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빌리티 X] 현대차-엔비디아, '깐부'서 '동반자'로

올해 현대차그룹 앞에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미지의(X) 영역이 있습니다. X는 전통 제조사와 빅테크 간 전략적 결합이자 생존을 위해 선점해야 할 차세대 주권(NeXt)을 의미합니다. 글로벌 빅테크 및 완성차 기업들과 현대차의 역학관계를 조명합니다.

/사진= 구글 제미나이의 도움을 받아 제작한 그래픽입니다.

현대차그룹과 엔비디아의 협력 관계가 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SDV) 전환을 계기로 전방위적 전략 파트너십으로 심화되고 있다. 단순한 칩 공급을 넘어 차량 운영체제(OS), 자율주행, 로보틱스, 스마트 팩토리까지 아우르는 통합 모빌리티 생태계를 공동 설계하는 단계로 진입했다는 평가다.

다만 협력의 외연이 넓어질수록 기술 의존도 또한 함께 높아질 수밖에 없다. 이는 미래 모빌리티 주도권 확보의 기회이자 동시에 구조적 리스크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전략적 파트너십 공식화

현대차와 엔비디아의 기술 협력은 2015년 차량용 반도체 및 차량 운영체제 영역에서 출발했다. 초기에는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중심의 제한적 협업이었지만 차량 전자·전장 아키텍처가 고도화되면서 양사의 협력 범위는 빠르게 차량 핵심 제어 영역으로 확장됐다.

특히 2022년부터 현대차·기아·제네시스 신차에 적용된 독자 운영체제 ccOS(Connected Car Operating System·커넥티드 카 운영체제)가 엔비디아의 드라이브(DRIVE) 플랫폼을 기반으로 구축되면서 양사의 협력은 차량 내 중앙집중식 컴퓨팅 체계로 옮겨갔다. DRIVE 기반 고성능 연산 아키텍처는 인포테인먼트는 물론 첨단운전자보조시스템(ADAS), 자율주행 소프트웨어, 차량 데이터 처리까지 통합하는 구조를 구현했다. 현재 수만 대 규모의 양산 차량에 엔비디아 연산 솔루션이 탑재되며, SDV 체제로의 전환을 뒷받침하는 기술적 토대가 실질적으로 구축됐다는 평가다.

2025년은 양사 관계가 기술 협력을 넘어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격상된 분기점으로 기록된다. 2025년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25'에서 양사는 자율주행과 로보틱스를 포괄하는 전략적 파트너십을 공식화했다.

같은 해 10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대규모 투자 계획이 구체화되면서 협력은 실행 단계로 진입했다. 특히 APEC 기간 중 정의선 회장과 젠슨 황 CEO의 회동은 이른바 '깐부회동'으로 불리며 상징적 장면으로 회자됐다. 이 만남을 통해 양사는 AI 칩 공급 계약을 넘어 미래 모빌리티 아키텍처와 AI 인프라 전략을 공동 설계하는 수준의 장기 협력 의지를 재확인한 것으로 전해진다.

왼쪽부터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책임자(CEO)가 지난해 10월30일 오후 서울 강남구 삼성역 인근 깐부치킨 매장에서 치킨 회동을 하고 있다./사진 제공=공동취재단

최고경영진 간 교류도 지속되고 있다. 지난달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26'에서 정 회장은 엔비디아 전시관을 직접 찾아 젠슨 황 CEO와 비공개 면담을 진행했다.

결과적으로 현대차와 엔비디아의 협력은 차량용 반도체 공급에서 출발해 차량 중앙 컴퓨팅 플랫폼 공동 구축, 나아가 AI 기반 미래 모빌리티 생태계 공동 설계 단계로 고도화됐다. 기술 협력의 외연과 깊이가 동시에 확장되며 글로벌 SDV 경쟁 구도 속에서 양사의 연대는 더욱 공고해지고 있다는 평가다.

차량·제조·로봇 아우르는 '통합 AI 생태계'

이러한 교류를 배경으로 현대차는 엔비디아의 핵심 AI 플랫폼을 전방위적으로 도입하고 있다. 차량 내 중앙 컴퓨팅에는 '드라이브 AGX 토르'를, 자율주행 알고리즘 검증과 가상 시뮬레이션에는 '옴니버스'를, 로봇 개발과 학습 체계에는 '아이작'을 각각 활용하는 구조다.

