는 이 없을 때까지’라는 기치를 내걸고 매일 오전 11시가 되면 김이 모락모락 나는 흰쌀밥을 식판에 담아 찾아온 사람들에게 건넨다. 누군가에게 밥은 음식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건네는 이와 받는 이의 다정한 교감이 이루어질 때 그 의미는 온전해진다. 매일 수백 명의 노인을 위해 문을 열어두는 밥퍼가 한 달 전, 불법 증축 문제로 동대문구청으로부터 건물을 철거하지 않으면 2억 8000여만 원의 건축이행강제금을 부과하겠다는 고지서를 받았다. 긴장과 불안 속에서도 오늘의 한 끼를 위해 불을 밝힌 밥퍼를 찾아가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다.
새벽부터 가는 비가 이어졌다. 빛 한 점 없는 안개 자욱한 하늘을 등지고 청량리역 6번 출구로 나왔다. 밥퍼에 도착해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소고기뭇국 냄새가 진하게 풍겨왔고, 150여 명이 삼삼오오 둘러앉아 배식이 시작되는 11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 노인에게 다가가 궂은 날씨에 여기까지 오기 힘들지 않았느냐고 묻자 그는 힘들었다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남양주에서 답십리까지 매일 온다는 그는 밥퍼를 이용한 지 10년이 되었다고 했다. “여기 와서 밥 먹고 청량리역 대합실 가서 사람들이랑 놀다 가고 그래요.” 11시에 이른 점심을 먹은 후 역으로 가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일상이 된 지 10년째라는 뜻이다. 옆 테이블에 앉아 있던 다른 어르신은 꼭 친구를 불러내 이곳에서 밥을 먹는다고 했다. 마을버스를 타고 매일같이 밥퍼에 온 지 7년. 밥퍼는 낯익은 사람들이 많아 심심하지 않은 곳이라고 했다. “집에 혼자 있으면 뭐해요. 할 일도 없고 먹을 것도 마땅찮아요. 여기는 좌우지간 재미있어요. 이런 곳은 없어지면 안 돼요. 우리 같은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밥퍼 이용자의 98%는 만 65세 이상의 무의탁 노인이다. 이들이 밥퍼에 오는 이유는 밥보다는 외로움 때문이라고 다일복지재단 최일도 이사장은 말한다. “이분들에게 배고픔보다 참기 힘든 건 외로움입니다. 이곳은 새벽 6시 전에 이미 50명 가까이 줄을 서 있어요. 수도권 밖에서도 많이 와요. 천안·평택·수원·인천·의정부 등지에서 오지요. 자본주의는 치열한 경쟁 사회잖아요. 이분들은 그저 경쟁에서 밀려난 것뿐입니다. 우리가 돌봐야 할 대상인 취약계층이 서로 안부를 나누며 식사할 수 있도록 지은 이 건물을 인제 와서 불법이라고 철거하라고 하면 되겠습니까?”
복지 단체가 한순간에 불법 시설로
밥퍼는 답십리 길거리에서 시작해 14년간의 거리 배식과 8년간의 임시 건물을 거쳐 지금의 건물에서 13년째 운영하고 있다. 현재 건물은 2010년 서울시에서 밥퍼를 위해 시유지에 지어준 임시 건물인데, 해당 건물 양옆에 증축 공사를 한 것이 문제가 되어 지난해 1월 서울시가 최일도 이사장을 고발했다. 매일 찾아오는 수백 명의 인원을 수용하고 전국 각지에서 기부하는 음식과 재료를 보관하기 위해 동대문구청과 논의한 후 한 공사건마는, 시유지에 무허가 시설을 증축했으므로 건축법을 위반했다는 것이다. 해당 사건은 밥퍼 시설을 기부채납 하는 조건으로 서울시와 합의하며 일단락되었다. 그러나 약 11개월이 지난 뒤 불법 증축 논란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번에는 구청이었다. 2010년부터 12년간 동대문구청장을 지낸 유덕열 전 구청장에 이어 이필형 구청장이 선출된 직후였다. “이 땅은 서울시 땅이고, 건물도 서울시에서 지어줬어요. 그곳에서 우리가 서울시 대신 봉사해온 거예요. 그런데 구청장이 바뀌자마자 우리 단체를 불법 프레임에 가둬버렸습니다. 인간답게 밥 먹을 권리를 위해 서울시가 지어준 이 건물이 불법이라면 양성화하면 돼요. 합법 건물이 되는 방법이 분명히 있습니다.”

