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흥식 칼럼] 더럽다고 안 쓰는 걸 왜 한국만 '벤츠의 치졸한 원가절감'
냉매는 오존층 파괴와 지구 온난화에 미치는 영향의 정도에 따라 구분한다. 한국환경공단 자료에 따르면 염화불화가스를 사용하는 1세대 냉매 CFC, HCFC 계열은 오존층과 지구온난화 영향 지수가 매우 높아 대부분 국가에서 사용하지 못하게 했다.
현재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냉매는 2세대 HFC 계열이다. R-23, R-134a, R-410A 등으로 자동차 보닛을 열면 어떤 계열을 얼마나 사용하는지 알 수 있다. 기후변화 협약에 따라 HFC 계열 냉매가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있지만 문제는 오존층에 미치는 영향이 없는 반면, 지구 온난화 영향 지수(GWP)가 많게는 1만 1700에 달한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나온 것이 3세대 대체 냉매다. 환경 규제가 엄격한 유럽은 지난 2005년 발효된 교토의정서에 따라 HFC 계열 불소화합물(F-gas) 냉매 사용을 줄이기 위해 쿼터제를 도입하고 HFC 계열 냉매 및 시스템 판매를 2020년 금지했다. 이에 따라 유럽에서 판매되는 신차는 3세대 대체 냉매인 'R‑1234yf'를 사용해야 한다.
유럽을 제외한 대부분의 국가와 국내 법규는 아직 HFC 계열 냉매를 허용하고 있지만 대체 냉매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환경부도 최근 HFCs를 오존층파괴물질 제2종 추가와 함께 제조ㆍ수입 부담금을 부과하고 2024년 기존 물량, 2045년 현재 사용량의 80%를 줄이도록 추진하겠다고 밝혀 HFC 계열 냉매 퇴출을 공식화했다.
국내 생산차 대부분은 이미 오존층과 지구 온난화에 영향을 주지 않는 3세대 냉매 R1234yf(유기불소화합물, HFOs, Hydrofluoroolefins) 를 사용하고 있다. 문제는 가격 차이가 상당하다는 것에 있다. 2세대 HFC 계열 냉매의 경우 5~6만 원, 3세대 대체 냉매는 그 보다 10배 많은 50~60만원 수준에 채울 수 있다. 신차가 출고될 때의 비용도 마찬가지다.
메르세데스 벤츠 EQ 시리즈는 브랜드를 대표하는 친환경 순수 전기차다. 프리미엄 모델 답게 가장 최근 출시한 EQE 세단의 가격은 1억 300만 원, 앞서 판매를 시작한 EQS는 1억 8860만 원이나 된다. 그런데 국내에서 판매하는 벤츠 EQ 시리즈 에어컨 냉매가 지구 환경 온난화 지수가 1만 1700배나 되는 2세대 HFC 계열의 R‑134a인 것으로 알려져 논안이 일고 있다.
벤츠는 자국인 독일은 물론 유럽에서 더럽다며 사용을 금지한 냉매를 한국 판매 차량에 쓰고 있다. 현대차, 기아를 비롯한 국산차 대부분은 오존층 파괴와 지구 온난화에 영향을 주지 않는 R1234yf를 이미 사용한다. 국내 법규상 문제가 없는 냉매라고 해도 독일을 포함한 유럽에서 더럽다고 쓰지 않는 걸 우리 시장에서 팔고 있다.
벤츠 코리아는 R-134a가 국내 법규에 위배되지 않아 문제될 것이 없다는 입장이지만 국산차 대부분은 이미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적은 대체 냉매를 내연기관과 친환경차를 가리지 않고 사용하기 시작했다.메르세데스 벤츠 코리아에 유럽과 국내 판매차의 냉매가 다른 이유를 묻자 본사로 부터 왔다는 답변은 한 줄이다. "메르세데스-벤츠는 한국 법 규정에 따라 냉매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메르세데스-벤츠 AG는 지속 가능한 사업 전략의 핵심 요소인 기후 보호 및 대기 오염 관리에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라는 달랑 한 줄의 답변이다.
너희 법규에 위반되지 않으니 문제될 것이 없다는 의미로 보인다. 지구 온난화 영향이 에어컨 냉매 가운데 가장 높은 계열을 쓰면서 "기후 보호 및 대기 오염 관리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란다. 자기들 나라만 친환경 냉매를 쓰면서 하는 말이다. 메르세데스 벤츠는 유럽에서 파는 내연기관차에도 환경 영향이 거의없는 R‑1234yf 냉매를 쓴다.
메르세데스 벤츠가 법규에 맞춰 장사 하는 걸 탓할 수는 없다. 하지만 친환경 전기차면 법규보다 중요한 가치가 있다. 친환경 소재, 재활용 소재를 사용한다면서 지구 온난화에 엄청난 영향을 주는 냉매를 유독 한국 시장에서 차별한다는 것이 옳은 일인지 묻고 싶다. 럭셔리, 프리미엄 브랜드를 자처하는 벤츠의 치졸한 원가 절감 행태가 계속되지 않도록 소비자가 행동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