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80실버청년] 팔순 앞둔 '인터넷 박사'…엑셀부터 SNS까지 섭렵
휴대폰으로 항공권 예약 등 일본여행 …"앱 만들기 도전중"
[편집자주] 대한민국은 오는 2026년 65세 이상 고령인구가 전체 20%를 차지하는 초고령 사회에 진입한다. 100세 이상 인구 역시 2020년 이미 5000명을 넘겼다. 칠순잔치도 옛말이 되고 있다. 현실로 다가온 초고령화 사회를 어떻게 맞을 것인가. 청년처럼 살고 있는 80~90대 현역들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부산=뉴스1) 백창훈 기자 = "내 인스타그램 계정인데, 이건 어제 친구와 등산 가서 찍은 사진이야."
부산 동래구 한 카페에서 만난 1944년생 어르신이 떨리는 손으로 자신의 휴대폰 속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보여주며 이같이 말했다.
SNS 속 사진에서 그는 정상에서 등산복을 입고 환하게 웃고 있거나 아내와 함께 여행 간 휴양지에서 한껏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여느 20·30대처럼 젊게 사는 것 같다는 말에 이 어르신은 쑥스러운 듯 쓰고 있던 모자를 벗으며 "꼭 그렇지만은 않아. 봐봐, 머리도 다 빠졌잖아"라며 웃었다.
이 어르신은 올해 79세의 임환무씨다. 친구들 사이에서 '인터넷 박사'라고 불린다고 한다.
임씨에게 이같은 별명이 붙은 이유는 PC와 스마트폰을 통해 못하는 게 없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휴대폰으로 항공권과 숙박을 예약하고 딸과 함께 일본 여행도 다녀왔다.
정보통신 기술(IT)을 잘 다루지 못하는 아내를 대신해 쿠팡 등 배달앱으로 식재료를 구매하는가 하면 손주가 오면 스마트폰으로 배달 음식도 주문한다. 며칠 전에는 등산하면서 찍은 사진을 이미지 편집 프로그램인 '포토샵'으로 수정해 SNS에 올리기도 했다.
예사롭지 않은 임씨는 지난해 열린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주최 '국민행복 IT경진대회' 부산 지역별 예선전에서 고령층 1부문 최우수자로 부산시장상을 거머쥔 실력자다.
예선에서 수상한 임씨는 전국 본선 무대에 올라 3등에 준하는 동상을 받아 KT사장상도 수상했다. 이 대회는 정보취약계층 대상으로 정보화교육 동기와 성취감 부여를 목적으로 열렸다.
참가자들은 정해진 시간 안에 PC와 스마트폰으로 정보 검색, 오피스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으로 한글 작성과 엑셀 표를 만들어야 한다.
임씨는 "대회에 나가기 전 구청에서 진행하는 대비반에서 보충 수업도 들었다"며 "엑셀 함수 문제를 풀기 위해서 SUM(합계), VLOOKUP(원하는 값 찾기), COUNTIF(셀 개수 찾기) 등의 함수를 달달 외웠다"고 말했다.
임씨는 1977년부터 IMF(국제통화기금) 사태 이전까지 15년가량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일했다. 이후 한국시니어클럽협회에서 주관하는 건강보험 전문상담사로 12년간 일하다 퇴직했다.
건보공단에서 업무를 보던 시기 PC와 인터넷이 처음으로 보급되면서 임씨는 IT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전까지 주산을 통해 수기로 계산 내역을 정리했던 그는 PC 보급 후 처음으로 계산 프로그램을 사용하면서 편리함에 큰 매력을 느꼈다고 한다.
임씨는 "컴퓨터에 대해 더 알고 싶어 관련 책을 사 퇴근 후 집에서 따로 엑셀 등 프로그램을 공부하기도 했다"며 "피는 못 속이는지 아들도 IT에 큰 관심을 가져 부산대 컴퓨터공학과 1기로 입학했다"고 말했다.
1990년대 인터넷이 보급된 뒤 임씨는 급기야 동래고 산악회 홈페이지도 비공식적으로 만들어 운영했다고 한다.
당시 이 홈페이지에는 그가 다닌 산행길과 산행일정이 정리돼 있었다. 현재 이 홈페이지는 동래고 측이 물려받아 정식 홈페이지로 이용되고 있다.
최근 그는 한 기업에서 제공하는 교육 프로그램 수업을 들으며 '스마트폰 앱 만들기'에 도전 중이다. 임씨는 "아직 실력이 부족해 뚜렷한 성과는 없지만, 몇 년 안에 나만의 앱을 만들어 꼭 출시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고령층의 대부분은 인터넷으로 주민등록등본 발급도 못해 이른 아침부터 창구에 줄을 서 대기하는 등 젊은 사람에 비해 생활의 질이 굉장히 떨어졌다"며 "스마트폰을 전화하고 받는 용도로만 그치지 말고 유튜브 등 동영상을 시청하고 끊임없이 활용하며 변화하는 시대에 발맞춰야 한다"고 말했다.
huni@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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