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령 ‘남포 벼루’ 예향 광주에서 매력 발산

‘보령 남포 명연특별전’ 내달 4일까지 예술의거리 광주미술관
충남 무형문화재 제6호 김진한 선생 작품 등 30여점 한자리에
김진한 작 ‘천지硯’

예전 초등학교 미술시간에는 서예를 했었다. ‘가뭄에 콩 나듯’ 진행됐던 붓글씨 수업은 나름 재미가 있었다. 벼루에 물을 붓고 먹을 갈다보면 까맣게 변하는 물빛이 신비로워 보였던 기억이 있다.

서예를 하시던 어른들은 먹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먹을 발산하는 것은 다름 아닌 벼루다. 선비에게 있어 벼루는 자존심의 상징이었다.

추사 김정희는 “먹을 거두는 데에만 능하고 먹을 발산시키는 데에 능하지 못한 것은 또 좋은 벼루가 아니다”며 “먼저 벼루를 얻은 다음에야 글씨를 쓸 수 있으니, 벼루가 아니면 먹을 둘 곳이 없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현대에 들어서면서 벼루는 단순한 서예도구로만 치부되지 않고 예술적 도구 또는 기호적 도구로 수용되고 있다. 서예도구를 제작하며 전통의 맥을 잇고 있는 ‘장인’들도 벼루를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접근한다.

예향의 고장 광주에서 벼루를 모티브로 특별 전시가 열리고 있어 ‘화제’다.

‘제6회 보령남포 명연특별전’이 28일 개막해 오는 12월 4일까지 예술의거리 광주미술관에서 펼쳐지고 있는 것. 충남 무형문화재 제6호 서암(書岩) 김진한 선생을 비롯해 전승교육사, 이수자, 전수생 작품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기회다.

이번 광주 특별전은 보령 남포벼루 대도시 순회전 6회 차로 마련됐으며, 모두 30여 점을 선보인다. 보유자인 김진한 선생 외에도 이영식 이수자, 노재경 전승교육사, 권태만 이수자, 조중현 전수자, 한영환 전수자, 한정민 전수자, 한겨울 도예가가 작품을 출품했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각양각색의 벼루가 관람객들을 맞는다. 모양과 크기도 제각각이지만 장식은 화려하면서도 단아하다. 은은한 묵향과 기품이 배어나온다. 사각의 벼루만 있을 줄 알았는데 타원형에 직사각형에 형태도 다양하다. 또한 문양도 풀잎과 나뭇잎, 대나무 등 자연을 새긴 것부터 학이나 용 등 상서로운 동물을 조각한 것에 이르기까지 천차만별이다.

서예도구인 벼루는 충남 보령의 남포에서 나는 남포석을 으뜸으로 친다. “윤택함과 껄끄러움이 서로 겸하여 거품이 뜨고 먹이 빛나는 것을 취한다”는 추사 김정희의 평은 남포연을 두고 이르는 말이다.

손환일(전 국립문화재연구소)은 ‘보령 남포 벼루의 특징’이라는 글에서 “남포 연석의 광물학적 특성을 분석하여 보면 좋은 벼루의 요점을 갖추고 있음이 확인된다”며 “경도, 압축강도, 마모강도가 높아야 먹물이 쉽게 마르지 않고, 공극률이 낮아야 흡수율도 낮다”고 언급했다.

전시회에 참석한 벼루장 김진한 선생(84)에 따르면 “남포 벼루는 먹을 갈아두면 20일 이상을 갈만큼 쉽게 마르지 않는다”며 “원재료인 백운상석은 쇳소리가 날만큼 맑고 청아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특히 벼루 표면은 은은한 색깔이 배어나와 보는 이에게 정감을 선사한다”고 덧붙였다.

그에게선 평생 외길을 걸어온 장인에게서 느껴지는 엄격함과 한편으로는 벼루의 덕성 같은 인자함도 느껴졌다. 조부부터 3대째 가업을 이어 오는 그는 남포 벼루의 대표적 장인으로 손꼽힌다.
60년 이상을 벼루 제작하는 데 심혈을 기울여온 그는 아버지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있다. “부친은 ‘벼루의 원재료가 되는 돌을 그저 돌이라 생각 말고 생명체라 생각하고 대하라’고 강조했다”고 한다.

예전에는 공방에서 벼루를 만들었지만 요즘은 시설이 갖춰지지 않으면 제작하기가 어렵다. 10톤 이상 나가는 돌을 운반하기도 힘들고, 좋은 공구를 사용해야 원하는 모양의 벼루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김진한 장인은 “어린 시절 벼룻돌을 캐다가 아버지에게 보여드리며 어떤 돌이 벼룻돌로 가장 뛰어난 것인지 정확하게 가늠하는 안목을 길렀다”며 “전통적인 조각에 창의적으로 개발한 조각솜씨를 덧붙여 벼루를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17세 입문해 49년째 벼루 제작을 하고 있는 노재경 전승교육사(65)는 남포벼루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 그는 전시나 전승활동을 통해 지속적으로 남포벼루를 알릴 계획이다.

노 교육사는 “광주가 서예를 하시는 분들이 많은 곳이다. 일찍 와서 전시를 해보고 싶었는데, 이렇게 특별전을 열게 돼 감회가 새롭다”고 밝혔다.
/글·사진=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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