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도 졸리는 더위” 친근한 예보...제1호 기상캐스터 김동완 별세
매직펜으로 기압선 그리며
현재 예보 방송 토대 마련
우리나라 제1호 기상캐스터로 알려진 김동완 전 기상청 기상통보관이 향년 89세로 15일 별세했다.
김 전 통보관은 1935년 경북 김천에서 태어나 대구공고를 졸업, 공군 조종사의 꿈을 접고 1959년 기상청 전신인 국립중앙관상대에 들어갔다. 관상대에서 기상 분석을 하던 그는 예보 전달 부서 사무관이 되며 방송과 인연을 맺고 1965년~1997년 33년간 1호 기상캐스터로서 일기예보를 했다.
김 전 통보관이 일기예보를 하던 초창기에는 지금과 달리 방송사에 소속된 기상캐스터가 아닌 기상청 공무원이 예보를 맡았다. 뉴스 말미에 앵커가 “지금부터 마이크를 중앙관상대로 옮겨 날씨를 전해드리겠습니다”고 하면 김 전 통보관이 예보를 하는 방식이었다. 당시 기상청에는 ‘통보관’ 직책도 없었지만, 방송국에서 임의로 그의 직책을 통보관으로 부르면서 정식 명칭이 됐다.
그는 날씨 예보방송의 토대를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딱딱한 예보에서 벗어나 손으로 일기도를 그려가며 날씨를 쉽게 전달하고자 했다. “여우가 시집가는 날” “파리가 조는 듯한 더위” 등 청취자 귀에 쏙쏙 들어오는 문구를 활용해 예보 전달력과 주목도를 높이기도 했다. 재치있고 믿을 수 있는 ‘생활예보’를 전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10년 세계 기상의 날에는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았다.
김 전 통보관을 모셔가기 위한 방송국들의 경쟁은 치열했다. 1974년부터 TBC(동양방송)의 일기예보를 전담한 김 전 통보관은 기상청을 퇴직한 이후 1982년부터 MBC에서 기상캐스터를 맡았다. 그는 생전 인터뷰에서 “TBC 예보를 전담하게 되니까 타 방송국 사장이 백지수표를 내밀며 ‘마음껏 적으라’고 했다. 그러자 이병철 회장이 ‘TBC에서 10년 채우면 삼성 종신이사를 시켜주겠다’고 하셨다”고 했다. 그가 MBC 기상캐스터를 맡았던 당시에는 타 방송 9시 뉴스를 보던 국민들이 날씨 뉴스가 나올 때가 되면 MBC로 채널을 돌렸다.
그런 그가 오보(誤報)로 곤혹스런 일을 겪은 적도 있었다. 어린이날 오전 6시 날씨 예보에서 “어린이 얼굴만큼이나 맑은 날씨가 되겠습니다”라고 전한 뒤 방송국을 나서자마자 폭우가 쏟아진 것이다. 비를 맞으며 걷다가 목욕탕에 들어선 그를 보곤 손님들이 “김 선생, 비 안온다더니 이게 뭡니까”라 항의했다. 귀가한 그를 향해 아내도 “이게 뭐냐” 따지기도 했다.
3공화국 시절 그의 간담의 서늘하게 한 오보도 있었다. “오후 7시에 각하께서 주관하는 외국 상공인 가든파티가 있는데, 비가 오느냐”는 연락에 “그칠 것”이라 답변했지만 비는 그치지 않았다. 파티가 시작되는 오후 7시에도 결국 비는 그치지 않았다. 그는 “시계 초침 소리보다 심장 뛰는 소리가 더 크게 들렸다”고 당시를 회상했었다. 예보관 시절에는 자신의 예보가 적중할지 불안해 퇴근 이후 매일 1시간쯤 하늘을 보는 버릇이 생겨 아내로부터 ‘바람피우 것 아니냐'는 의심을 받은 적도 있다고 한다.
그는 오보를 줄이는 자신만의 노하우를 공개하기도 했다. 김 전 통보관은 “‘중부지방은 대체로 흐리고 곳에 따라 비가 온다'고 예보하면 비가 오지 않는 곳에선 오보라고 생각한다. 저라면 ‘곳에 따라 한 차례 비가 오는 곳도 있겠지만, 대체로 흐리겠습니다'라고 예보한다. 이러면 비가 오는 곳도, 오지 않는 곳도 제가 맞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김 전 통보관은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2013년 8월 본지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옛말에 ‘여름 손님이 호랑이보다 무섭다’고 했습니다. 여름 손님(더위)이 있어야 가을 손님(결실)도 온다고 하지요. 각별히 건강에 유의하십시오. 지금까지 김동완 통보관이었습니다.”
고인의 빈소는 서울 강서구 이대서울병원 장례식장 8호실에 마련됐다. 발인은 17일 오전 7시 30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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