최 이사장은 동네에 주상복합 아파트가 들어선 이후 밥퍼를 혐오시설이라고 민원을 제기하는 주민이 늘었다고 했다. “주상복합 아파트가 생기기 전 지난 35년 동안 밥퍼에 반대하는 사람은 딱 네 명이었어요. 기존 동네 주민들은 예전에 밥퍼를 내보내라는 이야기가 나왔을 때 (철거에 반대하는) 현수막도 걸었어요. 밥퍼를 품어 안았던 겁니다.” 아이들이 학교 가는 길에 노숙인이 있는 밥퍼를 지나갈까 봐 학부형들이 두려워한다는 주장에도 최 이사장은 답답해했다. 그에 따르면 청량리는 다른 지역에 비교해도 홈리스 인구가 높지 않다. 또한 밥퍼를 운영하는 35년 동안 밥퍼 이용자 때문에 위협을 느끼거나 피해를 입었다는 신고 사례 또한 한 번도 없었다.
최 이사장은 홈리스를 단순히 위협적인 존재로 지칭하고 배가 고파 밥퍼를 찾는 무의탁 노인들까지 전부 눈밖에 보이지 않도록 몰아내는 행위 자체가 인권을 무시하는 행위라고 목소리를 높이며 안타까워했다. “건축법만 법인가요? 가장 중요한 건 헌법이에요. 대한민국 헌법 제10조에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라고 나와 있어요. 인간이라는 이유로, 인간으로서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이유 하나로 우리는 존엄성을 가집니다. 시민이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우리 시민사회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에요.”

겨울 지나 봄이 오듯
처음 봉사에 참여한 이부터 수년간 봉사해온 베테랑까지 열다섯 명가량의 봉사자와 밥퍼 직원이 밥과 반찬을 배식하기 편하게 준비하기 시작했다. 홀 한 편에는 추가로 밥과 국, 반찬이 놓여 있다. 건물 안으로 어르신들이 한두 명씩 계속 들어오며 곳곳의 빈자리를 채웠다. 배식 전 최 이사장이 앞으로 나가 모두에게 인사를 건넸다. “봄이 오고 있습니다, 여러분. 밥퍼에도 봄이 찾아옵니다. 반가운 소식을 들으셨습니까? 2월 1일부터 밥퍼는 오전 11시 한 번만 배식하지 않고 오전 7시 정각에도 아침 식사를 하실 수 있도록 문을 활짝 열어놓습니다. 오시면 누룽지나 떡국같이 따뜻한 음식을 드시면서 TV도 보고, 바둑도 두고 하시면서 8시까지 여기에 있다가 11시에 배식할 때 또 오시면 돼요. 일찍 오실 분들은 6시에 오셔서 몸을 좀 녹이시다가 아침을 드시면 됩니다.”
불법 증축이라며 밥퍼를 고발한 동대문구청은 건물의 실주인인 서울시에도 5400만 원의 건축이행강제금을 부과했고, 서울시는 이의신청을 제기했다. 해당 건물을 무료 급식소로 사용해온 12년 동안 구청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으므로 사실상 밥퍼를 합법 건물로 인정했다고 볼 수 있다는 주장이다. 모두가 합의했다고 믿고 있었는데 돌연 불법 시설로 전락해버린 현 상황에서도 밥퍼는 배식을 하루 1회 추가했다. 새벽같이 문을 두드리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인에게 밥을 먹었느냐는 질문은 식사 여부를 묻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우리는 밥을 통해 상대방의 안부를 묻는다. 그래서 한 끼 식사가 보장된다는 것은 누군가의 안녕이 최소한이나마 지켜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먹을 음식이 있고, 먹을 장소가 있고, 그 시간을 함께할 사람이 있는 하루는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는 헌법의 내용과도 궤를 같이한다. 밥퍼는 오늘도 새벽같이 문을 열고 당신에게 묻는다. 그래서, 식사는 하셨나요?
글. 원혜윤/ 사진. 윤희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