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거왕'의 시작과 성장
1970년생인 이금열 전 다원그룹 회장은 20대 초반 상경하여 철거업계에 발을 들였다. 1990년대 폭력 철거로 악명 높았던 '적준'의 회장 운전기사이자 현장 행동대원으로 시작한 그는, 불과 5년 만에 28세의 나이로 대표 자리에 올랐다. 이후 회사명을 다원으로 바꾸고 약 20년간 철거용역사업의 1인자로 군림하며, 업계의 80%를 수주해 수백억 원을 벌어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다원그룹의 사업 확장
이금열 회장은 철거업으로 시작해 건설, 재개발 사업으로 영역을 확대했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김포신곡6지구 도시개발 사업과 평택가재지구 사업 등에 참여하며 사업 규모를 키웠다. 검찰 발표에 따르면, 이 회장은 최소 13개 이상의 회사를 거느리고 있었으며, 철거 업종 4개사, 건설시행사 3개사, 시공사 1개사, 재건축·재개발 쪽 3개사, 골프장 2개사 등 다양한 분야로 사업을 확장했다.
불법과 폭력의 그림자
이금열 회장의 승승장구 이면에는 무수한 폭력과 불법이 있었다. '적준'과 '다원' 용역들은 각목, 오함마를 들고 폭력 철거를 자행했으며, 1998년 발표된 '적준 철거범죄 보고서'에 따르면 서울 등의 철거현장 31곳에서 83건의 폭력을 행사하고 주거침입, 성폭행, 성추행, 재산손괴, 방화 등을 90여 차례 저지른 것으로 나타났다.
1000억대 횡령 사건과 법적 처벌
2013년, 이금열 회장은 1000억 원이 넘는 회삿돈을 횡령한 혐의로 검찰에 포착됐다. 그는 2006년 11월부터 2013년 4월까지 회삿돈 884억 원과 아파트 허위분양으로 대출받은 168억 원 등 총 1052억여 원을 빼돌린 혐의로 기소됐다. 2014년 2월, 수원지법은 이 회장에게 징역 7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그룹의 지배주주로서 무분별한 자금 운영을 통해 금융기관과 건설사 등에 거액의 피해를 줬다"며 중형 선고 이유를 밝혔다.
정관계 로비 의혹과 수사
이금열 회장의 체포 당시, 그의 은신처에서 발견된 USB 메모리에는 다원그룹의 회계장부와 함께 전방위 로비 정황을 보여주는 자료가 포함되어 있었다. 이 회장은 공무원 등에게 3억5000만 원의 뇌물을 건넨 사실도 드러났다. 그러나 대형 게이트로 비화될 조짐을 보이던 이금열 사건은 이후 흐지부지되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대통령 올케 서향희 변호사 개입 논란
2013년 5월, 검찰 수사를 피해 도피 중이던 이금열 회장은 박근혜 대통령의 올케인 서향희 변호사를 만났다. 서 변호사는 이 회장의 사건 해결을 약속하고, 자신과 특수관계에 있는 법무법인을 연결해 사건을 수임케 했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수사가 축소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구속 이후의 다원그룹
이금열 회장 구속 이후에도 다원그룹은 정상 운영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취재 결과, 다원 계열사 4개가 추가로 확인되었으며, 이들 회사를 동원해 법 규정을 무력화하고 재개발 철거용역비를 부풀려 부당이득을 취해온 정황이 드러났다. 이 회장의 둘째 동생인 이중열 다원이앤씨 대표는 "이 회장과 다원과는 상관없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부당이득 창출 회로'가 여전히 작동 중인 것으로 보인다.
최근 논란과 이슈
2024년 11월, 이금열 전 회장은 지방세 14억1100만 원을 체납해 서울시 신규 개인 최고액 체납자로 이름을 올렸다. '철거왕'에서 이제는 '체납왕'이라는 오명까지 얻게 된 것이다. 또한, 2021년 6월 광주 동구 학동 철거건물 붕괴사고에서 다원그룹의 계열사가 이면계약을 맺고 철거에 개입했다는 사실이 경찰 수사로 드러나 추가적인 논란을 일으켰다.
이금열 전 회장의 사례는 무분별한 개발과 불법 철거의 어두운 역사를 보여주는 동시에, 권력과 금전의 유착 관계가 여전히 우리 사회에 깊게 뿌리박혀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앞으로 이러한 불법과 비리의 고리를 끊고, 투명하고 공정한 도시 개발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제도적 개선과 엄격한 법 집행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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