우선 현대차는 2025년 이후 생산되는 신차에 무선 소프트웨어 업데이트(OTA)를 기본 탑재하며 SDV 전환을 공식화했다. 핵심은 차량 내 수십 개 전자제어장치(ECU)를 통합하는 중앙집중형 컴퓨팅 아키텍처다. 이를 구현하는 기술적 기반이 엔비디아의 차량용 컴퓨팅 플랫폼 '드라이브 토르'다. 초당 2000조 회 연산이 가능한 이 칩은 자율주행, 인포테인먼트, 차량 제어 기능을 단일 시스템에서 통합 처리한다. 현대차가 개발 중인 ccOS의 효율 역시 이 같은 고성능 연산 구조 위에서 극대화된다.

협력은 생산 현장으로도 확장되고 있다. 현대차그룹 싱가포르 글로벌 혁신센터(HMGICS)는 엔비디아 '옴니버스' 플랫폼을 활용해 공장을 가상 공간에 정밀 복제하는 디지털 트윈 체계를 구현했다. 실제 생산라인과 로봇 동선, 공정 흐름을 가상 환경에서 사전 검증해 병목을 최소화하고 공정 효율을 높이는 방식이다. 공정 최적화, 비용 절감, 양산 준비 기간 단축이라는 효과는 다품종 소량 생산이 요구되는 미래 모빌리티 체제에서 경쟁력을 좌우하는 요소로 평가된다.

엔비디아의 옴니버스·코스모스를 기반으로 만든 물류창고 자동화 솔루션 구현 모습 /사진= 엔비디아 유튜브 갈무리

현대차의 미래 먹거리인 로보틱스 분야 역시 엔비디아와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현대차가 인수한 보스턴다이내믹스의 로봇들은 실험실을 넘어 실제 작업 현장으로 투입될 채비를 마쳤다. 여기서 로봇이 주변 환경을 인식하고 스스로 판단해 움직이기 위해서는 고성능 AI 연산이 필수적이다.

현대차는 엔비디아의 로보틱스용 가속 컴퓨팅 플랫폼인 '아이작'을 활용해 로봇의 학습과 제어 시스템을 고도화하고 있다. 단순한 솔루션 채택을 넘어 엔비디아의 그래픽처리장치(GPU) 기반 연산 생태계를 미래 사업 전반의 공통 인프라로 끌어들이는 선택에 가깝다.

자율주행차, 물류 로봇, 도심항공교통(UAM)을 하나의 통합된 AI 체계로 발전시키려는 현대차의 구상 역시 엔비디아의 연산 인프라와 맞닿아 있다. 양사는 가상 환경에서 다양한 상황을 반복 학습한 뒤 이를 실제 환경에 적용하는 시뮬레이션 기반 학습 기술 고도화에 협력하고 있다. 이 지점에서 엔비디아의 GPU 생태계는 사실상 표준으로 기능한다.

확대되는 협력, 깊어지는 의존도

나아가 업계에서는 현대차가 엔비디아의 자율주행 플랫폼 '알파마요'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알파마요는 시각 정보와 언어 능력을 결합해 주행 판단의 근거를 논리적으로 제시하는 VLA(비전·언어·액션) 기반 자율주행 솔루션으로 현재 메르세데스-벤츠 신형 CLA에 최초로 적용됐다. 오픈소스 기반인 이 플랫폼은 여러 완성차 업체가 함께 사용하면서 데이터를 공동 축적할 수 있는 구조인만큼 주행 데이터 부족이 최대 약점인 현대차그룹에 매력적인 선택지로 꼽힌다.

실제로 현대차 내부에서는 알파마요 도입을 둘러싼 논의가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AVP본부 연구진은 아트리아AI 기반 개발에서 알파마요 기반 프로젝트로 과제를 전환한 상태인 것으로 전해졌다. 기술 자산의 연속성을 확보하면서도 성능 고도화를 도모하는 방향으로 내부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는 관측이다.

다만 현대차가 공식적으로 알파마요 도입 여부를 결정한 것은 아니다. 협력 가능성을 열어둔 것이지 도입 결정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게 현대차 측의 설명이다.

협력의 외연이 넓어질수록 전략적 의존도 역시 함께 높아질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낳고 있다. 긴밀한 밀월 관계가 역설적으로 현대차에 '기술 종속'이라는 숙제를 안겼기 때문이다. 현재 현대차 SDV 전략의 핵심 컴퓨팅 파워가 엔비디아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는 점은 장기적인 리스크다.

만약 엔비디아가 칩 가격을 인상하거나 소프트웨어 사용료 체계를 변경할 경우 현대차의 수익성은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다. 스마트폰 시장에서 안드로이드 OS를 장악한 구글과 제조사들의 관계가 자동차 산업에서도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다. 또한 엔비디아의 칩 공급 우선순위에 따라 신차 출시 일정이 좌우되는 공급망 불안정성 역시 현대차가 극복해야 할 과제다.

최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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